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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to. 환자들에게, 먼저 의사로서 미안합니다

[인-잇] to. 환자들에게, 먼저 의사로서 미안합니다

양성우 | 글 쓰는 내과 의사. 책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저자.

SBS 뉴스

작성 2020.09.23 11:07 수정 2020.09.23 16: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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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끝났다.

의사협회, 전공의협의회가 정부와 타협안에 동의했다. '파업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어 안도가 된다. 파업을 하는 동안 어찌나 마음 졸였던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인지 의사들 파업에서 무기한 행동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전공의들은 자기 할 일을 모두 하고 단체행동에 나선다. 그래도 불안하니 그 빈자리를 교수들이 메웠다. 나이 50줄에 당직 근무를 서는 교수들의 건강이 우려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파업 기간 동안 내 환자가 둘이나 응급실을 가야 했었다. 보내면서 정말 많이 걱정했다.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필수인력이 상주한다고는 하지만, 내 환자가 그 수혜의 밖으로 나돌 가능성도 분명 있었다. 보내고 나서도 몇 번이나 보호자에게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시술 예약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불안한 마음을 놓았다.


전공의들이 벗어놓은 의사 가운 (사진=연합뉴스)
많은 이들이 의사는 파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파업 기간에 의사 아닌 친구들의 비난도 들었다.
"이 시국에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다. 의사란 직군의 파업은 환자를 인질로 잡은 것이기에 윤리적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꼭 필요한 명분이 아니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파업은 발생했다. 파업에 내재된 의사들 각자의 심리는 다소 복잡하다. 먼저 확신에 찬 의사들이 "공공의대는 실패한다" 주장하며 나섰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공공의대 반대'가 주된 이유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새내기 의사들이나 의대생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주제 정도이다. 그 기저에는 순수한 욕구가 깔려 있다.

일단 소신껏 진료 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 첫째 아닐까 한다. 의사들 개개인이 원래 윤리적인 사람이길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의사가 되는 과정이 이들을 환자에 미치게 만든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다.

이유는 긴 수련과정 때문이다. 전문의까지 딴 의사라면 학생 시절부터 적어도 7년, 의대 입학부터 치면 11년을 한 가지만 보며 살게 된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도, 이들에게 몸을 맡기는 환자도 전문가로서 높은 잣대를 들이대니 자기 일에 정진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들이 스스로 '의료 외적인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나중에는 진료가 인생의 전부가 된다. 그 흔하다는 재테크도 잘 모르는 의사들이 수두룩하고, 친구도 의사들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 의사들에게 진료는 하나의 자존심이다. 질 떨어지는 의료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모독이다. 의사들 사이에서 '최신지견 습득'은 실력 있는 의사로서 최대의 찬사이고, 관성이나 경험만에 의지한 진료는 지탄의 대상이다. 의사들 생각에, 의사는 끝없이 배우고 발전해야 한다. 의사들 사이에 권위가 존재한다면 단 하나, 이 최신지견을 익히기 위한 '부지런함'이다. 말하자면, 스스로 생각에 부지런한 의사라는 생각이 든다면 세상 어느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을 자유가 생긴 셈이다. 이 점은 세상 어느 의사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어느 의사 선생님은 미국으로 가서 수련생활을 다시 시작했는데, 변방의 의사라고 큰 무시를 당했다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서울대 출신인데도 미국에서 알아줄 리 없었다. 그랬던 그도 회진을 몇 번 도니 분위기가 바뀌었다. 많은 최신지견을 알고 있음을 다들 알고 나니 한순간 그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빨리 자기 능력을 알아봐주는 직업군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력이 권위를 이길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런 의사들에게 '교과서,' '가이드라인,' '최신저널'이란 거의 신앙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다르다. 한국은 모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지정' 되어 있다. 약이나 의료 행위의 가격은 국가에 의해 강제로 정해졌고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지 않은 채 수십 년째 정체 중이다. 의료 수가는 원가보다 낮은데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비록 의사의 사유재산권 침해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한 공익의 크기가 더 크다'가 합헌 이유다. 마치 의사가 손해를 본다면 과잉진료든 뭐든 해서 보충하라는 말 같다. 사유재산권의 침해는 침해 구제의 방법과 그 실효성을 전제로 공익에 양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한다. 모두의 침묵 속에서 한 인간을 공공재로 보는 인식이 생기고야 말았다.

