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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트럼프의 인터뷰 도박…대통령 끌어내렸던 밥 우드워드를 선택하다

[취재파일] 트럼프의 인터뷰 도박…대통령 끌어내렸던 밥 우드워드를 선택하다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20.09.12 09: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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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급은 25달러…대통령 인터뷰 전문 대기자 밥 우드워드

밥 우드워드는 미국 언론계에서는 더 말이 필요 없는 전설 같은 인물입니다. 1970년대 워터게이트 대특종으로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그는 한동안 워싱턴포스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인물입니다. 축구로 치면 펠레, 농구로 치면 마이클 조던 같은 슈퍼스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밥 우드워드 소개 페이지
나이 많은 현역 언론인들이 꽤 있는 미국이지만 1943년생 밥 우드워드는 신문, 방송을 통틀어 최고참 저널리스트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에는 'associate editor'로 소개돼 있지만, 사실 신문 기사는 손을 놓은 지 오래됐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실리는 기사는 일 년에 하나꼴로 출고하고 있습니다. 그가 신문사에서 받는 월급은 25달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책을 냈고, 거기서 받는 인세도 엄청날 테니 신문사에서 받는 월급은 사실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 편집장의 지휘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있는 독립군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워싱턴포스트에서 나오는 대통령 인터뷰 서적을 출간하는 대기자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는 빌 클린턴, 조지 부시, 오바마 전 대통령 모두 인터뷰해 책을 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기를 배경으로는 공포(Fear)가 나와 있는데 (이 책을 낼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인터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을 처음 볼 때 사건 설명이 너무나 생생해서 이게 소설인지, 취재물인지 구별이 잘 안 될 정도였습니다. 살아 있는 언론의 전설로 발군의 네트워크와 취재력을 이용해 우드워드는 말 그대로 당대의 역사를 써가고 있습니다.

밥 우드워드 신간 격노 (RAGE)
● 19차례 백지수표식 인터뷰…북미 정상 친서 전체 입수하기도

모든 기자가 꿈꾸는 최고의 취재는 아마도 현직 대통령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취재하는 일일 겁니다. 밥 우드워드는 대통령의 전화번호를 받아, 메시지를 남기고 참모들이 방해하지 않는 시간에 전화를 받아 무엇이든 물어보는 방식으로 상당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한 게 19차례라고 합니다. 18차례 인터뷰는 새로 나오는 책 '격노'에 반영됐습니다. 19번째는 이스라엘과 UAE 평화 협정을 넣어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을 한 인터뷰였는데, 이미 책 출간이 잡혀서 반영이 안 됐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인터뷰에는 아무 조건도 없었습니다. 이거 빼달라 넣어달라는 조건도 없이 그냥 묻고, 생각나는 대로 답하는, 기자들이 상상하는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폭스 뉴스 진행자 숀 해너티도 이런 방식으로 인터뷰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우드워드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 오간 친서 27통을 전부 다 구했다는 것도 놀라운 부분입니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줬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만, 친서 한 통만 구해도 엄청난 일일 텐데, 전체를 다 구했다고 하니 우드워드는 인간계의 기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봤는지 출판사는 북미 정상 친서가 책에 다 들어 있다는 걸 내세워서 책 홍보 자료를 써놓기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트럼프는 왜 우드워드를 선택했나

