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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CDC 바보 만든 트럼프…"처칠도 정직하지 않았다"

[취재파일] CDC 바보 만든 트럼프…"처칠도 정직하지 않았다"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20.09.18 11:13 수정 2020.09.18 11: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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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들고 있는 로버트 레드필드 미 CDC 국장
● "일반인 백신 접종은 내년 여름·가을이나"…CDC 국장의 의회 증언

미국의 코로나 사태 초기 대혼란을 불러왔던 '불량 진단기' 출시의 원흉으로 지목됐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한때 동네북 신세였습니다. 세계 최고라는 명성과 걸맞지 않게 코로나 대응에 여러 구멍이 보였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장과 달리 유약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던 로버트 레드필드 CDC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엉뚱한 소리를 할 때 바로잡아줬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난 2018년 전임자가 추문으로 중도 사퇴하면서, 느닷없이 CDC 국장으로 임명했던 레드필드 국장은 임명 당시에도 여러 경력을 봤을 때 공중 보건을 담당하는 기관의 최고 책임자로는 적격이 아니라는 비판론이 꽤 있었습니다.

레드필드 국장이 어제(17일) 미 상원 청문회에 나와서 백신과 관련해 최근 진전된 상황에 대해서 증언을 했습니다. 그가 한 얘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백신은 11월, 12월에 나올 것이다. ② 백신이 나와도 공급량이 제한적이어서 일반인이 접종하려면 내년 2분기 말이나 3분기는 돼야 한다. ③ 코로나 백신 면역력은 70% 정도다. 마스크는 그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증거가 있으니 모두 마스크를 써달라. 특히 마스크 효과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며, 젊은이들도 꼭 써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로버트 카들렉 보건복지부 차관보도 청문회 증인이었는데, FDA가 승인하는 조건으로 코로나 백신을 3,4주 내로 출시할 수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레드필드 국장과 백신 출시 시점으로 보면 한 달 정도 차이가 있었지만, 누구도 그게 이상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CDC 국장이 한 달 정도 보수적으로 백신 보급 시점을 전망한다고 생각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초고속 백신 개발 책임자로 임명한 몬세프 슬라위 박사도 이달 초 NPR 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일반 대중은 2021년 중반이 돼야 백신을 맞을 수 있다고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백신 개발에 관여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CDC 국장이 질문을 이해 못 해"…긴급 기자회견으로 반박한 트럼프

그런데 미국 언론들이 '백신 접종 내년 여름이나 가을까지 기다려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백악관이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한 달 차이라도 대선 전에 백신이 출시되느냐 아니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던 겁니다. 일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이 잡히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신경 방사선 전문의 스콧 아틀라스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아틀라스 박사는 폭스 뉴스에 패널로 자주 등장해, 파우치 소장과는 정반대 주장을 주로 하던 사람입니다. (스콧 아틀라스는 집단 면역을 주장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 언론들은 집단 면역으로 코로나가 해결되려면 지금 미국 사망자의 10배쯤 되는 200만 명 넘게 숨져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CDC 국장을, 의원들 질문도 제대로 못 알아듣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백신 출시는 다음 달이면 가능하고, 즉시 보급도 가능해 연말까지 1억 회 접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전화해서 레드필드 국장에게 따졌고, 자기한테 설명도 제대로 못하더라는 내용까지 소개했습니다. 마스크와 관련해서도 정면 반박했는데, 마스크 착용이 문제가 많으니 백신이 마스크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청문회에 나온 전문가 모두 마스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반대 메시지를 발표했던 겁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전 백신 출시는 결정된 사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에 반기를 들거나 다른 전망을 하는 사람은 공개 망신이나 사표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트럼프 지지자들도 마스크 안 쓰고 선거 유세에 나오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도 마스크는 더 이상은 안 쓰기로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레드필드 국장은 몇 달 전 언론 인터뷰에서 겨울철 2차 코로나 재확산 위험을 경고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그 메시지를 수정하라고 연단에 불려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또 질문도 이해 못 하는 함량 미달 CDC 수장을 만들었으니 '망신 흑역사'가 추가된 셈이었습니다. 평소 소신 발언을 자주 하는 파우치 소장 같으면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겠지만, 레드필드 국장은 그 뒤에도 트위터에 대통령 얘기에 동의한다는 유화적인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틀라스 박사처럼 확실한 '트럼프 예스맨'을 곁에 두고 같이 다니기 시작했으니, 코로나 대응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더 자기 길을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코로나 관련 피해 상황이 다소 나아지는 건 다행스러운 부분입니다. 여전히 신규 확진자가 4만 명대지만, 이 정도 수치는 미국에서 양호한 수준입니다. 워싱턴 특파원들이 많이 사는 버지니아주도 여전히 하루 확진자가 1천 명 가까이 나오고 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무덤덤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날이 추워지면서 대통령 선거 즈음해 독감과 코로나19가 동시에 몰아칠 가능성이 매우 큰데, 이런 상황에서 그런 큰 위기가 또 찾아올 때 과연 제대로 대응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 적반하장의 '끝판왕'…처칠 비유하며 "나는 업플레이(과하게 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곤경에 처할 때 여간해서는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악당 정치' 대부로 통하는 대통령의 비선 측근 로저스톤이 "공격, 공격, 공격뿐 방어는 없다"고 한 말이 유명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공격 말고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와 통화 녹취에서 일부러 코로나 위험성을 축소했다(downplay)고 실토하면서 곤경 처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는 국가의 치어 리더라 공포를 조장하지 않기 위해 그런 거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ABC 방송에 출연해서 한술 더 뜨는 논리를 선보였습니다. 트럼프은 "다운 플레이(축소)를 한 게 아니라, 업플레이(과하게 대응)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빠르게 중국발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았다면 2백만 명이 죽었을 거라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동안은 그 조치가 없었다면, 수백만 명이 숨졌을 거라고 말했었는데, 그 숫자가 지금의 열 배인 2백만으로 특정됐습니다. 사실 그 근거를 한 번도 소개하지 않아 왜 2백만 명이 숨졌을 거라고 보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ABC 앵커가 코로나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한 근거가 뭐냐고 했더니, "우리 모두 집에 돌아가지 않냐. 이 스튜디오도 계속 이렇게 있지 않고 결국 빈 공간이 될 것 아니냐"고 응수했습니다. 팬데믹 대응을 논하는 자리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식의 뜬구름 잡는 얘기로 설명하는 건 다소 황당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경제 재개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며 "코로나 아니어도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 구조와 많이 닮았습니다.

