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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직장 생활하며 치솟는 화, 다스리는 방법은요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직장 생활하며 치솟는 화, 다스리는 방법은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직원들에게 그렇게 일 처리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 또 그랬다. 치솟는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어 마셨다 내쉬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소 진정이 되었을 때 해당 직원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왜 이렇게 했어요?"

"회사 지침대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한테는 보고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에도 내가 이런 식으로 일하지 말자고 여러 번 얘기한 것 같은데… 본사와 얘기하다가 나만 바보 되었잖아요."

처음에는 차분하게 얘기하다가 "나만 바보 되었잖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당시의 당황과 열받음이 떠올라 감정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몇 번의 문답 후 결국 평상심을 잃고 쇳소리를 내며 화를 내고 말았다. 화가 저절로 끓어 넘쳐 제어가 안되더니 사자가 포효하듯, 황소가 뿔을 하늘로 치받으며 발굽으로 모레를 흩뿌리듯, 성난 개가 사람을 무섭게 노려보듯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위협적인 말을 내뱉았다. 그렇게 난 한동안 격정을 내뿜고 주의를 준 뒤 상황을 끝냈다.

그들이 나가고 나는 한참 동안 책상 등받이에 등을 대고 눈을 감은 상태로 분을 삭이며 원기를 회복하려 했다. 화를 내는 것은 마치 육상선수가 백 미터 달리기 경주에서 우승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는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어서 그 뒤 기진맥진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녹초가 된 상태에서 "잘못한 것은 꾸짖되 화는 내지 말자"라는 다짐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에 대한 후회도 들면서 공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자기 변명거리를 찾았다. '이거 내 잘못이 아니야. 어떻게 이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있겠어. 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기운을 차리고 다시 일을 시작할 즈음 전화가 왔다. 아이고, 신경질을 많이 내는 그 분이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다짜고짜 나한테 왜 편법을 쓰느냐고 난리다. 내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그분은 화가 더 났는지 귀가 떨어질 듯한 큰 소리로 난리 난리를 쳤다. 그분은 마치 재갈이 물려 있지 않은 야생마처럼 날뛰었다. 전화기 너머로 이를 부득부득 가는 소리, 호흡이 거칠어 지면서 나온 강한 탄식과 함께 온몸의 관절이 비틀린 것 같은 우두둑 소리도 들렸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흥분하여 말까지 더듬는 그분이 지적하는 바를 얼른 종합해 보았다. 이런,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분이 착각을 한 것이다. 나는 답변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난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분은 "똑바로 하자"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 보니 서서히 화가 부글부글 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야"라고 읊조리며 그분의 위협적인 말투와 부당한 처사에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혼자 화를 삭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나 스스로 한심한 듯 씩 웃고 말았다. 아까 내가 부하 직원들에게 화를 낸 뒤 "부당함을 당했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낼 수가 있어"라고 했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부당함을 당하긴 마찬가지인데 왜 나는 그분한테는 화를 내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화는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참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또 화는 아무에게나 내는 것도 아니다. 흔히들 화를 내는 이유를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혹은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방금 나의 경우처럼 보통 사람들은 똑같은 부당함과 위협을 당했어도 부하 직원에게는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자신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사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화도 거둬들인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결국 화는 대부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과 같이 자신이 싸워볼 수 있는 사람, 만만한 사람에게 내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직장인들은) 왜 선택적으로 화를 내는 것일까? 조직에서 살아남고 좀 더 잘 나가려는 욕심 때문이다. 보직해임, 좌천, 정리해고는 피하고 인정, 승진, 근속을 적극적으로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이 대상을 가려 화를 내는 목적이라면 역설적이지만 화는 윗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동료들이나 아래 사람에게도 내면 안 된다. 내가 보고 들은 바가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경험상 화를 지나치게 내는 분들의 화는, 그 목적이 진정 조직의 승리를 위해 내는 것 혹은 부하 직원을 아껴서 내는 것이라고 하여도, 결국 그 화(火)가 자신에게 화(禍)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오너인 최고경영자가 지나치게 화를 냈다가 바깥에 노출되어 경영에서 물러난 경우도 있었고, 계속 자리를 보전할 줄 알았던 성마른 고급 간부들이 상황이 변해 적폐로 몰려 옷을 벗기도 했으며, 또 어떤 선배는 그간 지나치게 낸 화가 불행히도 건강을 해쳐 스스로 낙마하기도 했다. 따라서 진실로 화를 내는 목적이 자신의 생존 혹은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화는 반드시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위의 결론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순전히 자신만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려고 한 이유는, 사람은 대부분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기 싫어하는 까닭에 화를 내면 본인에게 막대한 손해가 생겨남을 얘기하여 화가 많은 분들이 화를 내려놓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어딘가의 홍보 문구처럼 혼나고 있는 상대방은 누군가의 귀한 자식,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이다. 자기 자식이, 부모가 처참하게 혼이 난다면 그 누가 좋겠는가?

그렇다고 조직 생활하면서 화를 '전혀 내지 말라'는 얘기는 또 아니다. 회사에서 적당한 화, 정당한 질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단지 어떤 목적, 어떤 상황이든 간에 도를 넘는 화, 갑질 같은 화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화내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 자신이 화를 냄으로써 조직이 더 잘 돌아간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실행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나 역시) 노력하면 할 수 있다. 특히나 화는 상대방을 가려서 낸다는 점을 잊지 말고 실제로 화가 폭발하려고 할 때마다 상대방이 나를 죽일 수도 있는 히틀러, 네로, 김정은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내 경험상 치밀었던 화가 잠시 미뤄지거나 혹은 누그러지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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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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