여기서 의사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최신 지견과 교과서 진료를 따르고 싶은 신앙심 깊은 의사들이 '의학이 길'이 아닌 '심평의학의 길'을 따라야 하는 슬픈 전설의 서막이다. 이 심평의학이란 심사평가원이 정한 보험 수가 적용의 기준이다. 최신의학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 누구도 이 기준에 벗어나는 진료를 하면 안 된다. 그것이 교과서상으로 그리고 환자에게도 최선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일 어긴다면, 삭감이 날아온다.

소셜미디어에 떠돌던 한 외과 의사의 넋두리가 기억난다.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를 보는 의사였는데 환자는 장이 짧아 영양분 흡수가 안 되어 매일 수액을 맞아야 하는 상태였다. 수액을 맞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평의학에 따르면 180일이 지나면 수액 치료는 삭감이 된다. 심사를 하는 사람도 의사이기는 하지만 현장의 의사 판단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심사의가 현장에서 진료를 하지도 않는다. 현장의 의사는 수액을 줘야 한다 생각하지만 그 이상 주지 못한다. 주고 싶다면 의사가 값을 내고 줘야 한다. 의학적으로 필요하지만 청구하면 삭감이고, 그래도 치료하고 싶으면 반드시 손해를 봐야 하는 구조.

말하자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일을 하면서 자유로이 일하지 못하는 게 한국 의사들이다. 의사들의 집단 심리를 잘 들여다보면 자신의 일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데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의사와는 논의 안 한 공공의대 신설' 사건이 터진 것이다. 나는 의사 총파업이 이 복잡다단한 심리 가운데 발생했다고 본다. 배신감 같은 감정들의 촉발이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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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집단휴진에 들어간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앞서 말했듯이 의사는 파업해서는 안 된다. 많은 의사들의 생각이 그렇다. 꼭 파업을 해야 했다면 '당연지정제 철폐'가 명분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공공의대가 세금 낭비의 원인이 된다한들 파업의 명분이어서는 안 되었다. 이 점이 내가 이번 파업에 대해 갖고 있는 아쉬움이다.

파업할 때 전공의 후배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파업에 참여하려고 주말 업무까지 다 준비하고 나갔다 한다. 환자 생명과 큰 연관이 없는 과 전공의도 그렇더라. 본래 파업이 갖고 있는 뜻은 업무가 중단되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의사들은 환자 보기를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전국적으로 사상자가 없는 것이 그 증거다. 이만큼 우리들은 환자 보기에 미쳐 있다. 우리가 그런 사람임을 알아주길 원하면 너무 큰 바람일까.

어쨌든 다시 아무런 일이 없던 것처럼 돌아왔다. 내년에 의대생 졸업자가 안 나오게 되면 그때는 의료 대란이 한 차례일지도 모르겠다. 유일한 걱정거리다. 공공의대는 십여 년 뒤에나 생긴다 한다. 진료는 예전처럼 돌아왔고, 요망한 코로나는 아직도 치료 현장을 잡아 흔들고 있다. 밤길을 나서면 앰뷸런스 사이렌이 어둠 가운데를 휘젓는다. 응급실의 인턴은 구두를 신고 복도 이리저리를 질주할 것이다. 완전한 일상이다.

그럼에도 안도감과 불안함,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내 안을 지배한다. 내 동료들도 그럴까 한다. 하지만 묻지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다. 환자를 보며 바빠지지만 그런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환자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하겠다.
이 소동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하여. 한 사람의 의사로 미안함을 표하고 싶다.
인잇 양성우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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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의사이자 작가이며 유튜버, 어떻게 다하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