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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집인데" vs "전세 없어서"…모두 불행한 시대

지난 7월 말, 세입자의 주거권을 강화하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습니다. 1) 세입자는 임대차 계약이 끝나기 1개월~6개월 전까지는 "2년 더 살겠다"라고 집주인에게 요구할 수 있게 됐고(계약갱신청구권), 2) 계약을 연장할 때도 임대료를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됐습니다(전·월세 상한제). 3) 또 전·월세 계약을 하면 30일 이내 신고를 마쳐야 합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별문제가 없으면 살던 집에 다른 2년 더 살 수 있는 데다, 임대료도 최대 5% 이상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마저도 세입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주거안정은 물론 경제적인 부담도 대폭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개정된 법이 시행된 지 두 달, 부동산 시장은 기대와 달리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법 시행 초기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분쟁은 양적으로는 더 많아졌고 질적으로도 더 나빠졌습니다. 세입자와 집주인, 그 집을 산 매수자까지 "모두 불행해졌다"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부동산 아파트 전세 매매 (사진=연합뉴스)

 1. 매수자의 불행…"내 집을 사고도 들어갈 수가 없다"
 
30대 A 씨는 지난달 세입자가 있는 아파트를 사기로 계약했습니다. 결혼 뒤 내 집 마련을 위해 4년을 아끼고 또 아끼며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세입자도 "계약이 끝나는 연말에는 집을 비워주겠다"라고 약속했고, 이를 믿고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잔금을 치르기 며칠 전, 세입자가 돌연 말을 바꾸었습니다. "2년 더 살고 싶다"라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세입자의 '구두' 약속을 믿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가기로 하지 않았느냐?"라고 따져 물었지만, 세입자는 "나갈 것을 고려해본다고 했지만 나가겠다고 한 적은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경우, 소유권을 넘겨받기 전이기 때문에 A 씨는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졸지에 살 곳이 없어진 것입니다. 전세마저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급한 대로 고시원과 친척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급한 불을 끄더라도 비싼 월세를 내고 2년 이상을 더 살 수밖에는 없습니다. 물론 전 재산을 들여서 산 '내 집'을 눈 앞에 두고서 말입니다.  황망한 마음에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에도 문의했지만 "세입자에게 나가 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다"라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인생의 큰 계획이 뿌리째 흔들리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A 씨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입자가 생각이 바뀌었대요"라고 말하며, 계약금을 내놓고 떨고 있는 매수자가 속출하는 것입니다. 국토부는 물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실에도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대차법은 사인 간 계약으로 민법 사항이어서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옳고 그름은 당사자들이 법적 소송을 통해 따져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집을 사는 매수자가 그 집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기존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실제 입법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2. 세입자의 불행…"나가고 싶어도 나갈 데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세입자에게만 떠넘길 수도 없습니다. 난처한 것은 세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대차법 시행 전후로 전세 매물이 급감하며,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나마 드물게 나온 전세 물건은 값이 껑충 뛴 상태입니다. 몇 달 새 배 이상 오른 곳도 적지 않습니다. 대출까지 어려워진 상황에서 집을 비워주고 나가는 것은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는 상황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세입자들은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라고 푸념했습니다. "집주인과 사이가 안 좋아서 나도 정말 나가고 싶다. 그런데 나갈 수가 없다. 전세 물건 자체가 없는데 어디로, 어떻게 나가나? (전세) 물건이 있어도 값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갈 생각이 있었는데 그새 전세 시장이 너무 빠르게 바뀌었다. 이제는 불가능하다. 매수자나 집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공인중개사들도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를 두고 분쟁이 잦아졌다. 인품이 좋으신 분들도 서로 소리치고 험한 얘기까지 하며 싸운다. 한쪽에서는 '내 집인데도 못 들어온다'라고 따지고, 다른 쪽에선 '법대로 하자'라고 맞받아친다. 양측의 입장이 다 이해돼서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렵다"라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3. 집주인의 불행…팔리지 않는 집, 커진 세금 부담


