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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이범수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는다"

[인-잇] 이범수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는다"

이범수│ 영화배우

SBS 뉴스

작성 2020.09.04 11:00 수정 2020.09.08 18:1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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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中


영화배우라는 소리를 들은 지도 20년이 넘었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때가 열아홉 살, 고3 때이니 벌써 30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대입학력고사를 보던 시절이라 1년에 딱 한 번 시험을 치렀다. 연극영화학과는 전국 대학에 몇 개 없었기에 경쟁률이 가장 치열한 학과였지만, 당시 기성세대들의 연극영화학과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한류'이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니 하는 단어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선도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연극영화학과를 나오면 밥 굶는다는 인식이 팽배했고, 영화배우를 꿈꾼다고 말하면 대부분 황당해하며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겉멋이나 부리는 한심한 놈 취급을 하던 시절이었다. 열아홉 나이에 외길 인생의 길을 선택하여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당시를 생각하고 그동안의 숱한 과정들을 떠올리면 그때의 각오에 스스로 고맙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배우 이범수
어느덧 2020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배우 지망생들은 "나도 재능이 있다" "노력해서 실력을 키우면 된다",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라는 의지를 다지며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순수한 열정이 있기에 모두들 그렇게 전의를 불태울 수 있으리라. 30년 전,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저울에 무게를 달 듯, 객관적으로 답이 딱.딱. 떨어지는 분야가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첫째, 연기 실력을 다 갖추고 덜 갖춘다는 것. 이런 것들을 마치 국제 공인 기구에서 감별하듯, 대체 누가, 무슨 원칙과 어떤 기준으로 측정한다는 말인가?

둘째, 실력을 다 갖추었다 치자. 그렇다고 곧장 영화배우와 스타가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아니다. 영화 작품에 캐스팅이 되어야 비로소 배우로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인데, 캐스팅은 뽑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내가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절대적으로 주관적 '합'이 맞아야 한다. 그 배역에 캐스팅되는 사람은 한 명이고 그 자리를 갈망하는 경쟁자는 수천, 수만 명이다. 캐스팅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의 연기 실력이 캐스팅된 한 명보다 모두 객관적으로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저 사람 느낌 좋은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미지와 느낌을 과연 객관화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이미지 좋고 느낌 좋은 사람이 수많은 응시자 중에 딱 한 명뿐일까? 최소한 여러 명 이상은 될 것이며 이 역시 캐스팅 주체자에 따라 (연출자, 작가, 제작자, 투자자 등등) 의견이 엇갈리기 일쑤이고, 이미지와 느낌이 참 좋아 보이는 몇몇 응시자들 중에서 최종 한 명으로 좁혀지기까지, 주체자들 간 합의가 어떻게 내려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결국 이 모든 최종 '합'이 기가 막히게 따라줘야 작품 속 배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운'이 따라야 한다는 이 분야의 속설이 이런 뜻일 것이다. 30년 넘게 이 바닥을 경험한 나로선, 배우의 연기력을 실력 순으로 1등, 2등, 3등처럼 등수를 매길 수는 없다. 맡은 역할, 이미지, 연출 의도 등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 지망생들의 실력 또한 상, 중, 하 정도로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이지 싶다. 좀 더 설명하자면 배우 지망생이 만 명이 있다면 그중 천 명 정도는 쓸 만한 실력이고 그중에 몇 천 명 정도는 애매한 수준, 나머지 몇 천 명은 실력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대략 구분 지을 수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쓸 만한 상위 천 명 중에도 200~300명 정도 최상위권으로 더욱 구분 지을 수 있겠지만 어차피 누구든 예외 없이 데뷔를 하게 되면 현장 경험을 통해 거듭 새롭게 깨우치며 프로로 성장하는 것이기에 무결점의 완벽한 실력으로 데뷔할 수는 없다. 부족한 모습으로 데뷔하기에 신인이라 일컫는 것이고 그들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리라.

캐스팅 주체자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입장을 바꾸어 그 위치에 있게 되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이 분야는 그런 분야이기 때문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었을 때, 착용감이 현저하게 다른가? 나이키를 신으면 유독 발이 아픈가? 아디다스를 신으면 유독 밑창이 빨리 닳는가? 아니지 않은가?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걸 탓할 일은 아니다. 배우 역시 이 분야가 취향에 따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분야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슬기롭게 받아들이는 각오와 판단이 있어야 한다.

내가 배우를 꿈꾸던 90년대 무명시절, 모 방송국 공채 탤런트에 응모할 때의 일이다. 학교 선배님 소개로 그 방송국 높은 PD이신 대학 동문 선배분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결과는 불합격이었지만 그래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내가 부족했기에 더 노력해서 한 번 더 응시해보겠다는 마음의 끝인사를 드리고자 다시 찾아간 자리였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순간 내 등 뒤로 PD분의 단호한 목소리가 꽂혔다.

"범수야,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돼."

키가 작은 것이 불합격 이유라면 나는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합격한 현철이(가명)는 저보다 더 작습니다."

"현철이는 웃는 모습이 좋잖아."

"저도 웃는 모습이 좋다는 소리 들었어요, 그래서 광고에도 캐스팅 됐고요."

