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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그의 청소가 특수한 이유…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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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54 : 그의 청소가 특수한 이유…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해답도 없고 답해줄 자도 없다. 면벽의 질문이란 으레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끊임없이 초대하는 세계, 오랜 질문들과 새로운 질문들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건배를 제창하는 떠들썩한 축제 같다."

반백일 넘게 지속된 역대 최장의 장마, 집안도 눅눅 몸도 눅눅하다 보니 마음까지 눅눅해진 듯합니다. 어서 이 장마가 끝나고 덥지만 뽀송뽀송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물이 빠진 한강공원에 모처럼 나가보니 청소차가 여럿 와 있더군요. 특별한 청소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특수청소부'라고 들어보셨나요? 말 그대로 특수한 상황을 청소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주로 그들이 정리해야 하는 특수 상황은 죽음의 현장입니다. 저도 그렇고 들으시는 분들도 주변 지인이나 가족을 떠나보낸 경험이 더러 있으실 거예요. 여느 빈 집이 아니라 대개는 고독사, 혹은 자살처럼 제법 많지만 대개 보편적은 아니라고 여기는 그런 형태의 죽음에 뒤따르는 특수청소. 그 특수청소부가 맞닥뜨린 현장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경험하고 생각하고 떠올려 적어나간 기록들,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이번 주 북적북적이 골라온 책입니다.

"시도, 철도 모르고 찾아오는 인간의 상상이란 잔인하다. 모든 살림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삶을 끝내려는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친구여, 이 모든 것이 그저 어느 날 당신과 내가 함께 꾼, 깨고 나서 돌아보면 웃어넘길 한낱 부질없는 꿈이었다고 말하자."

"스스로 생을 마치고 장례식장조차 빌릴 방법이 없는 그녀를 위해 몇몇 지인이 밤마다 그녀가 살던 이 지하 집 문 앞에 찾아와 향초에 불을 밝히는 것으로 조문을 대신한 듯하다. 내가 어제 거둔 종이 상자는 그들이 계단 옆에 임시로 꾸린 빈소의 간이 분향대였던 셈이다."


"가난한 자들의 낡고 해묵은 살림을 치우다가 한순간 생각을 돌려서, 이제는 죽어서 홀가분해지고 비로소 걱정이 사라져 순순해졌을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저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흥, 내 가난 따위야 잠시 머물다가는 구름 같은 것일 테지' 하며 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느 날 길고양이를 수습해온 공로를 인정받아서 고양이의 천국 문에 무슨 글이든 새겨 넣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시인이나 록커를 흉내 내며 이렇게 쓰고 싶다. '모든 존재는 그대로 존귀하다. 그 순간만이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준다'라고..."

"서가는 어쩌면 그 주인의 십자가 같은 것은 아닌지. 빈 책장을 바라보자면 일생 동안 그가 짊어졌던 것이 떠오른다. 수많은 생각과 믿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의 목표와 그것을 관철하고자 했던 의지, 이끌어야 했던 가족의 생계, 사적인 욕망과 섬세한 취향, 기꺼이 짊어진 것과 살아 있는 자라면 어쩔 도리 없이 져야만 했던 세월."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사랑받던 사람입니다. 당신이 버리지 못한 신발 상자 안에 남겨진 수많은 편지와 사연을 그 증거로 제출합니다. 또 당신이 머물던 집에 찾아와 굳이 당신의 흔적을 보고 싶어 한 아버지와 어머니, 홀로 방에 서서 눈물을 흘리던 당신의 동생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벌써 십수 년 전입니다. 사건기자를 하다 마주했던 몇몇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 고독사 한 80대 노인 시신이 발견된 곳에 갔습니다. 이미 시신을 옮긴 뒤인데도 집안엔 뭐라 표현하기 힘든, 고약한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장판에 눌어붙은 자국도 남아 있었고 언제 사망했는지는 추정조차 불가능할 만큼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정작 충격적인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첫째는 이웃. 돌아다니며 노인의 생전 모습을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물었더니 한 분이 몇 달 전 문 열어달라고 창문 틈으로 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습니다. 반지하방이라 지상에 약간 올라와 있는 창으로요. 노인은 혼자 걸을 수 없는 상태라 누워 있었고 이 분은 잠겨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말았다고 하는데 최근에 생선 썩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고 그이는 말했습니다. 실은 노인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고백과 다름없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노인의 아들. 1년 반 전에 자리보전 중인 어머니를 모시기 힘들어 집을 나갔다는 아들에게 연락이 닿아 경찰서에 와 있었는데 잘 달래서 인터뷰했습니다. 돌아가실 줄 알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랬겠죠. 충격적이었던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들은 몇 달 전에 궁금해 집에 들렀다가 사망한 걸 확인했다고 하네요. 다른 조치 없이 환기만 시키고 나갔다는 겁니다. 그때는 아연했는데 과연 그들이 특별히 나쁜 자들이었을까, 나는 다르게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작가는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굳세게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기전이 되리라 믿습니다."

산 자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출판사 김영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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