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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사 파업에 공정위가 뛰어든 이유는? - 세 번의 파업과 법원의 판단

[취재파일] 의사 파업에 공정위가 뛰어든 이유는? - 세 번의 파업과 법원의 판단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파업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낯선 장면은 아닙니다. 하지만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가 투입되는 장면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공정위는 가격 담합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단속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긴 하지만, 파업에 대응하는 형사사법 기관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업과 공정위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의사 파업'이라고 부르는 단체 행동은 엄밀히 말하자면 노동자들의 파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사업자인 의사들이 사업자단체인 의사협회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휴업을 결의하고 실행하는 공동행위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규정입니다. 그리고 공정거래법에는 의사협회 같은 사업자 단체가 부당한 공동행동을 금지하는 조항들이 있습니다. 사업자 단체들의 집단행동 때문에 자유로운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의사협회의 파업(집단 휴업)이 부당한 공동행위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공정거래법이 금지하지 않는 정상적인 공동행위로 볼 수 있는지입니다.

공정위 입장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의사 파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현재 조사 중이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결론을 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단은 어떠했을까요? 공정위와 의사협회가 1 대 0.5 정도의 스코어를 기록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0년에 의약분업 정책 때문에 벌어진 첫 번째 의사 파업에 때는 대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의결한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원격진료와 영리병원 등과 관련해 벌어진 의사 파업에 대해선 서울고등법원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의사협회가 이긴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아직 나오진 않았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에 대한 취소 청구 소송은 1심을 고등법원, 2심을 대법원이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지난 두 번의 의사 파업에 대한 법원 판단이 엇갈렸다는 사실, 그리고 두 번째 의사 파업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 번째 의사 파업에 의미하는 바가 대단히 큽니다. 공정위는 이번에도 지난 두 번의 의사 파업 때 적용했던 조항들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난 두 번의 의사 파업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면 지금 진행되는 의사 파업에 대해 어떤 법적 잣대가 적용될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첫 번째 의사 파업과 두 번째 의사 파업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왜 엇갈렸는지부터 살펴본 이후에 앞으로의 일을 전망해보겠습니다.

전공의 파업 사흘째

● 첫 번째 '의사 파업'을 "부당한 제한"으로 판단한 이유

2000년에 있었던 첫 번째 의사 파업에 대해 대법원은 2003년 2월에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의사협회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공정위가 시정명령 등을 의결하자 의사협회가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청구한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정거래법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당시 공정위가 의사협회에 적용한 조항은 공정거래법 제26조 1항 3호였습니다. 사업자단체는 '구성사업자(=사업자단체의 구성원인 사업자)의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입니다. 2000년 의사 파업 사건에서는 '의사'라는 사업자들로 구성된 단체인 의사협회가 집단 휴업을 결의함으로써 구성원인 의사들의 진료 및 병원 영업이라는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했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당시 의사협회가 집단 휴업을 사실상 강제했기 때문에 구성원인 의사들의 사업내용이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핵심은 '강제성'이었습니다. 구성원들인 의사들의 뜻과 무관하게 의사협회 집행부가 휴업을 강요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정거래법 제26조 1항 3호가 금지하는 사업내용 또는 활동의 '부당한 제한'이라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의사협회가 구성원인 "휴업·휴진할 것과 참석 서명 및 불참자에 대한 불참 사유서를 징구할 것을 결의하고, 그 결의 내용을 문서, 인터넷 홈페이지 및 신문광고 등을 통해 자신의 구성사업자들에게 통보하여 대회 당일 휴업·휴진을 하도록 한 행위는, 이른바 단체적 구속으로서, 내심으로나마 휴업·휴진에 반대하는 구성사업자들에게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휴업·휴진하도록 사실상 강요"(대법원 2001두5347)한 것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있었던 두 번째 의사 파업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 두 번째 의사 파업: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였나?

