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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아베 불편하게 했던 학자들에 X표 친 스가

[월드리포트] 아베 불편하게 했던 학자들에 X표 친 스가

일본학술회의 임명 거부 파장 일파만파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20.10.05 18: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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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일본 99대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달 중순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며 일본의 99대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코로나 대응과 경제 재생이라는 '투트랙 전략'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정책을 큰 틀에서 계승하면서도, 행정 각 분야에서 '스가 색깔'을 내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가운데 일본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정보통신 기술 활용을 위해 '디지털청(廳)'을 만드는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고, 방위상에서 행정개혁 담당상으로 옮긴 고노 다로 장관을 앞세워 뿌리깊은 일본의 '도장 문화'를 혁파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일본 언론들은 이런 스가 정권의 '색깔 입히기'에 대해 그동안 크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규제 개혁이나 새 부처 신설 등은 물론 일정 정도의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감시해야 합니다만, 그 목적이 이른바 '국제 기준'에 접근하기 위한 행정 효율화라는 점을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일본 행정체계의 '아날로그'적 측면이 크게 부각된 점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습니다.

취임 이후 2주 정도 큰 반발 없이 진행되는 듯 했던 스가 정부의 '색깔 입히기'가 돌연 강고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 건 지난 2일이었습니다. 스가 총리가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한 신규 회원 105명 가운데 6명만 '콕 집어' 임명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일본학술회의 건물 전경
일본학술회의는 학자의 견해로 정부 정책에 조언하는 일본 정부의 특별기구입니다. 일본은 '일본학술회의법'에 따라 학술회의의 구성과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법의 제7조 2항은 [(일본학술회의의) 회원은 제17조의 규정에 따른 추천에 기초해 일본 총리가 임명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17조를 볼까요. [일본학술회의는, 우수한 연구 또는 업적이 있는 과학자 가운데 회원 후보자를 선정해 총리에게 추천하는 것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일본학술회의가 신규 회원을 총리에게 추천하면 총리가 임명하는 간단한 구조입니다. 이 법은 2004년에 일부 개정됐는데, 이전에는 각 학술단체가 각각 추천자를 올리던 것을 이때부터는 학술회의가 직접 추천하는 것으로 바꾼 게 전부입니다. 법 개정 당시 정부 측은 국회 답변에서 "(추천된 학자를) 그대로 총리가 형식적으로 발령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법에 따라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한 신규 회원에 대해 총리가 임명을 거부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임명된 학술회의 회원은 정부 정책에 대한 조언(또는 제언)을 하는 것 외에 별다른 권한은 없습니다. 그저 일본 사회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학자적 양심에 따라 정부 정책에 대해 본인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조언을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스가 총리는, 전임 아베 총리도 하지 않았던 '임명 거부'를 행사한 것입니다.

스가 총리가 임명을 거부한 6명의 학자 가운데 3명은 법학자입니다. 오카다 마사노리 와세다대 교수는 행정법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로, 10년 가까이 일본 사법시험의 출제위원으로도 활동해왔습니다. 오자와 류이치 지케카이(慈惠會) 의대 교수는 '역사 속의 일본 헌법'이라는 저서를 쓴 헌법학자입니다. 마쓰미야 다카아키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교 대학원 교수는 증권거래 연구를 테마로 연구해 온 형법 전문가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볼까요. 아시나 사다미치 교토대 대학원 교수는 기독교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종교철학자입니다. 우노 시게키 도쿄대 교수는 정치사상사와 정치철학을 전문으로 하는 정치학자고, 가토 요코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1930년대 일본 근대사를 주요 연구 테마로 하는 역사학자입니다.

스가 총리가 임명 거부한 학자 6명 (사진=NTV 자료)
이들 6명의 공통점은 2014년 일본 정부가 추진한 '집단적 자위권' 도입과 2015년 안전보장 관련법 통과 사태에서 정부의 반대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안전보장 관련법에 반대하는 학자 모임'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2014년 집단적 자위권 논의에서 출발한 '입헌 데모크라시 모임'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안전보장을 이유로 일반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테러방지법 등의 제정), 전보다 쉽게 다른 나라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집단적 자위권) 법을 만들려는 정부에 반발해 학계 주도의 비판적 움직임을 주도한 양심적 학자들입니다. 오카다 와세다 교수는 오키나와 미군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과 관련해 방위성의 강압적인 절차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고, 오자와 지케카이 교수는 안보법 사태 당시 중의원 특별위원회에 야당 측 발언자로 참석해 집단적 자위권 폐기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베 정권이 중점적으로 추진한 외교안보 정책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 온 학자들입니다.

스가 총리는 10월 2일, 이들 6명의 '임명 거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법에 기초해 적절히 대응한 결과"라고만 언급했습니다. 총리가 기존처럼 학술회의 회원을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적합한지를 판단해 '거부'를 결정했다는 얘기인데, 결국 앞서 설명드렸던 '일본학술회의법'의 정부 측 해석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바뀐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도쿄신문은 지난 3일, 아베 정권하였던 지난 2018년 내각부와 내각 법제국 사이에 법 해석에 관한 협의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는데, 이 시점 이후 "맘에 안 들면 임명을 안할 수도 있다"는 식의 해석이 정부 내에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토 관방장관은 이미 1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추천된 사람을 의무적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한 그대로 임명해야 할 의무는 총리에게 없다는 것이고, 이를 일본 정부의 내각 법제국도 총리의 '거부'를 승인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정부 정책이 언제나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는 일상적으로 '학술 자문회의'를 운영하며 정부 정책의 적합성이나 파급 효과를 학자들의 시각에서 검토, 검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일본학술회의 입회가 '거절'당한 6명의 학자들도 본인의 학자적 양심과 신념에 따라 아베 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 활동했을 것입니다. 쓴소리를 듣기 싫다고, 쓴소리를 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법 해석도 바꾸고, 관례까지 깨 가며 회원 임명을 거절한 스가 총리의 뒤에 아베 전 총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일본학술회의 측은 이번 임명 거부에 대해 '학문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스가 총리 등 정부 측에 이번 임명 거부의 경위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6명의 학자들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달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학계와 시민단체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있고, 주말에 걸쳐 총리 관저 앞에서는 이번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도 열렸습니다.

지난달 스가 총리 임명 하루 전에 '통합·탄생'한 일본의 제1야당 입헌민주당과 사회당 등은 이번 '임명 거부' 사태를 정부 견제의 발판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야당은 모레(7일) 중의원, 8일 참의원에서 열리는 내각위원회에 가토 관방장관의 출석을 요청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거부당한 학자 6명의 활동은 일본 내에서도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반(反) 우익' 입장입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그동안 '행정 개혁'이라는 무채색으로만 일본 국민들에게 비춰졌던 스가 내각의 '정치적 색깔'이 좀 더 선명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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