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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통합당 김미애 "수해현장서 진정성 느꼈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김미애 미래통합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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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남다른 인생이라고 이야기를 할까요? 아니면 역경을 딛고 일어난 정치인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어쨌든 이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참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미래통합당의 김미애 의원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미애/통합당 의원: 반갑습니다.

▷ 주영진/앵커: 지금 비대위원도 맡고 계신 건가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네.

▷ 주영진/앵커: 조금 전에 김현아 비대위원하고 활동하고 계실 텐데 요즘 비대위원 활동하시면서 '통합당이 좀 변하고 있다' 체감하십니까?

▶ 김미애/통합당 의원: 제가 사실 처음에는 잘 못 느꼈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변하고 있구나'를 언제 느꼈냐 하면 최근에 수해 현장 여러 곳에 갔습니다. 그때 저도 얼굴도 못 보고 서로 각자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제가 동네 아줌마, 아저씨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들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이야, 우리 당이 이제 변화하고 있구나.' 오히려 제가 그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 주영진/앵커: 인터뷰를 좀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기사를 읽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 그 부분 말이죠. 통합당이 지난 총선 때 국민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 실제로 현장 가서 봉사하고 헌신하기보다는 의전만 중시하는. 그래서 현장에 가서 봉사도 많이 하셨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 아닙니까? "의원님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 적당히 하고 사람들하고 인사를 해야지 왜 봉사활동만 하십니까?" 그런 부분에서 이제 변화가 생겼다는 겁니까?

▶ 김미애/통합당 의원: 그렇죠. 실제 이미 출발할 때부터 장화랑 고무장갑, 옷도 편한 복장으로 다들 간 것 그것부터 이미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쨌든 통합당이 변하고 또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어야 여당과 함께 경쟁하면서 우리나라 정치가,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 봉사할 때 태영호 의원과 함께 봉사하는 장면. 저건 또 누가 찍어주신 거죠, 저것은? 저 사진은.

▶ 김미애/통합당 의원: 도랑물에서 씻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이것은 뭐 전혀 포즈 신경 안 쓰시고 그런 사진을 누가 또 찍어주신 것 같습니다.

▶ 김미애/통합당 의원: 옆에 계신 분이 집주인 아저씨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 참 많이 해요. "이제 정치인들이 가서 스스로 찍어서 올릴 필요가 없다. 정말 열심히 하면 동네 주민분들이 알아서 그 사진 찍어서 SNS에 다 올려서 그렇게 다 확산될 것이다. 직접 찍어서 올리실 필요 없다." 그렇죠?

▶ 김미애/통합당 의원: 직접 찍어도 되죠, 뭐. 일 다 하고 나서.

▷ 주영진/앵커: 일 다 하고 나서?

▶ 김미애/통합당 의원: 네.
김미애 통합당 의원 인터뷰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아까 영상에 잠깐 나갔습니다만 사실 이 부분은 또 워낙 많이 말씀하셔서 또 이 부분에만 사람들이 언론이 초점을 맞추는 게 부담스럽지 않으실까 걱정도 됩니다.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가서 일을 하게 됐다. 그때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워지셨던 건가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거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중2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시골집을 지키다시피 했고 포항여고, 제가 정말 다니고 싶었던 학교인데 한 달 정도 다니고 차비가 없어서 못 다니고 부산에 오게 됐죠.

▷ 주영진/앵커: 친구 따라서.

▶ 김미애/통합당 의원: 친구 따라. 거의 떠나고 싶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 주영진/앵커: 공장에서는 몇 년 일하신 겁니까?

▶ 김미애/통합당 의원: 방직공장 3교대는 1년. 야간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쳐 나와서 그다음 봉제공장 2년. 한 3년 정도.

▷ 주영진/앵커: 3년 정도 다니셨으면 이제 한 20살 정도가 됐어요. 그러면 봉제공장을 다닐 때 꿈이 많아야 할 나이인데 말이죠. 그때 '내 인생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런 어떤 절망, 낙망. 희망보다는 그런 것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는데.

▶ 김미애/통합당 의원: 글쎄, 그때는 그렇게까지 심도 있게 생각지 않았던 것 같고 너무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돈을 보니까 사고 싶은 것 샀고 그리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해야겠다 생각은 하되 현실에 순응한 채 그냥 놀기에 바빴고 그러면서 10대를 우울하게 보냈죠. 저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서 열등감도 많았고 그렇게 우울한 10대를 마감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때 공장 직원들이 받는 월급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이 주어지니까.

