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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이 시국 여행, 이렇게 갑니다

김다영 | 여행 전문가. 여가 설계와 여행 트렌드를 강의하고 있다.

[인-잇] 이 시국 여행, 이렇게 갑니다
지난 9월 3일, 문화재청 유튜브가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경주 황남동의 신라 금동관을 출토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출토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한 것이다. 문화재청 유튜브 팔로워가 1만 명이 조금 넘는데, 이 생중계의 누적 조회수는 5만 9천 명이나 된다. 그러니까 이 라이브는 구독자가 아니어도 찾아서 본 사람들이 많을 만큼 화제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눈여겨 본 대목은, 생중계가 끝난 후 영상에 달린 댓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에 가고 싶어요' 또는 '오랜만에 다시 가보고 싶네요' 등 경주 여행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니까 신라의 유적을 발굴하는 장면을 보면서, 예전에 수학여행이나 가족 여행으로 방문했던 경주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유적지에 대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새롭게 만들어진 장소에는, 직접 가보고 싶다는 동기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를 통해 코로나 시대의 '랜선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벌써 반년이 넘게, 우리는 여행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시대에 여행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랜선 여행'의 출현일 것이다. 온라인 여행이나 원격 여행을 일컫는 랜선 여행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계 여행업계에서는 '상업화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여행 회사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온라인 투어 상품을 속속 선보였다. 랜선 여행이라 불리는 상품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현지의 여행 가이드가 여행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소개하거나, 또는 강의처럼 여행 정보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한다. 유튜브에 널린 게 여행지 소개 영상인데, 과연 원격으로 여행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지갑을 열까?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랜선 여행은 결국 하나의 상품으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마이리얼트립과 같은 플랫폼에 론칭된 랜선 여행을 보면, 해외뿐 아니라 고궁을 투어하는 국내 여행 상품도 있다. 물론 랜선 여행을 경험하려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존의 여행 영상에는 실시간성이 없는 반면 랜선 여행 상품에는 진행하는 호스트와 참여자 간의 상호작용이 핵심 가치로 작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문화재청 라이브에서도, 다소 지루할 법한 출토 과정을 많은 이들이 관람한 이유 중 하나는 댓글이 재밌어서다. "1970년대 이후 풀착장 고분 발굴은 처음이다, 천오백 년 전 왕가 플렉스네"와 같은 센스 넘치는 댓글이 이어지니, 온라인 상에서 새로운 현장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랜선 여행에 적응하면서, 나름의 즐기는 법을 찾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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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세계지도, 여권 (사진=픽사베이)

비대면이 바꾸는 여행의 또 다른 변화는 항공과 호텔업계의 자동화와 비접촉 서비스의 증가다. 물론 인적 서비스의 일부가 자동화되는 것은 전 산업에 걸쳐 일어나는 흐름이기는 하나, 그 변화가 코로나로 인해 너무도 급격하게 진행되는 여행업계에서는 종사자들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비대면과 비접촉을 구실로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사라지는 서비스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본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항공사의 기내지 발행 중단이다. 이미 대한항공은 지난 5월부터 기내지 '모닝캄' 발행을 중단했고, 최근 영국항공도 47년 만에 기내지 발행을 중단하고 디지털 에디션으로만 발행한다고 밝혔다. 기내지는 출판에도 비용이 들지만, 무게로 인한 운송 비용도 든다. 따라서 종이 기내지 중단은 코로나 전염 방지를 위한 노력이지만, 항공사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의 일환이기도 하다.

9월 5일에 에어아시아가 뉴스레터로 보내온 '시작부터 끝까지 안전한 비접촉식 여행'의 여행 순서도를 보면, 향후 2~3년간 항공 여행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지 전망해볼 수 있다. 비행 전에는 해당 국가 입국에 요구되는 각종 승인과 문서를 확보해야 하고, 항공사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예약과 체크인까지 미리 마친다. 공항에서는 무인 키오스크에서 탑승권과 수화물 태그를 인쇄하고, 필요한 경우 역시 키오스크에서 추가 결제를 진행할 수 있다. 탑승 게이트에서는 체온 측정을 하고, 탑승 전후에는 다른 승객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기내에서는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필수로 착용하고 지참해야 한다. 입국 심사 시에도 건강 상태 측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아무리 비접촉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 비해 참으로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호텔 역시 호텔 서비스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프론트 데스크에서의 대면 체크인 대신, 체크인 전용 기기를 통한 비대면 체크인을 늘려가는 모양새다. 2019년 말 즈음 나인트리프리미어호텔 인사동에 방문했을 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체크인 키오스크를 접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매우 생소한 호텔 서비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러 호텔이 비대면 서비스를 늘려가고 있다. 롯데호텔의 L7호텔이 무인 단말기를 도입했고, 메리어트 계열의 목시호텔 인사동과 코트야드메리어트서울보타닉파크는 키 리스(Keyless) 시스템을 도입해 객실 키 없이 스마트폰으로 입실할 수 있다.

언택트 서비스는 편리하고 신속하다. 또 대면 서비스를 꺼리는 젊은 소비자에게는 더욱 유용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호텔에서 기대했던 정중하고 사려깊은 대면 서비스는 점차 특별하고 예외적인 서비스가 되어가고 있다. 숙련된 호텔리어가 단골 고객을 알아보고 선사하는 객실 업그레이드와 같은 인적 서비스를, 키오스크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화가 가져오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인적 서비스의 역할이 점차 '인스턴트화' 되어 간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랜선 여행과 비대면 서비스의 시대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이 왜 '사회적 동물'인지를 깨닫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행산업의 더 많은 영역이 사라지거나 간편 서비스로 대체되기 전에, 하루 빨리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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