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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놀란이 바꾼 영화보기의 패러다임…'테넷'의 명암

[빅픽처] 놀란이 바꾼 영화보기의 패러다임…'테넷'의 명암
크리스토퍼 놀란의 흥행 매직도 코로나19 앞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신작 '테넷'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올리며 국내외에서 고전 중이다.

한편으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악재를 고려하면 '이 정도' 성적도 놀랍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놀란 감독 스스로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야심찬 영화"라는 자신감과 의미 부여를 했던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흥행 성적과 반응 모두 아쉬운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테넷'은 놀란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대소재인 '시간'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이 늘 그러했던 것처럼 관객을 긴장하고 집중하게 하는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놀란은 이번에도 자신의 취향과 철학이 담긴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었으나, 매 작품 열광적인 반응을 내놓았던 관객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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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의 놀란도…코로나 여파가 흥행에 끼친 영향

'테넷'은 지난달 26일 국내 개봉해 9월 11일까지 전국 117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100만 돌파까지 걸린 시간은 12일. 놀란 감독의 전작 '덩케르크'가 4일, '인터스텔라'가 3일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거북이걸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 속에서 개봉했고 상영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워너브라더스는 개봉 일주일 전 국내 영화계의 반감을 일으키면서까지 유료 시사(8월 22~23일)를 감행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테넷'의 정식 개봉 시기는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시기와 맞물렸다.

코로나19 2차 광풍 전까지만 해도 국내 극장가는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각각 300만, 400만 관객을 모아 회생의 조짐의 보이고 있었다. 워너브라더스가 자국인 북미보다 한국 개봉 시기를 앞서 잡은 것도 한국 시장의 전망을 그나마 희망적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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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를 비롯한 월드 박스오피스에서도 선전은 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9월 3일 북미에서 개봉한 '테넷'은 첫 주 2,020만 달러(한화 약 239억 원)의 극장 수익을 기록했다. 미국 내 양대 영화 시장인 뉴욕과 LA의 극장이 영업을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거둔 성적이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 박스오피스에서는 지금까지 1억 3,210만 달러(한화 1,568억 원)를 벌어 들였고, 전체 박스오피스는 1억 5,230만 달러(한화 약 1,808억 원)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테넷'이 2억 달러(한화 약 2,373억 원)가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것을 생각하면 손익분기점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북미에서의 성적이 흥행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테넷'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봉한 최초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월드 박스오피스에서 1,000억 원이 넘는 극장 매출을 올린 영화도 '테넷'이 처음이다. 미국 극장의 재개장 움직임 속에서 신호탄을 알린 영화라는 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수치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워너브러더스는 '테넷' 흥행에 대해 "매우 기쁘다. '테넷'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 될 것이다"며 "전례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이전 세계에서의 흥행 수익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미국 극장이 문을 닫고 개봉길이 막히면서 주요 배급사들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가운데 개봉한 '테넷'은 여러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 작품이었다. 놀란 감독과 오랫동안 협업해온 워너브라더스 역시 이를 통해 시장 상황을 보다 냉정하게 파악하고 '원더우먼1984', '컨저링3', '고질라vs콩', '듄' 등 주요 기대작의 라인업을 재편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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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과 감상 사이에서...영화에 대한 피로감↑

'테넷'의 흥행 성적과 별개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역시 놀란!"이라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실망스럽다"라는 반응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놀란 영화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영화지만 "최고작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1998년 영화 '미행'으로 데뷔한 놀란 감독은 2001년 '메멘토'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아내가 살해당한 후, 10분밖에 기억을 못 하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사진, 메모, 문신으로 남긴 기록을 따라 범인을 쫓는다는 참신한 이야기와 탄탄한 연출력으로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과 호평을 거뒀다. 시간이라는 방대한 토양 위에 이야기의 집을 짓기 시작한 놀란표 영화 모험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인셉션'에서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야심을 보였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의 깊이와 데이빗 린치의 명작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맞먹는 탄탄한 플롯으로 영화보기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도 했다. 영화를 감상의 영역으로 생각한 관객들을 해석과 분석을 동반한 지적 유희의 영역으로까지 안내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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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우주 세계를 탐구한 '인터스텔라', 역사적 사건 속 시점 공존이라는 흥미로운 실험을 감행한 '덩케르크'를 거쳐 놀란은 인버전을 활용한 시간 여행인 '테넷'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계획을 막으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양전자 이론과 평행우주, 다중현실 등 물리학 개념들을 끌어와 진입 장벽은 높지만 장르적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첩보물이다.

스토리 라인이 복잡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다루는 소재가 생소하고 어렵기 때문에 집중력을 잃게 되는 순간 영화는 따라갈 수 없는 '저 세상 이이야'가 되고야 만다.

​러닝타임 역시 마라톤 시간대인 2시간 30분에 이른다. 인버전의 개념을 설명하는 초중반의 몰입이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때문에 놀란 감독은 영화 초반 오페라 하우스 테러 씬의 스펙터클을 강화해 관객의 집중도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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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넷'은 한 번의 관람으로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영화의 재미와 흥미만으로 N차 관람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반복 관람을 해야만 영화를 이해하고, 비로소 감상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게 '테넷'의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의 문이 다양하게 열려있는 여타 영화와 달리 놀란의 영화는 설계와 구조가 창작자에 의해 완벽히 통제돼있는 이야기다. 만든 이의 의도를 알고 이해해야 그 미학을 오롯이 내 것으로 즐길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에는 극장에 가는 것조차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때문에 '놀란의 신작'이라는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전작에 비해 화제성이 다소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어려운 영화'라는 인식까지 더해져 관객과 영화의 거리도 다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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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감독은 시간이라는 소재를 통해 가족애와 인류애 등 보편적인 주제를 이야기해왔다. 이번 작품 역시 그 맥을 함께 한다.

하지만 '테넷'은 그의 작품들 중 캐릭터와 드라마 구축이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3차 세계대전을 기획하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야심에 대한 당위가 영화 내에서는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매력 없는 빌런은 영화의 생기를 떨어뜨리고 마는 법. 또한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와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의 관계 또한 희미하게 묘사돼 후반부 행동들에 대한 동기 또한 빈약하게 보인다.

물리학 공부를 해야만 알 것 같은 소재의 높은 진입 장벽과 영화의 핵심인 캐릭터와 드라마의 밋밋한 구축은 부조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매 작품 관객에게 '숙제'를 던진다. "생각하지 말라. 보고 느끼라."라고 아무리 말한들 영화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안고 극장을 떠난다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의 영화에 발을 디딘 이상 관객에게는 숙제를 풀 것인가, 숙제로 둘 것인가의 선택만이 남을 뿐이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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