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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뉴딜펀드 정부 보장 35%? 10%? 그래서 원금 보장은 된다고?"

[취재파일] "뉴딜펀드 정부 보장 35%? 10%? 그래서 원금 보장은 된다고?"
투자 전성시대입니다. 목돈을 통장에 넣고 가만있자니 바보가 된 기분이란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습니다. 정기 예금해 봤자 이자는 1%도 안 되는데, 집값은 말할 것도 없고 주식시장마저 실물 경기 침체에 아랑곳하지 않고 치솟고 있습니다. 자산 가격이 계속 올라가니 소소한 예금 이자를 못 견디고 통장에서 잠자던 돈이 뛰쳐나오는 모양새입니다. 저렴해진 대출 이자를 기회 삼아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경우도 흔합니다.

가장 가까운 예가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입니다. 투자 열풍이 고스란히 숫자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2만 4천 원짜리 320만 주, 768억 원어치 주식을 선점하려고 58조 5천억 원의 개인 자금이 쏠렸습니다. 청약 전날인 지난달 31일, 주식 투자를 하려고 대기 중인 돈이 전 거래일보다 10% 넘게 늘었습니다. 이날 사상 처음으로 투자자 예탁금이 6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청약 마지막 날인 지난 2일에는 전일 대비 20% 가까이 빠져 48조 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이례적인 변동폭입니다.

카카오게임즈 청약이 끝나니 뉴딜 펀드로 관심이 옮겨간 듯합니다. 가장 이목이 쏠리는 건 역시 리스크와 수익률입니다. "정부가 손실 위험을 먼저 떠안는다는데 어쨌든 원금 보장은 된다는 건가", "국채 수익률보다는 더 쳐준다는데 예·적금 대신 목돈을 넣어둘까" 같은 궁금증이 많습니다.

● 뉴딜펀드, 어떻게 생겼나

박찬근 취재파일

먼저 정부가 후순위 출자를 통해 손실을 먼저 떠안겠다는 건 20조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입니다. 대략적인 구조는 이렇습니다. 정부가 3조 원,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4조 원 등 공공이 총 7조 원을 출자합니다. 그런 다음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이 정책형 뉴딜펀드의 자펀드들을 운용할 자산운용사를 선정합니다. 자펀드들은 투자와 운용이 자유로운 사모펀드 형태로, 신재생 에너지 같은 뉴딜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내게 됩니다.

가입자가 50명보다 적어야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은 이 자펀드에 바로 가입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이 자펀드에 투자하는 공모펀드에 가입하는 구조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개인 투자자 돈이 공모펀드에 모이면 이 돈이 공공 출자금과 섞여 자펀드로 투입됩니다. 사모펀드에 다수 투자자를 참여시키기 위한 연결고리 역할로 공모펀드를 끼워 넣는 방법입니다. 사모재간접 공모투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박찬근 취재파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3일 브리핑에서 "평균 35%를 후순위 출자"하겠다, "손실이 35% 날 때까지는 이 35% 손실을 다 흡수한다"고 한 건, 이 자펀드에 투입되는 공공 출자금 7조 원이 전부 손실을 먼저 떠안는 후순위 출자라는 말입니다. 35%의 손실 범위 안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원금이 보전되니, "사후적으로 원금 보장 성격이 있다"고 이야기할 법도 합니다.

● 35%에서 10%로…갑자기 말 바꿨지만

그런데 3시간 못 가 말이 바뀝니다. 후순위 출자 비중이 35%가 아닌 10%라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 35% 범위 안에서 후순위 비중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고 여지는 남겼습니다. 하지만 처음 발표한 대로 '평균 35%'를 맞출 계획이라면 굳이 10%란 새로운 숫자로 고치는 수고는 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말실수로 불필요한 혼란을 준 셈입니다.

그럼 35%에서 10%로, 후순위 출자 비율이 바뀌었더라도 정부는 '원금 보장 성격이 있다' 할까요? 수치를 보면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정부가 예상하는 목표 수익률은 국고채 수익률 이상입니다. 1%~1.5% 이상,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입니다. 저위험·저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일 것이고 10%라는 완충 지대도 있으니, '원금 보장'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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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코리아' 펀드 가입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원금 보장, 자신해도 되나…몇 가지 문제점들

하지만 원금이 보장될 거란 정부의 말은 약속이 아니라 희망사항입니다. 성긴 추론에 기대 '그렇지 않겠나' 하는 수준입니다. 아직 투자 사업도 정해지지 않은 펀드가 수익과 손실을 얼마나 낼지 알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은성수 위원장은 "대개 (뉴딜 펀드의) 상대방이 공공기관이고 그렇기 때문에 손실이 그렇게 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정책형 뉴딜펀드도 사실상 원금이 보장"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부의 언어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수익률이 매력적일지도 의문입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 모두 가파른 상승장이 계속되면서 개인 투자자들 눈이 높아졌습니다. 국고채 수익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라면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서 예를 든 카카오게임즈 주식은 배정만 받으면 160% 이상의 수익은 너끈하다고 시장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펀드가 판매되는 내년 시장 분위기와 개별 펀드 수익률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흥행 여부는 장담이 어렵습니다.

개인이 투자하는 펀드에 정부가 후순위 출자해주는 게 정당하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수익은 개인과 기관 등 투자자들끼리만 나눠 갖는데, 손실이 나면 왜 국고에서 충당하느냐는 겁니다. 손실분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더 찍든, 당장 세수를 늘리든 결국 펀드 손실은 전국민이 떠안게 됩니다. 투자 위험은 일반 국민에게 떠넘기면서 원금 보장에 수익도 나는 상품이라고 홍보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가 손실을 감내하겠다는 재원은 결코 정부 것이 아닙니다.

올해 유난히 환매가 중단돼 말썽을 일으킨 사모펀드들이 많았습니다. 판매사들이 이 펀드들을 팔면서 했던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 안 난다", "수익률이 낮으니 원금은 보장된다"는 등입니다.* 어쩐지 정부 말투가 이런 은행·증권사들과 닮아있습니다. 솔깃한 말보단 객관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원금 보장 같은 말들은 적어도 상품의 윤곽이 나와야 할 수 있을 겁니다. 단지 펀드를 많이 파는 게 정책 목표는 아니리라 믿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하나은행 판매), 옵티머스크리에이터 펀드(NH투자증권 등 판매) 판매사 PB들의 투자 설명을 가져다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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