2014년 의사 파업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 제26조 1항의 3호 '부당한 제한' 조항을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재판부 2016년 3월 판결을 선고하면서 2014년 의사 파업은 2000년 파업과 달리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의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의사협회가 부당하게 제한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파업의 경우 강제성이 없다고 봤습니다. "의사들이 이 사건 휴업에 참여할지 여부에 관하여 원고가 구성사업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요하거나, 이 사건 휴업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나 징계를 사전에 고지한 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휴업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나 징계를 가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았"고 "휴업에 참여한 의사의 비율이 개원의의 경우 20.9%, 전공의의 경우 30%에 불과하여 휴업 찬성률보다 더 낮은 휴업 참여율을 기록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구성사업자들의 투표를 거쳐 이 사건 휴업을 결의하기는 하였지만 그 구체적 실행은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 것"이라고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서울고법 2014누58824) 따라서, 재판부는 2014년 파업(집단휴업)이 의사들의 사업내용이나 활동에 대한 부당한 제한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파업에 대해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의 또 다른 조항도 적용했습니다. 거래를 제한함으로써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제26조 1항 1호도 적용한 것입니다. 파업(집단휴업)을 강요했는지와 별개로 파업이 사업자들의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했는지를 따지는 '경쟁제한성'이 2014년 의사 파업을 판단하는 또 다른 쟁점이 됐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의사 파업의 경우 '경쟁제한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의사 파업(집단 휴진)이라는 공동행위가 있었고, 의료서비스의 거래의 제한이 발생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인상되었거나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의 특성상 의료서비스 가격 인하를 유발하는 의료기관 간의 경쟁이 불가능하므로 이 사건 휴업으로 의료서비스의 공급량이 감소하여 의료서비스 수요가 공급량을 초과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발생한 초과 수요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고법 2014누58824) 우리나라 의료 시장에는 가격 경쟁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거래를 제한했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의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파업 전후로 의료서비스 품질이 저하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자료도 없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공정위는 2014년 의사 파업이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했다는 점도 '경쟁제한성'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소비자의 불편'이 파업으로 인해 경쟁이 부당하게 제한됐다는 결론의 직접적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서울고등법원은 의사 파업이 강제된 것이었냐, 그리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한 것이었냐는 두 가지 쟁점에 대해 모두 의사협회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전공의 파업

● 2020년 의사 파업을 판단할 대법원의 새로운 기준

하지만 2014년 의사파업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2016년 서울고등법원 판결 이후 4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 심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새로운 리딩 케이스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14년 의사파업에 대해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사 파업에 대한 법적 판단 기준 역시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경쟁제한성'입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의사 파업으로 인해 서비스의 가격이나 수량, 품질 면에서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2014년 의사 파업이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한 행위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판결했지만, 과연 대법원이 같은 기준을 적용할지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현재 공정위 비상임위원으로 있는 정재훈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 시절인 2016년 발표한 논문("의료공급자에 대한 사업자단체 규제와 경쟁제한성 판단")에서 2014년 의사 파업과 관련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경쟁제한성 판단을 "원칙적으로 수긍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도 몇 가지 다른 기준도 제시했습니다.

정재훈 교수는 먼저 "경쟁제한성을 넓게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현실상 사업자단체의 행위에 대한 강력한 행위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에 선다면 의사협회와 구성원 의사들 간에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의사협회의 영향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이들의 집단휴업 결의가 경쟁을 제한할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볼 여지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유럽연합 법원의 판결을 예로 들면서 실질적으로 경쟁제한성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더라도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만 증명되어도 충분하다고 보는 입장이 가능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또한 공정거래법이 경쟁제한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명시하고 있는 '가격, 수량, 품질' 외에 다른 요소를 경쟁제한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대법원이 제시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의사결정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 등도 검토해 볼 수도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습니다.

만약 정재훈 교수가 언급한 '다른 기준'을 대법원이 채택하거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판결을 파기한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의사 파업 역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판단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대법원이 2014년 의사 파업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지 않는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의사 파업에 대한 공정위의 강제 처분도 정당성을 얻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2014년 의사파업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 등에 대한 형사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위는 2014년 의사 파업과 관련해 과징금 처분을 한 뒤 관련자들을 형사고발했고, 검찰을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고,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의사 파업이 명백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라며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선고된 관련 판결에 따르면 의사 파업이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판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상황인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주장처럼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의사 파업도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판단될 가능성 역시 충분히 있습니다. (업무개시명령 등과 관련한 의료법 위반 여부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대법원이 새로운 기준을 설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의사 파업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2014년 의사 파업에 대해 대법원이 언제, 어떻게 판결을 선고할지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 파업이 경쟁을 제한하는 사업자들의 부당한 공동행위인지, 아니면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 사업자단체의 고유한 공동행위인지, 우리 공동체의 최고법관들이 결론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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