"넌 키가 작아서 안 된다니까!"

"예? 현철이는 저보다 더 작아도 합격했습니다."

"근데, 넌 키가 작아서 안돼!"

"현철인 저보다 작아도 합격하지 않았습니까."

"현철인 웃는 모습이 좋잖아."

이렇게 웃픈 대화를 예닐곱 번쯤 주고받았을까? 나는 나를 합격시켜 달라는 것도, 나의 불합격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경우는 단점만 부각해 탈락과 불가능의 이유로 삼고, 어느 경우는 장점만 앞세워 합격과 가능의 이유로 삼기에 납득조차 허용되지 않는 실패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서글펐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분야는 선택하는 사람의 몫인 곳인 것을. 어찌나 속상했던지 당시 서른이 넘은 나이임에도 방송국을 나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뒤로 오히려 난 내게 이어지는 '평'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오히려 더 강해지려고 제작사들을 쫓아다니며 거절의 '평'들로부터 나를 단련해 나갔다. 그 시절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방어 행위였다.

이렇게 오디션에서 떨어지기를 수십 번, 그렇게 수년 이상 반복하다 보면 결국 끝이 안 보이고 외로운 블랙홀에 들어가게 된다. 세상이 불공평하다 목청껏 원망도 해보고, '나도 이제 곧 된다'며 희망의 주문을 외워 보기도 하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자책도 해보고, 그래도 앞으로 계속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유턴할 것인가, 피 말리는 고민에 휘말리게 된다. 그즈음이면 남자 나이 30대 초중반쯤 되리라. 더욱이 마흔 혹은 쉰 살이 되기 전에 블랙홀을 빠져나가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기약 없는, 철저하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천천히 되짚어 본다. 어디에서부터 좀 더 올바르게 접근했어야 됐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정직한 답변을 위한 진솔한 질문을 건네 본다. 나는 진정 배우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스타가 되고 싶은가? 나는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 자체로 행복한가, 아니면 배우라는 명성을 통해 부를 얻고 출세를 하고 싶은 것인가. 정해진 답은 없다. 스스로의 솔직한 바람과 소망 그리고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질문에 대한 답이 전자라면 아등바등거릴 필요 없이, 아마추어스럽더라도 매체, 장르, 역할 등 가릴 것 없이 계속 연기를 하면 된다. 연기 그 자체로 행복하기에 작품, 역할이 크든 작든 순수한 꿈을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경제력 해결은 별개이기에 별도의 지혜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만약 후자의 답변이라면 앞에서 이야기했듯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다. 그 귀한 '합'의 운이 따라야 하기에 (노력은 노력대로 하되) 속 터질 기다림의 연속일 것이다. "이건 사기야!"라고 욕할 것도 없는 것이, 분명 누구든 역할에 캐스팅이 된다. 그게 수천 명에 한 명, 수만 명에 한 명이라 그렇지 분명 누구든 캐스팅은 된다. 거기에 내가 해당되지 않았다고 누구를 욕할 것인가? 여기서 더 나아가 명확히 말해보겠다. 만약 캐스팅이 됐다고 치자. 그러나 그 벅찬 기쁨도 잠시, 그것은 이번 작품에 캐스팅된 것일 뿐, 차기작 캐스팅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번 작품을 계기로 후속작에도 캐스팅되고자 노력할 테지만 그것은 가봐야 결과를 아는 것이고 내 개인의 실력이나 노력 이외에 작품의 흥행 여부, 대중의 관심 여부에 따라 후속작의 '합'도 변동의 춤을 출 것이다. 소위 말해 천신만고 끝에 캐스팅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렇다. 배우를 꿈꾸고 배우를 누린다는 것은 기나긴 마라톤과 같은, 어찌 보면 사막에서 신기루를 쫓는 듯한 무모함과 대담함 같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고독하고도 긴 여정을 떠난다는 절대적 각오를 필히 다져야 한다. 오직 그것뿐이다. '연기'라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연기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꾸준할 수 있다. 꾸준해야 멀리 보고 한결같이 노력하고 염원할 수 있다. 멀리 보고 한결같아야 한탕주의에 빠지지 않고 꿈을 향한 자신의 값진 존재 의미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무능력하다며 비아냥대는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묵묵히 바다로 향하는 한 늙은 어부의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는다"고 헤밍웨이가 이 작품에서 말했듯 고독하고 처절하게 바다와 싸워 결국 해내어 보이고 마는 인간의 위대하고 숭고한 삶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노인과 바다
90년대 어두운 무명시절, 흔들릴 때마다 가슴 깊이 느끼며 읽고 새기었던 <노인과 바다>. 힘들고 지쳐 있는 배우 지망생들뿐만 아니라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모든 젊은 친구들, 나아가 40대, 50대 인생의 수많은 전투에서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지금 삶의 고지를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상처투성인 몸으로 헐떡이고 있는, 그러나 눈빛만은 빛을 잃지 않고 있을 오늘날의 중년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을 향해 멋지고 당당한 실력으로 통쾌한 라이트 한 방을 후려갈 길 그날을 맞이하길 희망한다.

헤밍웨이가 써 내려 간 <노인과 바다>에서 그 노인처럼 말이다.

인잇 이범수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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