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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승리 자축?…중국인들, 코로나 처음 알린 의사 찾았다

[월드리포트] 승리 자축?…중국인들, 코로나 처음 알린 의사 찾았다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20.09.10 10:43 수정 2020.09.10 15: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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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핵산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 먼지가 드디어 가라앉았다.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今天核酸檢測結果陽性, 塵埃落定, 終于確診了)

지난 2월 1일 중국 우한시중심병원 의사 故 리원량(李文亮)이 중국 SNS인 웨이보 계정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리원량은 지난해 말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지만, 오히려 유언비어 배포자로 몰려 중국 공안에 끌려가 '훈계서'에 서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후 리원량은 진료 도중 코로나19에 걸려 지난 2월 6일 34세를 일기로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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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량의 이 마지막 게시 글에 달린 댓글이 현재(9일) 100만 개가 훌쩍 넘었고, '좋아요'는 360만 건을 넘었습니다. 댓글은 특히 8일과 9일엔 짧게는 10초에 하나씩 올라올 정도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8일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 코로나19 방역 표창 대회가 열린 날입니다.

● '我代表我自己表彰你' (제가 저를 대표해 당신께 훈장을 바칩니다.)

코로나19 방역 표창 대회는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에는 전국에서 온 2천여 명의 대표단을 비롯해 3천 명이 참석했습니다. 중국의 방역 업무를 총괄한 중난산 중국과학원 원사가 공화국 훈장을 받았고,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천웨이 군사의학연구원 연구원 등 3명은 '인민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의료인과 방역 종사자, 경찰, 자원봉사자 등 개인과 단체에 2300여 개의 훈장과 표창이 수여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무려 70분의 연설을 통해 중국 인민의 노력과 공산당의 영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으로 코로나19 방역의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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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표창 대회에서 코로나19 희생자와 방역에 헌신한 열사, 순직한 의료진에 대한 애도는 있었지만, 리원량 이름 석 자는 불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한에서 코로나19 발생 초기 정보 은폐 등 중국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대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표창 대회를 보며 리원량을 떠올린 수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그의 웨이보로 향했습니다. "표창 대회에 당신의 자리가 있었어야 합니다" "제가 저를 대표하여 당신께 훈장을 바칩니다" "당신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의 숙명입니다"라는 추모 댓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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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로 악화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리원량을 비롯해 코로나19로 희생된 의료진 14명을 '열사'로 추서 했습니다. 그리고 공청단 등이 우수한 청년에게 주는 최고 영예의 휘장이라는 '중국 청년 5·4 휘장'을 수여했습니다. 하지만 리원량에 대한 열사와 훈장 수여 이유는 코로나19 출현을 처음 알려 사회에 경각심을 줬다는 것이 아닌 공산당원으로서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환자와 가까이서 접촉하고 진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 '桃李不言, 下自成蹊'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

리원량 웨이보 댓글을 보면 추모가 아닌 글도 상당수 있습니다. "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최근 아버지께서 심장병으로 입원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36살인데 결혼을 하지 않아 걱정하세요. 생활이 쉽지 않네요. 가족과 나를 위해 모두 힘내자!"라는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부터 "내일 학교에 갑니다. 이제 대학생이 됐어요. 그곳에서 잘 계시죠?"라는 일상을 전하는 내용, 그리고 정부를 비판하는 글까지 다양한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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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리원량의 웨이보를 통곡의 벽이라는 뜻의 '쿠창(哭墻)'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억울함을 당한 사람', '보통사람이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영웅'인 리원량에게 자신의 어려움과 답답함, 고통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한 중국 네티즌은 리원량의 웨이보 댓글에 대해 사기(史記)에 나오는 '桃李不言, 下自成蹊'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 즉, 몸이 바르고 덕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은 내세우지 않아도 사람들이 따른다) 문구가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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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량은 이처럼 코로나19로 큰 상처를 입은 중국 사람들의 정식적 피난처이자, 코로나19의 존재를 알린 '호루라기를 분 사람(吹哨人), 즉 내부 고발자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중국 공산당에게 리원량은 코로나19 초기의 미흡한 대처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코로나19 방역 성과와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코로나19 전 세계 확산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리원량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중국인들의 댓글은 달가울 리 없습니다. 리원량은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건강한 사회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습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질지, 아니면 '리원량 지우기'가 시작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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