트럼프를 가장 매섭게 비판하는 워싱턴포스트의 상징과 같은 존재와 왜 이런 인터뷰를 했을까 의아했는데, 오늘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가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사실 밥 우드워드의 일을 잘 몰랐고,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아주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인터뷰가 좋을지 나쁠지는 모르지만 그와 대화하는 게 흥미로울 것 같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언론의 생리를 굉장히 잘 알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밥 우드워드를 자신이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떤 언론인과도 합을 겨뤄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런 위험한 도박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우드워드의 전작 '공포(Fear)'의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자신이 인터뷰하면 우호적으로 내용이 바뀔 거라는 자신감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논쟁적인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데, 폭스에 있기는 하지만 현 정부에 절대 우호적이지 않은 크리스 월리스와도 흔쾌히 격투기 급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항상 불을 만지고 싶어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밥 우드워드는 오랜 언론 경력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2016년에도 트럼프와 인터뷰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대선 전 트럼프가 러시아에서 성 접대를 받았고, 추잡한 일을 했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트럼프 X파일'이 공개됐을 때, 밥 우드워드는 이를 쓰레기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트위터에 감사의 뜻을 직접 올리기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밥 우드워드에 대한 호감과 공포를 모두 느끼고 있었지만, 합을 겨뤄보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정 욕구가 워낙 강하기로 유명한데, 최고의 기자를 잘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언론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었던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 도중 멜라니아 여사에게 "나, 밥 우드워드랑 인터뷰 중이야"라고 자랑했다는 내용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집사 역할을 했던 코언 변호사는 사위 쿠슈너가 이 인터뷰 주선을 했을 거라고 주장했지만, 이런 백지수표식 인터뷰는 당사자가 결심하지 않고 누가 중간에서 연결해서 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 X파일'을 쓰레기라고 비난한 밥우드워드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감사 인사
● '늑장 공개' 프레임…만만치 않은 트럼프 공격

다음 주에 나오는 밥 우드워드의 신간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고도 무시했다는 걸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2월 7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치명적이라는 걸 시인했고, 3월 19일에는 대놓고 코로나19 위협을 축소할 거라고 직접 말한 게 녹취로도 공개됐습니다.

이게 처음에는 거짓말에 초점이 맞춰져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는 분위기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드워드에 '늑장 공개' 프레임을 씌우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자기는 하나도 안 숨기고 다 말했는데 당시에 문제가 안 된다고 봤으니 공개를 안 한 거 아니냐고 역공을 펼치는 겁니다. 자기는 대통령이고, 이 나라의 치어리더인데 국민들을 패닉으로 몰고 갈 수 없었으니 수위 조절을 한 거라고 포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축소한 것 말고도 노마스크 행보, 말라리아약 권장 파동, 소독제 인체 주입 발언 소동 등 수많은 실책이 있었지만, 그런 얘기는 다 빼고 국민들을 위해서 위협을 축소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밥 우드워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좋은 특종'은 무엇인가?

상당수 미국 언론들도 밥 우드워드의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대로 보도했으면,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미국 사회가 잘 알았을 테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았냐는 논리입니다. 트럼프 진영에서는 우드워드 기자를 책 장사에 눈이 먼 기레기 정도로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밥 우드워드도 조금씩 해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대통령의 코로나 발언이 느닷없이 나와서 그게 정보기관의 보고를 토대로 나온 것이라는 걸 아는 데 몇 달이나 걸렸다는 설명입니다. 다음 주 책 출간을 앞두고 밥 우드워드의 방송 인터뷰가 줄줄이 잡혀 있는데, 이 문제도 계속 거론이 될 테고, 해명하는데 진땀을 흘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같은 언론인 입장에서 이해하자면, 책만 쓰는 대기자 밥 우드워드에게 데일리 기사는 자기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지면에 기사를 쓰는 건 은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사건의 전모를 보여주는 책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방송에서도 일일 뉴스와 주간 보도물, 월 단위 시사 제작물은 사실 제작하는 호흡이 다 다릅니다. 자기가 준비됐을 때 책을 낸다고 한다면 이렇게 묵혔다가 특종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 이해를 하기에는 미국의 코로나 사태는 너무나 심각한 게 사실입니다. 그가 제때 트럼프 대통령의 헛발질을 보도해, 이게 정말 심각한 거라는 경각심을 대중도 갖게 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수긍이 갑니다. 물론 그때 보도했어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발 빠른 보도로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기자로서 사명을 다한 거 아니냐는 쓴소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책은 '좋은 특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저널리즘 차원에서 고민해볼 만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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