▶ 김미애/통합당 의원: 제가 본 적 없는 돈이었기 때문에 사고 싶은 것 샀습니다.

▷ 주영진/앵커: 20살 때까지 공장에서 일하셨고 바로 대학을 가신 게 아니더라고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그렇죠. 바로 대학을 갈 형편도 안 됐고 산업체 학교에서 학력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을 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고요. 그러고 나서 이제 종잣돈 한 1,500만 원이 모여서 그 돈으로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식당을 하게 됐죠.

▷ 주영진/앵커: 초밥집?

▶ 김미애/통합당 의원: 초밥집도 뭐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고 실비초밥. 제가 직접 만들고 우동도 팔고 메밀도 팔고 그런 실비초밥집.

▷ 주영진/앵커: 직원이 없었나 보네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직원 둘이 있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직원 둘이 있었고?

▶ 김미애/통합당 의원: 두세 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도 갑자기 안 나오기도 하고 해서 제가 일을 다 배웠습니다. 1인 3역을 했죠, 만들기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서빙도 하고. 20대 중반이었거든요. 그 모습이 좋아서 거의 출근해주시는 분들, 충성고객이 있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떤 분야든 어떤 상황에서든 열심히 사셨군요, 혼자서 다 하시고.

▶ 김미애/통합당 의원: 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때 제가 20대, 30대도 마찬가지고 게으른 것을 무척 싫어했고 또 하나 없이 살았잖아요.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었고 부자 되기 위한 방법은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랬고 또 하나는 그때 제가 빚도 냈거든요, 장사할 때. 1,500만 원 모은 돈, 1,500만 원 빚을 냈기 때문에 이것 못 갚으면 안 된다 싶어서.

▷ 주영진/앵커: 그 빚은 은행에서 빌리신 거예요? 아니면 아는 분한테.

▶ 김미애/통합당 의원: 네, 은행. 새마을금고에도 빌리고 계도 하고. 그래서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절대 제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는 한 15시간 이상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몇 시간 주무셨어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밤 12시에 마치면 집에 가면 1시, 2시에. 또 놀다 보면 늦을 때도 있고. 뭐 잠은 많이 안 잤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고 나서 돈을 좀 모으셔서 대학에 들어간 나이가 스물아홉?

▶ 김미애/통합당 의원: 스물아홉에 동아대 법대 야간에 갔죠.

▷ 주영진/앵커: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그 당시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5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다.'

▶ 김미애/통합당 의원: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공부하느라 힘드셨을 것 같은데.

▶ 김미애/통합당 의원: 전혀. 뭐 욕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고 또 공부 열심히 하니까 모든 게 거저 주어졌습니다.

▷ 주영진/앵커: 거저 주어졌다는 건 어떤 뜻입니까?

▶ 김미애/통합당 의원: 학교에서 기숙사도 주고 밥도 주고 학비까지 면해주고 학비 보조금까지 나왔으니까요. 세상에 이런 데가 있나. 사실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더 빨리 합격해서 나도 학교에 갚아야겠다' 그 생각을 했죠.

▷ 주영진/앵커: 나중에 사법시험 합격하시고 변호사로 일하시면서 모교에 상당한 액수의 장학금을 기부하셨다고.

▶ 김미애/통합당 의원: 글쎄요, 그때는 그 금액까지는 생각을 못 하고 제가 2005년에 변호사 개업을 하고 개업할 때도 대출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인근에 전·월세로 살았죠. 그러면서 1천만 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저지르지 않으면 영원히 못할 것 같아서, 제가.

▷ 주영진/앵커: '내가 돈을 좀 번 다음에 해야겠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없고 힘들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할 것 같다.'

▶ 김미애/통합당 의원: 네, 그래서 연말만 되면 마음이 좀 급해졌죠, 올해도 해야 하는데. 이런 학교에 빚진 마음처럼 그런 게 있어서 연말만 되면 1천만 원, 1천만 원. 어떨 때는 안 할 때도 있다가 또 몰아서 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2018년까지 1억 원을 하게 됐죠.

▷ 주영진/앵커: 1억 원? 절대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쉽게 할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 김미애/통합당 의원: 한꺼번에 하라고 했으면 아마 쉽지 않았을 텐데 이게 해마다, 해마다 할 수 있어서 감사했죠.

