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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모성애 없는 엄마라도 괜찮나요?

파파제스 |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예쁜 딸을 키우는, 육아하는 아빠

25살, 나는 아이를 가졌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퇴근과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리던 임신부 생활은 길고도 외로웠다. 아이만 나오면 평생을 납작 엎드려서 자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잠자는 것도 불편한 나날이었다. 불편하고 외로운 긴 시간을 지나 뱃속에서 꿈틀대던 아기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우와… 진짜 아기네'

이제 막 태어난 생명체를 바라보는 나의 감상은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 특별하진 않았다. 간호사는 내 몸 위로 올라와 아이가 빠져나간 배를 있는 힘껏 눌렀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고통이 다시 한번 따라왔다. 감동은 없고 고통만 있었다. 이것이 나의 생생한 출산 기억이다.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대단한 사랑이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다. 못해도 사랑스러운 아기 얼굴을 마주할 때 온몸에 전율이라도 느껴질 줄 알았다. 여태 보았던 드라마와 영화, 수많은 매체에서 다루는 아름다운 출산의 순간에 내가 느낀 것은 분명 고통이었다. 쭈글쭈글한 얼굴에 태반 찌꺼기를 뒤집어쓴 아기와 기저귀를 찬 채 온종일 젖을 짜는 나의 모습.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 중 그 어느 것 하나 로망과 현실이 맞닿는 곳은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모성애'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 아이를 보는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느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 나만 빼고 모두 공유하는 듯한 '엄마의 마음' 같았다. 그 모성애가 내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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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난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대단한 사랑이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내내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이를 낳았는데 왜 나는 아직 엄마이지 못할까?' 이러다 평생 엄마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초조함에 검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맘 카페, 유튜브, 육아 서적 등 나만큼 부족한 부모들에게 위안을 얻어야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나같이 부족한 부모는 없어 보였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울면 함께 울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난 아이의 몸이 고열로 펄펄 끓는 순간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런 내가 매정하게 느껴졌고 스스로를 문제적 엄마라고 여겼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다. 인간애. 세상 밖으로 나와 숟가락질은커녕 고개조차 스스로 들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게 드는 가여움. 아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보호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잠드는 순간까지 아기를 돌보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책임이었다. 밀려오는 부담을 가득 안은 채 아이 돌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수유 중에 나의 젖을 입에 문 채로 잠든 아이를 유심히 보게 됐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오물거리는 입술, 조그만 손으로 내 가슴을 꽉 쥔 채 잠이 든 나의 아가. 아이는 어느새 내 품을 가장 포근한 요람 삼아 편히 잠들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사랑을 퍼붓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색했던 것 같다. 여태껏 그 누구도 이유 없이 사랑해본 적 없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기는 말 한마디 없이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 품에 안겨 잠이 들고, 나 없이는 먹지도, 자지도, 울음을 멈추지도 않는 엄마 바라기였다. 아이에게 나는 유일하고도 가장 큰 세상이 되어 갔다.

어느덧 아이는 3살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볼에 뽀뽀를 하고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며 내 품에 안긴다.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가슴이 저릿해 눈물이 날 정도다. 내가 그토록 바라 왔던 사랑이란 감정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서 느끼는 이 사랑에 대해 모성애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진 않다. 엄마라는 이름에 당연스럽게 따라붙는 모성애 때문에 나는 역할을 다 하고 있을 때에도 늘 부족한 부모처럼 느껴졌다. 내가 경험한 모성애는 아이를 낳는다고 바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와 아이 사이에 쌓아 올린 감정의 탑 같았다. 내게 맞는 속도와 높이로 둘만의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깨달은 것들이 참 많다. 그중 하나는 사회가 입혀 놓은 '엄마의 옷'이 내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다운 옷차림, 엄마의 행동거지 그리고 엄마라는 마음가짐까지 엄마에게 덧씌운 이미지가 공공연하게 존재했다. 나 역시 그런 이미지를 입어야 엄마다운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답다'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그 범주 안에 들지 못한 엄마들을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엄마다운 것은 없었다. 나를 엄마로 인정해 주고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아이뿐이다. 나는 내 아이의 엄마이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다른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처음부터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한 생명을 네 안에 품고 세상에 나오게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한 거야. 모성애 없이도 잘 해내고 있어. 좋은 엄마가 될 거야."

* 편집자 주 : 이번 글은 인-잇의 정규 필진 파파제스 님의 아내 한여울 님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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