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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우리나라 동물병원 진료비, 비싸지 않아요.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동물병원 수의사 (사진=픽사베이)

경상남도가 창원 시내 동물병원 70곳에서 '반려동물 진료비 자율표시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초진·재진료, 개·고양이 예방접종, 심장사상충을 포함한 기생충 예방, 흉부방사선, 복부초음파 등 20개 항목의 수가를 각 병원이 자율적으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경상남도는 창원 지역 동물병원에서 시범적으로 진료비 자율표시제를 시행한 뒤 다른 지역으로까지 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제도는 '경남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 완화 TF'에서 만들어졌는데, TF에는 도·시군 관계관과 경남수의사회, 동물보호단체, 보험업계가 참여했다. 수의사단체를 포함해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이해관계자가 모여 합의해낸 것이 중요하다. 경남수의사회가 대단히 어려운 결정을 해주셨다"고 평가했다.

이런 제도가 추진된 이유는 '많은 반려동물 보호자가 동물병원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동물병원 고객)의 84.8%가 병원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약 85%의 보호자가 부담을 느끼다 보니, 진료비 부담을 줄이겠다고 각종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일부 정책은 효과보다 우려가 앞선다. 진료 시작 전 가격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진료를 할 수 있는 '진료비 사전고지제', 아예 동물병원 진료비를 국가에서 정하는 '표준수가제' 등이 그러하다. '진료비 사전고지제'는 '동물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등 농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진료행위'에 대해 예상 진료비 설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미 많은 동물병원이 진료 전 보호자와 상담을 할 때 진료비를 안내하고 있는데, 굳이 이를 강제화하고 심지어 위반 시 처벌까지 하는 건 수의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가 아닐까 한다.

'표준수가제'는 더욱 심각하다. 의료보험제도가 있는 사람과 달리,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전혀 없는 동물병원 진료비를 정부가 강제로 정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게 염려된다. 사람의 비급여 진료(미용 목적의 성형수술 등 건강보험공단 지원 없이 소비자가 비용 부담을 하는 진료)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일부 진료비를 조사할 뿐, 진료비 자체를 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진료비를 정해버리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침해되고 낮은 수가로 인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나라에서 '쌍꺼풀 수술비용 30만 원, 코성형수술 50만 원'이라고 가격을 정했다고 가정해보자. 같은 가격이니 병원에서는 굳이 좋은 수술방법이나 비싼 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제일 비용이 적게 드는 수술법을 택할 것이다. 그럼 비싼 돈을 내더라도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소비자는 그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이 무리한 제도가 추진되는 이유는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는 편견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동물병원 진료비는 저렴하다. 비싸다는 표현은 상대적인 표현인데, 우리나라 동물병원 진료비는 사람에 대한 진료비와 비교하면 당연히 가격이 낮고 해외 동물병원 진료비보다도 값이 싸다.

많은 사람이 "내가 병원에 가면 몇천 원이 안 나오는데, 강아지는 몇만 원이 나와요"라고 불평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만 따진 것이다. 병원 진료비 영수증을 보면 '공단부담금'과 '본인부담금'이 별도로 표시되어 있고, 본인부담률은 20% 수준이다. 다시 말해 80% 할인된 가격만 지불하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항목의 본인부담률은 5% 수준이며, 본인부담금 조차 평소 가입한 실손형 민영보험에서 돌려받는다.

그럼 공단부담금은 누가 주는 것일까? 아시다시피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한다. 그 돈은 누가 내는가? 전 국민이 매달 낸다. 예를 들어 회사원 김병원 씨가 한 달에 건강보험비로 20만 원을 냈다면, 회사에서 같은 금액을 더 내주므로 실제로 한 달에 40만 원의 건강보험비를 내는 것이다. 1년에 병원, 약국을 단 한번 안 가도 김병원 씨는 이미 1년에 480만 원의 의료비를 내고 있다. 여기에, OO보험, XX생명에 내는 실손 보험비까지 합치면? 500만 원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 의료보험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동물진료비는 100% 본인 부담인 것이다. 따라서 평균 본인부담률이 20%인 사람 진료비와 비교하며, '동물병원비가 더 비싸다'라고 얘기하는 건 잘못된 주장이다. 약값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대한 약값은 나라에서 지원해주지만, 동물병원 약값은 100% 보호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커진다.

결론적으로 동물병원 진료비는 '사람 진료비'보다 싸다.
더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갖춰졌다는 건강보험 제도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동물도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면 된다'라는 분도 있는데, 동물을 키우는 분들께 묻고 싶다. "동물병원에 한 번도 안 가도 매달 소득에 따라 일정 금액의 동물건강보험료를 내실 수 있나요?" 일부는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의무사항인) 동물등록률조차 채 절반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동물 건강보험제도 도입'의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동물병원 수의사 (사진=픽사베이)

더 나아가 우리나라 동물병원 진료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가격이 낮다. 반려견 종합백신(DHPPL), 제왕절개 수술, 슬개골탈구 수술, 암컷 중성화 수술, 수컷 중성화 수술에 대해 우리나라 포함 아시아 8개 국가 진료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들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일부 항목은 태국, 말레이시아, 스리랑카보다 값이 쌌다.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여러 가지 변수와 조사의 한계점이 있지만, 미국, 독일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동물병원 진료비는 오히려 낮은 편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길게 쓰는 이유는 한 가지다. '동물병원 진료비는 비싸'다는 잘못된 전제를 놓고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 완화 정책을 펼치면, 일방적으로 수의사가 희생하는 정책만 나올 수밖에 없고, 이것은 옳은 정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85%가 동물병원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는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동물의료보험제도'도 없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공적 기관도 없는 '동물 의료시장'에서 더 강력한 규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의사협회까지 참여한 TF를 구성하여 논의를 거친 경남의 사례를 참고하면 좋겠다.

소비자분들께도 당부드린다.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우리나라 동물 진료비는 비싸지 않다. 사람 진료비보다 값싸고, 해외 동물병원 진료비보다도 저렴하다. 따라서 진료비에 부담을 느낀다면 동물병원과 수의사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펫보험에 가입해보는 걸 고려해보시길 바란다. 이미 여러 보험회사에서 다양한 펫 보험 상품을 판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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