▷ 주영진/앵커: 뭐 어쨌든 간에 그러면 변호사 하시면서 좀 돈은 버신 거네요? 가난으로부터 탈출한 거네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저는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았죠. 그리고 변호사 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밤 11시, 12시. 주말에도 일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돌이켜보면 세상의 어떤 일도 그렇게 열심히 하면 가난은 면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했고 또 제가 하는 사건이 그렇게 고액의 사건이 아니거든요. 정말 별의별 사건들입니다. 또 게다가 국선 변호도 그렇게 많이 한 줄 몰랐는데 제가 한 10여 년 동안 760여 건을 했더라고요. 어쨌건 그 일도 하고 제가 또 돈벌이를 위한 일도 하고 하다 보니까 거의 여행을 가도 당일 새벽 2, 3시까지 하고 비행기에서 잠을 자고 이런 식으로.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국선 변호하면서 하셨던 분들이 그래도 아마 우리 김 의원의 지난 시절 덕분인지 '주로 어려운 사람들, 뭐 비행 청소년들 또 성폭행당하고 어디서 도움받기가 어려운 분들 이런 분들 많이 하셨다.' 이런 기사를 제가 봤는데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성폭행, 가정폭력 당한 피해 여성들은 국선 변호라기보다 제가 자발적으로 그냥 제 마음 가는 대로 한 것이고 소년법상 보호처분 받은 아이들은 사실 제 소년 시절을 떠올리면서 한 겁니다. 제가 그것은 변호사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 일은 꼭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어서 2005년 출발부터 그것은 제가 다짐을 하고 시작했던 일이고요.

그다음 국선 변호는 또 제가 늘 이 사회에 빚졌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법연수원도 공짜로 다니고 월급도 받아서. 그래서 이것은 갚아야 한다. 그래서 '국선 변호, 이 일만큼은 제대로 하자'라고 제가 결심을 했고 그래서 어느덧 하다 보니까 그렇게 많은 일을 했고 그것 할 때 저는 정말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름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 주영진/앵커: 어쨌든 간에 또 많은 분이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님이 "나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좋은 옷도 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그리고 남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저는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그럼요. 저는 저보고 "왜 너는 그렇게 좋은 것 입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 사냐"고 하면 당당하게 "나는 그러고 싶어서 열심히 삽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냐고." 그리고 또 하나 제가 늘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도 이 사회에서 혜택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나누려고 했고 그래서 제 돈과 제 재능도 많지는 않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저는 나누려고 했습니다.

2005년 그 전에 사법연수원 다닐 때부터 여기저기 구호단체에 제가 매월 수십만 원씩을 해 왔고요. 그게 그냥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저도 기득권자가 됐다면 나누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또 이 사회가 저는 그렇게 가기를 바랐습니다. 누군가에게 '너 그렇게 성공했으니까 그 모든 것을 희생만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은 누리기도 하고 남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마땅하고 그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지 그걸 뛰어넘으라고 하면 저는 힘들어서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런 측면이 바로 공정이고 정의다' 이런 답변을 갖고 계신 건가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네, 그렇죠. 저는 '개천에서 개구리, 가재, 붕어로 살아라.' 이 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왜냐? '아니다, 나는 그걸 뛰어넘고 싶다.' 그건 선택의 문제죠. 내가 그렇게 살고 싶으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미 그럴 꿈까지 꺾어버리는 건 옳지 않다고 여겼고 또 하나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제가 희생을 해야겠죠. 그 개천을 맑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부터 희생을 해야 하는데 제가 오롯이 할 수 있을까? 저는 감히 그렇게 할 만한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잘살고 싶고 내 주변 사람도 같이 잘살게 하고 싶은 거지 제가 그걸 뛰어넘어서 저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남에게 하라고도 하기 힘들었죠.
김미애 통합당 의원 인터뷰

▷ 주영진/앵커: 김 의원님이 또 부담스러워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질문도 안 드릴 수가 없어요. '결혼 안 하셨다'는 기사도 있고.

▶ 김미애/통합당 의원: 안 하기도 했고 못 하기도 했고 뭐 그렇겠죠.

