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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예보의 핵심, 기상청의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미래는 맑음? vs 흐림?

강수예보정확도 시리즈②

[취재파일] 예보의 핵심, 기상청의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미래는 맑음? vs 흐림?
시리즈① [취재파일] 엇나가는 비 예보…한국형 독자예보시스템의 성적은?에서 언급했듯 기상청의 강수예보에는 수치예보모델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 기상청, 노르웨이 기상청, 기상망명족 등 장마가 길어지면서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기상청 외에도 많은 자료들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 기상청의 예보가 100%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정확도 신뢰도 모두 문제인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선 예보정확도를, 예보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수치예보모델의 성능 개선이 필수적이다.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 Korean Integrated Model)은 우리나라가 만든 세계 9번째로 독자시스템으로 성능이 우수한 편이지만,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이하 KIM-한국형수치예보모델) 프로그램의 성능 향상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가능한데, KIM은 지난 4월 말 현업에 투입된 이후 올해 6월 1번 업그레이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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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수치예보모델
 
기상청은 올해 말에도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로 업그레이드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도 기상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 업그레이드, 즉 모델의 개발과 발전을 두고 말이 많다. 예상대로 프로그램 성능이 좋아질 거란 기상청의 입장과 달리 우려의 시선으로 이를 바라보는 사업단의 시선 차이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단은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인 KIM을 처음부터 만들고 개발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사업단을 말한다. 현업에 투입된 지 이제 넉 달째, 걸음마를 걷고 있는 독자 모델의 발전에 사업단과 기상청은 왜 다른 시선을 갖고 있을까?

● 사업단 관계자 "기술개발 더뎌질 수 있어"

KIM은 국내 전문가들이 9년간 공들여 만든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기술이다. 현재는 이 모델을 개발했던 사업단은 해체됐고, 기상청이 KIM을 관리하고 있다. 사업단에서 KIM을 개발했던 사람 50여 명 중 4명은 아직도 기상청에서 KIM을 관리하고 있지만 나머진 다 흩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단 관계자는 KIM의 개발자가 아닌 다른 전문가들이 KIM의 개발 및 연구를 담당하면 성능 향상이 더뎌질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복잡한 수치예보모델의 특성상,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부모보다 더 잘 알고 다루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사업단
 
KIM은 복사 에너지 알고리즘, 대기경계층 알고리즘, 위성자료 처리기술, 수치해법 정교화 등 50개의 항목들로 이뤄진 프로그램이다. 각각의 항목에는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를 가능케 하는 세부 라인들이 있는데, 이 라인이 모두 '20만 개'에 이른다. 사업단의 입장은 KIM을 업그레이드를 할 때 자신들이 고칠 수 있는 라인이 기상청보다 많아 업그레이드가 빠를 거란 주장이다. 기상청이 KIM의 연구·개발을 맡는다고 KIM의 성능이 후퇴하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빠르게 향상됐던 추세가 꺾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KIM을 잘 아는 국내의 한 전문가도 "수치예보모델이라는 특성상 개발자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 기상청, "모델 업그레이드 문제없어"

기상청의 입장은 다르다. 기상청은 이미 현업에 투입된 KIM을 6월에 버전 3.5에서 3.5a로 한 차례 업그레이드했다. 당연히 성능도 개선됐다. 물론 당시 6월까지만 해도 초기 사업단의 팀장급 멤버 13명 정도가 기상청에서 KIM에 대해 자문을 주는 협업 기간이었다. 하지만, 기상청은 그들이 없더라도 우리의 전문 인력만으로도 KIM을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상청은 지난 2018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KIM 도입반을 꾸려 초기 사업단으로부터 1년 넘게 KIM에 관한 기술을 이전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것이다. 또 사업단 출신이 4명만 있는 것에 대해선 개발 초기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했지만, 업그레이드는 지금의 인력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상청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자문 형태로 사업단 멤버들이 있었지만 기상청의 힘으로 KIM을 업그레이드시켰고, 기상청의 전문 인력도 충분히 뛰어난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듯 기상청에서만 KIM을 연구, 개발한다면 업그레이드 추세가 지금처럼 가파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는다.

