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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리해고라는 이름의 사형선고 - 이스타항공 대량 실직 사태

[취재파일] 정리해고라는 이름의 사형선고 - 이스타항공 대량 실직 사태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20.09.11 14: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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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정리해고라는 이름의 사형선고 - 이스타항공 대량 실직 사태
● 정리해고 뒤 올라온 유서

이스타항공이 605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한 다음날, 블라인드 앱(회사 익명게시판)에는 '유서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여자이고 캐빈(객실 승무원)입니다. 저는 늘 밝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에요…저로 인해 누군가가 웃고, 불편하지만 긴 시간을 참아낼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보람이었습니다."

승무원이라는 글쓴이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뒤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며, 비행을 다시 하고 싶다고 토로합니다.

"아직 강서구에 사는 이유로 하늘 위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많이 보게 돼요.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눈물이 나고, 그립고, 한 번만 더 비행을 하고 싶은데 너무나 원하고 바라고 기도했는데. 저는 어제부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글쓴이는 '이제 눈 뜨고 싶지가 없다, 차라리 모든 걸 다 놓고 싶다'는 말로 글을 끝냈습니다.

제주항공 이스타 인수포기 사태
● 노조 "회사가 정리해고 회피 노력 안 해"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 측은 회사가 정리해고를 피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박이삼 조종사 노조 위원장
"제주항공 매각 불발된 이후라도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으려는 노력을 해서 내년 3월까지 버티고, 순환 무급휴직을 통해 직원들을 최대한 해고하지 않으려 했어야 했다. 어떠한 해고 회피 노력도 하지 않고, 시작부터 정리해고의 칼을 휘두른 것이다."

회사 측은 무급휴직 제안도 했지만 노조가 거절했다며, 정리해고는 회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스타항공 측 고위 관계자
"이 인원으로 가다가는 한 달 후에는 회사가 전부 망한다.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한 달에 대략적으로 150억 원 드는 고정비용 중 100억을 줄일 수 있다. 지금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기업이나 사모펀드들이 하나 같이 원하는 것이 '조직 슬림화'기도 하다."

이스타항공 측 고위 관계자
"직원들 입장에서도 임금이 몇 달째 체불되는 상황인데 회사는 돈을 줄 형편이 안 되지 않나. 차라리 정리해고를 통해 정부로부터 실업급여를 받고,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체당금이라도 받아서 버티는 게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대한 그 돈으로 버티며 생활하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국제선 운항이 재개되면 정리해고자를 재고용하기로 약속했다."

노조 측은 정리해고자를 다시 복직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습니다.

박이삼 노조위원장
"인수자가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재고용을 보장해줄 수 없다. 정리해고가 일어난 다른 기업 사례만 봐도 해고자들이 재고용된 경우가 거의 없지 않나. 정리해고자가 우선 고용을 안 해준다고 해서 회사와 소송을 하려면 최소 3년이 걸릴 텐데, 노동자가 그걸 바라보고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스타항공 박이삼 노조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스타항공에서 조종사와 승무원 등으로 일하는 직원들은 7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생계를 위해 택배 기사와 대리운전,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상황에서 절반 가량의 직원이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겁니다.

30대 조종사 A 씨
"그동안 모아놓은 돈은 이미 진작에 다 썼고, 적금도 깼다. 당분간은 대리운전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될 것 같고, 다른 일자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봐야 할 거 같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전반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서 채용이 당분간은 열리지 않아 단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가 직원들의 고용유지를 위한 노력을 취했는데도 상황이 안됐다면 받아들이겠지만, 어떤 노력도 진행하지 않고 구조조정부터 한 건 부당하다."

어두운 표정의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 (사진=연합뉴스)
● 정리해고가 가져올 사회적 비용

이스타항공 정리해고자 600여 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2009년 쌍용차 사태'를 통해 짐작이 가능합니다. 회사 자체의 누적된 적자 문제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당시 쌍용차는 2600여 명, 지금의 이스타항공은 600여 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했습니다.

10년을 거치며 2600여 명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와 가족 중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해고자 35명이 지난 5월에야 11년 만에 복직해 출근했지만 그동안 회사는 경영상황이 악화돼 또다시 도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의 연구는 '해고는 살인이다'는 말이 그저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실제 목숨을 끊은 30명 외에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한 208명 중 절반인 105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습니다. 특히 정리해고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도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해고자의 배우자 28명 중 48%가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19명이 우울증을 느꼈습니다.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방관하는 정부 여당

지금의 정부와 180석을 가진 여당은 2009년부터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분향소를 찾고 해결을 위해 문제제기를 해왔던 이들입니다. 2018년에는 경사노위에서 노노사정 합의를 통해 쌍용차 해고노동자 119명 전원 복직의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노동자의 정리해고 문제에 적극적이던 정부 여당이 코로나19 경제위기의 여파로 첫 대규모 정리해고가 현실화됐지만 이스타항공 문제에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상직 의원이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이기도 한 데 말입니다.

박이삼 조종사 노조 위원장
"국토부는 제주항공이 매각을 포기한 뒤에 '법정관리에 들어가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 회사가 공동으로 합의해서 605명의 노동자들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온 승무원의 유서가 혹시나 현실화될까 두려워 견딜 수가 없다는 박이삼 노조위원장 또한 605명의 정리해고자 중 한 명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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