기존 주택을 전세 준 '일시적 2주택자'들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세입자가 있는 기존 집을 팔아야 하는데, 이른바 '전세 낀 매물'이 되며 그 집이 잘 팔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입자가 2년 더 살겠다고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집을 사고도 입주할 수 없을까 봐 매수자들이 계약을 꺼리는 것입니다. 값을 대폭 낮춰 내놓지 않는 이상 매수자 찾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집을 제때 팔지 못하면 막대한 세 부담이 뒤따릅니다. 기존 3년이던 비과세 혜택 시한은 2년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12월 17일부터는 다시 1년으로 더 줄었습니다. 때문에 기존 집을 (보유했던 기간에 따라) 1~3년 안에 못 팔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임경인 세무사(하나은행 세무팀장)는 "가령 9억 원에 집을 사서 15억에 팔았을 경우, 장기보유 공제 등 혜택을 전부 다 받았다고 가정할 때, 시한 안에 팔면 세금은 대략 700만 원 정도 나온다. 그런데 시한 안에 못 팔면 세금은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 3억 원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이사 가려고 집이 한 채 있는 상태에서 새집을 샀는데, 옛날 집을 팔 수 없거나 새집에 들어갈 수 없으면 '2주택 보유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세금이 서너 배도 충분히 차이가 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동산 아파트 전세 매매 (사진=연합뉴스)

● 늘어난 분쟁...해결은 요원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정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관련 상담 건수도 대폭 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31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법률구조공단에 접수된 임대차보호법 관련 상담 건수는 1년 전보다 75% 이상(7,700건→1만 3,504건) 늘었습니다.
 
정부는 지역별로 있는 분쟁조정위원회를 기존 6곳에서 18곳으로 3배로 늘려 초기 혼란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분쟁조정위의 조정 성공률은 20%대에 불과합니다. 강제성이 없어 어느 한쪽이라도 조정안을 거부하면 중재는 실패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접점을 찾지 못하면 법적 소송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세입자가 계약갱신 포기를 이유로 집주인에게 부동산 중개료와 이사비 등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도 '세입자 내보내기'에 비상이 걸린 임대인의 고민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세입자가 예정대로 계약 만료일에 나가겠다며 대신 중계료와 위로금, 이사비 명목으로 목돈을 달라고 한다" 등의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입자는 "호의에 대한 대가"라고 말하는 반면 임대인들은  "집주인이 을이 된 해괴한 세상에 산다"라고 한탄합니다.
 
최봉균 변호사(법무법인 평안)는 "세입자가 '더는 집에 살지 않겠다'라고 얘기하고, 집주인이 그 말을 믿고 증빙을 남긴 뒤 그 집을 다른 사람에 팔거나 세를 주었을 때는, 매수자 등의 이익도 보호해야 하기에 갱신 요구가 어렵다는 것이 국토부 설명이다. 다만, 근거가 없거나 정확하지 않을 때는 법적 다툼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비용은 물론 시간도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 종료일이 다가오면 당사자들이 충분한 협의를 거쳐 의견을 조율하고, 공식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현재로선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세입자, 집주인 그리고 매수자까지. 모두가 생존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투쟁하는 모습. 바로 오늘 우리가 겪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읊조림과 반대로, '아무도 아프지 않지만 모두 병든'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취재 과정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또 아팠습니다.
 
● "이로움이 있는 곳에 해로움이 있다"

앞서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저서 <관물편>에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수풀에 있어야 할 개구리가 민가로 내려왔다가 결국은 닭에게 잡혀 먹힌다. 생각하건대, 사람과 가까운 곳은 땅이 기름지고 땅이 기름지면 벌레가 많으니, 개구리는 그 벌레를 쫓아 닭이 있는 민가로 온 것이다. 이로움이 있으면 해가 뒤따른 말을 이에 있어 징험할 수 있겠구나"
 
벌레는 개구리에게 탐나는 먹이이지만, 닭에게는 개구리가 더없이 좋은 식사 거리입니다. 그렇기에 한 끼 배부른 식사를 하려면 개구리는 '목숨'까지 걸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개구리는 앞뒤 못 가리고 사지(死地)로 뛰어듭니다. 이익이 있는 곳에 예기치 못한 해로움이 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한 결과는 처참합니다. 이 일로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이 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해로움을 견뎌낼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처음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을 때 적어도 취지만큼은 오해의 여지없이 선했습니다. 시장에서 이른바 '을(乙)'인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경제적 부담도 줄여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한 취지에 이견이 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진정 중요한 것은 취지가 아닌 '결과'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특정 소수가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 관련 정책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앞서 정부와 국회는 이번 정책으로 말미암아 발생할 수 있는 해로움을 충분히 헤아렸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책을 도입하기에 앞서 얼마나 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쳤고, 거기서 도출된 예상 부작용은 무엇이며,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대안을, 또 얼마나 정교하고 촘촘하게 준비했을까요? 국토부를 출입하며 담당 공무원들에게 묻고, 자료를 뒤지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봐도 아직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국민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인간 개구리'가 너무 많구나" 이렇게 한숨 쉬며 개탄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한숨을 무겁게 받아들여주길 바랍니다. 


※ 기사 작성 과정에서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과(고전문학) 교수의 저서와 연구물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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