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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기만 했는데 치료·합의에 천만 원…경미사고 보상 손본다

스치기만 했는데 치료·합의에 천만 원…경미사고 보상 손본다
2018년 7월 A씨가 운전하는 차량과 다른 차량 사이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해 왼쪽 바퀴 윗부분이 살짝 들어가고 도색이 벗겨졌습니다.

조사 결과 A씨 과실이 80%로 훨씬 컸습니다.

A씨의 차량 수리에는 27만 원이 들었습니다.

사고 직후 A씨는 별다른 부상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병원 진료에서 단순 타박상으로 '상해급수 14급' 진단을 받았습니다.

상해급수 14급은 교통사고 상해등급에서 가장 경미한 등급입니다.

A씨는 사고 이후 작년 9월까지 한방의료기관 20곳을 비롯한 의료기관 24곳에서 153회 진료를 받았습니다.

사고 책임이 20%밖에 안 되는 상대 차량의 보험사가 A씨 대인 보상에 쓴 비용은 치료비 730만 원과 합의급 200만 원을 합쳐 무려 930만 원이나 됐습니다.

경미한 사고 후 3년이 넘게 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습니다.

B씨는 2017년 7월 과실 비율 90%로 접촉사고를 내고 상해급수 12급에 해당하는 척추염좌(근육 또는 인대 손상) 진단을 받은 후 현재까지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차량 수리에 든 돈은 9만 원에 불과하지만 지난달까지 B씨의 입원·통원 치료에 들어간 비용은 약 1천800만 원으로 불었습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운전자 A·B씨처럼 '경미손상사고' 보험금이 급격히 증가,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부담을 키우고 있습니다.

보험개발원 분석 결과를 보면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교통사고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등급)는 9.4% 증가했는데 진료비 등 보험금은 40.9% 급증했습니다.

전체 교통사고 환자 1인당 평균 보험금은 이 기간 16.4% 늘었는데, 경상환자 1인당 평균 보험금은 28.8%나 증가했습니다.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의 자료를 보면 '경미손상' 사고 운전자의 23%가량이 병원 진료를 받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을 때 일부는 위 사례처럼 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합의금을 받지만, 77%는 아예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경미손상은 정도에 따라 1∼3유형으로 나뉩니다.

1유형은 투명 코팅막만 벗겨진 '도막손상'이며, 3유형은 긁힘이나 찍힘으로 도장막과 함께 범퍼 소재의 일부가 변형된 유형입니다.

보험업계와 당국은 경상환자 또는 경미손상사고 환자에 들어가는 보험금을 방치한다면 자동차보험업계의 손해가 확대되고 결국 전체 가입자의 부담으로 전가된다고 우려합니다.

작년에는 정년(경제활동) 연령 상향 등으로 보험료 인상을 2차례나 단행했는데도 자동차보험 전체로 1조6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국(국토교통부, 금융감독원)과 손해보험업계는 경상환자 보상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내년 적용을 목표로 개선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유력하게 논의하는 방안은 영국의 경상환자(whiplash) 보상 개혁을 모델로, 대인 보상을 받으려면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서 발급을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주관적 통증 호소만으로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어서 과징진료가 만연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건간보험공단 성격의 국민건강서비스(NHS)에 직접 소속된 공공병원이 절대 다수인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경상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 대부분이 '자영업' 성격이 강한 점을 고려하면 진단서 의무화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에 따라 과실비율이 높은 경상환자가 책임보험보장범위(대인1, 한도 3천만 원)를 초과하는 진료를 받는다면 과실 비율만큼 자기신체손해보상 특약(자손 특약) 등으로 자신이 부담하게 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 치료에 자기 부담을 강제하는 것은 치료권이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 때문에 수용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상환자 보상체계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에는 공감대가 이뤄졌다"며 "치료권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비용을 통제하는 대책을 연말까지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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