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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Q&A] 힘 있으면 법정구속 면제?…애매모호한 '특별한 사정'

[Pick Q&A] 힘 있으면 법정구속 면제?…애매모호한 '특별한 사정'
예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출입할 때였습니다. 법원 청사 뒤쪽 일반 민원인들이 주로 드나드는 출입구 주변에는 몇 달째 방치된 낡은 오토바이들이 자주 보였습니다. 근처 주차장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주인 잃은 차들도 간간히 목격됐습니다.

법원 청사 관리자에게 물었더니 "변호인도 준비도 없이 혼자 왔다가 덜컥 법정구속된 사람들 흔적"이라고 했습니다. 주로 생계형 사범들 얘기라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손혜원 전 의원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도 법정구속을 피했습니다. 재판부는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형평성 논란이 일었는데요.

불구속 상태로 재판 받다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 없는 징역형을 선고받으면 보통 법정구속됩니다. 그런데 법원이 정치인이나 유명인 등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독 법정구속을 면해준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Pick Q&A] 에서는 수사단계에서의 구속영장 청구나 선고단계에서의 형량을 정하는 양형기준과는 또 다른 문제인 '법정구속' 관련 논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포 부동산 차명 거래 의혹' 1심 선고 뒤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는 손혜원 전 의원 (사진=연합뉴스)

Q. 손혜원 전 의원 법정구속 면제, 왜 논란인가?

A.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누구는 법정구속되고 누구는 안 되고, 그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손혜원 전 의원은 목포 부동산 차명보유 혐의와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1심 법원에서 집행유예 없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공직자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 "수사 개시 이후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아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런데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습니다.

손혜원 전 의원

법조계에서는 "통상 법정구속되는 일반인에 대한 역차별", "특별한 사유 없이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든 것은 이례적 특혜"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근래 1심에서 법정구속을 면한 유력 인사로는 염동열 전 의원, 원유철 전 의원, 이현재 전 의원,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관진 전 국방장관,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 등이 있습니다.

유력인사로는 드물게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으로 1심에서 법정구속됐다가 77일 만에 보석허가를 얻어 석방 상태로 2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Q. 법정구속 기준은?

A. 결국 '판사의 재량'입니다.

대법원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 제57조는 "피고인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할 때에는 '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고 돼 있습니다.

'법정구속'은 사실 법률에 규정된 개념이라기보다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취해지는 '강제조치'입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어온 피고인이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동시에 발부된 구속영장에 의해 법정에서 구속되는 걸 통상 법정구속이라고 하는데요.
대법원 사법연감

'법정구속의 문제점과 개선책'(임보미, 부산대 법학연구소 학술지 '법학연구', 2020)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한 해 법정구속 비율은 30% 정도로 추정됩니다.

불구속 재판을 받고 실형은 선고받은 피고인 중에 30%는 법정구속, 70%는 면제.

2020년 부산대 법학연구소 학술지 '법학연구'에 실린 임보미 박사의 '법정구속의 문제점과 개선책' 논문

문제는 이 두 상황을 가르는 '특별한 사정'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는 겁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마다 법정구속 여부를 판사 재량으로 판단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계속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Q. 근거규정이 없다면 '판사 재량'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A. '양형기준'이 왜 정비됐는가를 참고할 만 합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한때 '재벌 공식'처럼 여겨진 법원 판결에 대해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기업에서 거액을 횡령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을 저질러도 재벌 총수들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아왔죠. 집행유예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고 기업에 복귀했습니다.

국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이 계속되자 대법원은 양형위원회를 통해 형을 정하는 데 있어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판사의 재량이 아닌, 기준이 있는 형량 선고를 통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형을 선고하겠다는 겁니다.

양형기준을 벗어나는 경우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써야하기 때문에, 요즘 판사들은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에 맞지 않는 형량을 선고하지 않는 편입니다.

법정구속에 대한 판사의 재량 혹은 자의적 판단이 남용되지 않도록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 그에 대한 경험적 해답이 '양형기준'에 있는 겁니다.

횡령·배임 범죄 관련 양형기준 (자료=양형위원회 홈페이지)

Q. 그런데 법정구속, '무죄추정 원칙'과 상충되는 거 아닌가?

A. 헌법은 "형사 피고인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법원은 '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상위법인 헌법 아래 하위 법령도 아닌, 대법원 예규가 법정구속의 근거라는 점에서 법정구속 원칙을 규정한 예규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판사 재량에 의존하는 법정구속이 사법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만큼, 양형기준 사례처럼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Q. 법정구속에 대한 법률 규정이 없다면, 구속의 근거 법령은?

A.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구속이 규정돼 있습니다.

우리 헌법 12조는 '신체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구속이나 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즉, 인신을 구속하려면 법률 근거가 필요한데요.

형사소송법 70조에는 ①"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구속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②"▶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 인멸 염려가 있을 때 ▶도망 염려가 있을 때" 등 세 가지 사유로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하게 됩니다.

법원은 이런 구속 사유를 심사하면서 ③"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 위험성,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도 고려하게 됩니다.

앞서 판사의 재량이 법정구속 여부를 좌우한다고 했는데요. 판사들은 방금 설명드린 형사소송법 70조 조항을 법정구속 판단 과정에서도 고려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Q. 수사단계에서 구속 과정은?

A. 위에서 언급한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검찰은 수사 중인 사건에서 범죄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는 피의자에 대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합니다.

검찰이 법원에 보내는 구속영장청구서를 보면 '범죄사실 및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가 앞서 설명드린 ①+②에 해당하고, '필요적 고려사항'이 ③에 해당됩니다.

구속영장 청구서 중 일부 항목

법원은 '영장실질심사'라고 통용되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통해 구속영장을 발부 또는 기각합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지고, 기각되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뉴스 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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