2차 대전 때 영국을 이끌었던 처칠 총리를 거론하며 자신의 대응이 문제없다고 강변했습니다. 나치가 런던을 폭격하는데 처칠도 사람들에게 "모든 게 괜찮아질 겁니다. 침착하세요"라고 말했는데, 그것도 엄밀히 보면 정직한 것은 아니었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래도 처칠은 훌륭한 리더 아니었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총리도 정직하게 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발언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코로나 실태를 고의로 은폐해 수많은 부실 대응을 불러오게 했던 책임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먼저 사실을 전달하고,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위로하는 것과, 처음부터 사실을 숨기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발언 도중 나온 실언은 이제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가 백신 없이도 사라질 것이라며 집단 정신력(herd mentality)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황당한 말이어서 이를 풍자 비판하는 수많은 글이 SNS에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도 스스로 대통령이 집단 면역(herd immunity)을 말한 것 같다며, 알아서 자체 교정을 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 은폐와 편 가르기…정치에 볼모 잡힌 팬데믹 방역

중동 평화협정 체결하는 미국-이스라엘
백악관에 코로나 확진자가 또 나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백악관에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정상이 모여 평화 협정을 체결한 직후에 알려졌습니다. 마스크도 쓰지도 않고 마치 팬데믹 이전처럼 행사를 했는데, 누가 어떻게 전파했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수장과 말을 하면서 기침을 하는 영상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는데, 전염병을 조심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확진자가 접촉한 사람을 격리하는 절차에 들어가야 하는데, 백악관은 의료 정보라며 아예 아무런 정보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근처에 오는 사람은 코로나 검사를 한다지만, 백악관 직원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 근무하는 실정입니다.

전염병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파적인 태도는 볼 때마다 놀라울 정도입니다. 코로나 브리핑에서도 "블루 스테이츠(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사망자가 많다"고 말을 했는데 사실 근거는 없습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 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피해가 컸지만, 지금은 오히려 중남부를 중심으로 공화당 지역의 타격이 훨씬 더 큽니다. 바이러스가 소속 정당을 구별해서 감염시키는 것도 아닐 텐데,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전염병에 대처한다는 건 선거를 위해 국민을 편 가르기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코로나 팬데믹을 정치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연말까지 지금 사망자의 두 배 이상 미국에서 숨질 거라는 전망까지 나와 있습니다. 팬데믹 방역이 정치에 볼모로 잡히면 얼마나 큰 피해가 일어나는지, 미국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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