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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부모님의 큰 사랑, 받기만 할 땐 몰랐습니다

[인-잇] 부모님의 큰 사랑, 받기만 할 땐 몰랐습니다

파파제스 |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예쁜 딸을 키우는, 육아하는 아빠

SBS 뉴스

작성 2020.10.01 11: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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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생강차

요 며칠 감기로 고생했다. 기침이 심해 목이 붓고 콧물 재채기로 쉴 새 없이 코를 풀어야 했다. 나는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심했다. 멈추지 않는 기침으로 대화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 기침 소리에 겨우 잠든 아기가 깰까 봐 거실로 나왔다. 한밤중이라 약을 사 올 곳도 마땅치 않아 따뜻한 차라도 타 마실까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가 문득 생강차가 생각났다. 감기에 걸리면 어머니께서 항상 끓여주시던 생강차. 그런데 막상 혼자 끓여보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따르릉-'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아들의 전화가 반가우셨는지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야~ 아들, 우얀 일이고? 저녁은 묵었나?"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요. 당연히 먹었죠."

대충 대답하고는 생강차 끓이는 법을 여쭤보았다. 걱정이 가득한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알려주신 재료를 곱씹어 보았다. 생강, 귤껍질, 대추, 꿀, 사과 또는 배… 생각보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았다.

그런데 집에는 생강 한 조각도 보이질 않았다. 마트도 문을 닫은 시간이라 지금으로선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무것도 없었다. '아… 어떡하지?' 다시 집안 여기저기를 뒤져보니 냉장고 맨 위 칸에 노란 감귤청이 눈에 띄었다. 평소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감귤청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감귤청에 요리할 때 쓰는 생강가루와 꿀을 넣어 끓여보니 나름 생강차 비슷한 맛이 났다. 어찌어찌 만든 생강차를 마시고 나니 기침이 좀 잦아들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겨우 잠을 청하고 다음 날 아침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외출은 일절 하지 않고 처방 받은 약과 함께 끓여 놓은 생강차를 마셨다. 약을 챙겨 먹고 따뜻하게 옷을 입고 따뜻한 것만 먹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집에서 푹 쉬니 몸이 많이 회복됐다. 나는 그렇게 감기를 털어내고 잊고 있었다.

얼마 후 일이 있어 부모님 댁을 찾았다. 현관문을 여니 주방에서부터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서 생강차를 끓이고 계셨다. "아들, 이거 마시고 얼른 나사라" 어머니께선 내가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커피색만큼 진한 생강차를 작은 쟁반에 내어 오셨다. "감사합니데이"하고 뜨끈뜨끈한 생강차를 호호 불어 마셨다. 내가 끓인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이 진한 게 꼭 보약 같았다. 예전에는 맛이 없어 쳐다보지도 않던 생강차가 그날따라 왜 이렇게 맛있게 느껴졌는지. 다음 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께서 뭘 또 바리바리 싸주신다. "생강차데이, 갖고 가서 나을 때까지 마셔야 된 데이." 보온병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해야 했다. 어느새 밤 12시가 다 되었다. 그만 자러 들어가려는데 탁자 위에 놓인 촌스러운 빨간색 보온병이 눈에 들어왔다.

'아, 맞다. 생강차!' 자기 전에 한 잔 마셔볼까 하고 컵에 따랐더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받은 지 10시간도 훌쩍 넘었는데 생강차는 여전히 어머니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따뜻한 생강차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을 기꺼이 해줄 수 있을까?'

어머니의 온기를 가득 품고 있던 생강차.
나에게도 세 살 된 아이가 하나 있다. 너무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때론 밥 차려주는 것도 힘들고 치우는 것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실컷 밥을 차려줬는데 안 먹는다고 떼를 쓸 때면 정말 힘이 빠진다. "그래, 너 먹고 싶은 거 먹어라" 하면서 간식을 쥐어주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야금야금 아껴 먹는다.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무엇하러 먹지도 않는 걸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께선 내가 감기에 걸릴 때마다 그 귀찮은 일을 매번 해오셨다. 생강을 까고, 귤껍질을 벗기고, 마트에서 사과를 사 와 대추와 꿀을 넣고 한약 달이듯 생강차를 끓여주셨다. 그렇게 애써 끓여 놓으면 아들놈이 '감사합니다' 하고 먹을 때가 없었다. '아~ 먹기 싫어. 생강차 맛없어. 감기는 그냥 푹 자면 돼..' 한 대 콕 쥐어박고 싶다. 다 큰 자식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떼를 썼다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낯이 다 뜨겁다.

정작 어머니가 감기에 걸렸을 때 나는 뭘 했나 생각해보면 해드린 게 하나도 없다. 차를 끓여 드리지도, 약을 사드리지도 않았다. 고작 따뜻하게 입으라는 말 정도가 다였으니 불효 자식이 따로 없다. 생강차를 끓여 드리지는 못할망정 끓여주신 것도 감사하며 마신 적이 없으니 정말 고약한 놈이다.

받기만 할 땐 몰랐다. 생강차 하나 끓이는 게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 도저히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다. 내가 다시 감기에 걸린다 해도 또 한 번 스스로 생강차를 끓여 마시진 않을 것 같다. 그냥 편의점에서 쌍화탕 한 병 사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떨까?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번거롭더라도 직접 생강차를 끓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 우리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문득 어머니께서 혼잣말처럼 하시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 자식한테 하는 거 반만큼이라도 부모한테 하면 효자 소리 듣는다.' 예전에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데 자식을 키워보니 알 것 같다. 내 아이가 뭘 달라고 하면 나는 벌떡 일어나서 가져다주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군말 없이 나가서 사 오곤 한다. "아빠, 이게 뭐야?"하고 열 번을 물어보면 열 번을 답해주고 음식을 먹다가 열 번을 흘려도 열 번을 다 닦아준다. 그런데 정작 부모님에게는 어땠나? 아이한테 하는 반의반도 못하고 있는 나였다.

어쩌면 효라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늦은 밤 나의 전화 한 통에도 반가워하시는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더 드리는 것,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효도인 것 같다.

"식사는 하셨어요?" 이런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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