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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임금체불공화국, 대한민국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명절이 되면 이런 뉴스가 단골 메뉴처럼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추석 연휴에도...체불임금에 우는 근로자들"
"고용노동부, 추석 대비 임금체불 방지대책 추진"

# 명절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최정규 인잇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을 앞두고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냈다. 올해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낸 보도자료와 판박이다.

최정규 인잇

올해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임금체불 노동자가 23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그 금액도 1조 2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등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사실 임금체불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체불 임금이라고 신고된 금액은 이미 1조 원을 훌쩍 넘었다. 신고되지 못한 건까지 합친다면 정말 '임금체불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2년 전 배우 곽민석 씨가 웹드라마의 제작사로부터 배우와 스태프가 당한 임금체불 피해 사례를 10분짜리 미니다큐로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동영상을 제작한 이유에 대해 곽민석 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 제작 PD는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고 음향, 분장팀 등은 팀원들에게 선지급을 해주며 빚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었죠.  잘못된 시스템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최대한 알리고 싶었어요"

▶ 웹드라마 행복한인질 임금체불 인터뷰 미니다큐

곽 씨가 미니다큐 제작 이유에 대해 제작사의 잘못이 아닌 "잘못된 시스템"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임금체불을 위해 만든 국가시스템이 정작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임금체불, 국가의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

임금체불을 당하면 우리는 고용노동부 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아 근로감독관을 만난다. 그러나 사용자의 임금체불을 철저히 '감독'해야 할 근로감독관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주장이 엇갈릴 경우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의 주장과 자료를 철저히 '감독'하려고 한다.

구체적인 체불 액수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몇 시간동안 노동을 하였는지, 연장 근로를 얼마큼 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노동자의 연장 근로를 확인할 자료가 없다며 버티고, 노동시간을 입증하기 위해 궁여지책 손글씨를 빼곡히 적어 놓은 노동자의 수첩은 근로감독관 앞에서 난도질당한다.

"수첩에 적어 놓은 걸 어떻게 믿어요? 적어도 사장님 싸인을 받아둬야 하는게 아닌가요?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연장근로시간 입증을 강요받다 지친 노동자들은 '사업주가 스스로 인정하는 체불임금의 경우 빨리 받게 해 준다'는 근로감독관의 달콤씁쓸한 권유 앞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노동청 진정을 취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실 달라질 건 없기도 하다. 사용자는 노동자의 계좌에 딱 자신이 인정하는 만큼의 추가 임금만 입금하고 검사는 기소유예처분을 내린다. 마치 공장 대량 생산라인에서 찍어내듯 생산되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적힌 불기소 이유는 아래와 같다.
 
[불기소 이유]
- 동종 전력없음
- 문제 된 체불금품 및 퇴직금 전액지급
- 체불경위 등 참작, 사안 중하지 아니함

노동청 진정절차, 근로기준법위반 형사절차에서 인정받지 못한 임금에 대해 뒤늦게라도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대부분의 판사들은 수사기관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임금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태도로 사건을 대한다. 필자는 이런 취지로 걸어 온 판사의 전화통화 내용을 공익 제보를 통해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임금체불을 해결해주겠다고 만든 국가시스템 절차와 그 과정에서 만나는 공무원들, 그들의 태도는 시민들에게 위로와 격려는커녕 화를 더 북돋우기 일쑤다. 근로감독관, 검사, 판사는 모두 임금체불을 경험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경험할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임금체불 사건에 관여하는 공무원을 채용할 때 '임금체불 피해 경험자 우대'라는 조건을 달아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건 우리가 이 국가시스템 절차에서 존중받고 우대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국민에게 근로의 의무를 부여한 국가…국가의 의무는?

국가는 국민에게 '근로의 의무'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국민의 근로에 대한 대가를 책임지고 해결해줘야 한다. 임금체불에 대해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사업주에게 구상하는 체당금 제도가 존재하지만 국가의 지급범위가 아직은 '소액'에 머물러 있어 피해 회복에 한계가 있다. 더 나아가 임금체불 발생 후 뒷북 감독이 아닌 사용자가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연장근로시간을 기록해야 할 의무를 사용자에게 지우고, 상습적으로 임금체불을 일삼는 사용자를 더 엄격하게 감독하고 처벌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국민은 아니지만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일을 하는 외국인근로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4년 7개월 동안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며 농장 일을 했음에도 3년치 넘는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분의 사연이 뉴스에 보도되어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부가 해 준 건 직권으로 조사하여 확인한 '사업주 체불임금확인서'라는 2장짜리 종이 뿐이었다.

내국인 노동자와 달리 외국인근로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변경이 허용되지 않아 임금체불 피해를 당하기 전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고, 피해발생 후에도 계속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사정에 대한 고려가 없기에 빈손으로 출국하는 일이 다반사다.

노동자 노동 근로자 (사진=픽사베이)

# 우리가 정말 듣고 싶은 뉴스는?

"추석 연휴에도...체불임금에 우는 근로자들"
"고용노동부, 추석대비 임금체불 방지대책 추진"

명절에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이런 우울한 소식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싶은 뉴스는 다음과 같은 통쾌한 소식이 아닐까?

​"임금체불은 한 가정을 파괴하고 시민들의 꿈을 짓밟는 행위이므로 법정 최고형으로 구형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건 가짜뉴스다. 그나마 팩트 또한 임금체불의 법정최고형이 고작 징역 3년이라는 것과, 임금체불로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업주 대부분은 임금체불액수보다 낮은 벌금액수를 선고받는다는 사실이다.

명절을 앞두고 임금체불 방지대책을 추진한다는 호들갑은 이제 그만 떨고, 정부가 평소에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명절에는 우리 모두가 기쁜 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모든 노동자들, 외국인근로자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해피 추석'이길...

* 편집자 주 : 최정규 변호사는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사건 △성추행·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노동자 사건 △신안 염전 노예 사건 등의 변호를 맡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인잇 네임카드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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