▷ 주영진/앵커: 워낙 열심히 사시다 보니까. 그런데 어쨌든 간에 '자녀를 입양하셨다. 그래서 키우고 있다' 이런 기사도 제가 봤어요. 그래서 입양과 관련해서 대단히 적극적인 의사. 그리고 저는 이 말이 또 인상적이었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 컸으면 좋겠다. 그래서 입양이라고 하는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 김미애/통합당 의원: 저는 우리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제가 제 어린 시절부터 저는 많은 소외를 당하고 살았잖아요. 중2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 없는 아이. 게다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사실은 어디 가서 당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눈에는 세상에서 엄마 없는 아이가 제일 불쌍했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제가 뭔가를 하고 싶어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변호사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또 제가 여건 될 때마다 그런 데를 찾아다니기도 했죠.

그리고 제가 결혼을 해도 입양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어느덧 제 나이 사십이 넘어가면서 '야, 이것 큰일 났다. 나도 아이도 더 힘들어지겠구나' 싶어서 2011년에 상담 갔는데 그해에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가 너무 많이 있대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머리가 터질 것같이 아팠고 '아유, 모르겠다' 하고 바로 입양 신청을 하고 그다음에 건강검진 받고 우리 집 양육환경조사도 하고 이렇게 해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죠. 그래서 그때 한 80여 일 된 제 딸을 제가 품에 안아서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 됐죠.

▷ 주영진/앵커: 80여 일 된, 100일도 안 된 아이를 입양하신 거군요. 지금 초등학교 3학년. 그 아이가 최고의 선물이다.

▶ 김미애/통합당 의원: 제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고 지금도 사실 참 힘들죠.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떨어져 있으니까 아이 보려고 수시로 제가 부산을 왔다 갔다 합니다, 남모르게. 그래도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이제 앞으로 국회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을 하셔야 할 텐데 어떤 입양과 관련한 것들 그리고 얼마 전에 기사 보니까 일단 '육아휴직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고 횟수도 세 차례로 늘리자' 이런 법안을 발의하셨던데요.

▶ 김미애/통합당 의원: 그것은 제가 워킹맘,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울 때 너무나 힘들었죠. 아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 데리고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가 법원 1층 로비에 유모차에 태워놓고 법정 다녀오기도 했고 주말에도 영장실질심사가 있으면 법원 복도에 아기 4살 때 데리고 갔다가 밖에 놔두고 갔다 오기도 하고 참 많이 힘들었는데 사실 저는 그래도 변호사로서 조금 시간이 자유로웠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그나마 좀 덜 힘들었다고 보는데 보통의 직장인들 보면 참 힘들죠.

아이가 영유아기 때도 힘들지만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 참 많은 갈등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아이가 소외되면 6학년까지 힘들어진다고 하고 초1 워킹맘들의 어려움도 제가 봐서 그래서 육아휴직 기간을 2년으로 늘리고 3회 분할해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건 제 경험에서 나온 것이죠.

▷ 주영진/앵커: 바로 그런 것들이 또 실제로 입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아마 동료 의원들의 공감을 좀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미애/통합당 의원: 맞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제가 국회에 와서 늘 딜레마가 '이 비용 부담은 누가 하지?' 그리고 저도 혼자서 직원 5명을 둔 개인 변호사를 할 때도 마음껏 혜택을 주고 싶은데 한 사람의 공백이 생기면 나머지 사람은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런 좋은 입법이나 정책이 사실은 서민들에게 흘러가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그들에게도 같은 혜택이 주어져야 하는데 사실은 이런 법안이 마련되고 시행될 때는 그렇지 않은. 오히려 거기서도 더 많은 갭이 생기는 이런 것들도 늘 마음에 부담으로 남아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김 의원님, 제가 말씀드린 대로 참 할 말이 많은데. 시간도 많이 넘겼습니다. 어쨌든 간에 국회의원 김미애, 정치인 김미애는 이런 정치, 이런 입법만은 꼭 하겠습니다. 만약에 약속 지키지 않으면 뭐 4년 뒤에 유권자들이 판단하실 테니까 그 약속 짧게 한번 말씀해 주시죠.

▶ 김미애/통합당 의원: 제가 여기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라, 자유 대한민국이 저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저는 꼭 갚아야 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그런 의정 활동을 해야 하고요. 또 하나 꿈을 이룬 청년들에게 다시 꿈을 꾸게 하고 싶습니다. 공정한 시스템을 회복하고 희망의 사다리가 반드시 다시 놓이는 그런 입법 활동을 꼭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많은 분이 지금 하신 말씀 오래오래 기억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김미애/통합당 의원: 감사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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