● 앞으로 기술개발은 누가?

그럼 KIM은 앞으로 누가 개발할까. 일단 KIM의 연구와 개발을 맡을 후속사업단이 발족한다. 이후에는 기상청과 후속사업단이 협업해 KIM의 연구와 개발을 맡는다. 하지만 여기에도 큰 문제가 있다. 이 후속사업단도 초기 사업단처럼 한시적이란 것이다. 초기 사업은 그럴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국의 모델을 개조할 생각이었지, 정말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될 거라곤 생각한 이들은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던 사업단에서 독자 모델을 만들어냈고 기상청이 실제로 현업에도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모델을 잘 키워가야 할 때지만, 또다시 사업단이 한시적으로 꾸려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는 마땅히 이 사업을 맡겨야 할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독립적인 연구소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60년, 일본과 영국도 50년 이상이라는 시간을 프로그램 개발에 투자했다. KIM의 연구 및 개발에 이렇게 단기적인 사업단만 꾸려진다면 앞으로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시적인 사업단의 문제는 앞으로 몇십 년을 연구해야 할 KIM의 고작 10년 안팎의 시간을 준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점도 있다. KIM을 키워낸 기존의 전문 인력들이 다시 뭉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미 초기 사업단에 있었던 전문가들은 사업단 해체 이후 대기업이나 대학교수 등으로 재직하며 제2의 삶을 보내고 있다. 사업단의 구성원도 당시엔 대부분이 30대였지만, 이제는 40~50대로 그사이 가정을 꾸린 이들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한시적인 사업단에 KIM의 개발을 위해 오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즉 후속사업단의 발족이 얼마나 KIM을 잘 아는 전문가들로 꾸려질지, 시작부터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 기상 분야만 없는 정부출연기관…줄다리기는 계속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독립 연구소가 있었으면 해결될 문제였을 텐데, 기상 분야는 왜 없을까.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극지연구소, 한국해양연구원 등 이른바 학창 시절 지구과학이라고 배워왔던 분야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상 분야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아직도 없다. 비단 KIM의 개발과 연구뿐만이 아니라 이번 장마처럼 급변하는 이상기상 현상이 많아지는 이때, 출연연구기관 하나 없다는 게 이상할 뿐이다. 기상학회에선 지속적으로 출연연구기관 설립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2017년에는 KIM의 개발 성공 등을 토대로 국회 공청회에서 다시 정부출연연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참석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청회에 참석했던 기상청의 모 국장이 출연연 추진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결국 기상 분야에 출연연구기관이 없다 보니 해당 분야에 관련된 1,000억이 넘는 국책비는 모두 기상청에 떨어진다. 그리고 기상청은 이 돈을 다시 산하기관 또는 대학 연구소에 배분하며 관리자 역할을 한다. 주무부서가 존재하고 관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독립적 연구 개발은 힘들 수밖에 없다. 국제학회에 가는 것조차 기상청에 승인을 받아야지만 갈 수 있다.

기상청의 비전은 '신뢰받는 정보 제공으로 국민이 만족하는 기상서비스 실현'이다. 즉 예보를 생산하고 분석해서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이 주 임무이다. 연구비를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후속사업단이 곧 출범한다. 한시적인 출범으로 기존에 KIM의 부모 역할을 했던 전문가들도 전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도 기상청의 산하기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단 자체도 독립성을 갖고 모델의 개발과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없기 때문에, 이런 개발에 자꾸만 한시적 사업단이 꾸려지는 것이다. 사업단이 한시적이다 보니 장기적으로 남아 해당 분야를 꾸준히 연구할 사람도 없다. 기상학회와 기상청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속에서 기상 분야는 아직도 그 흔한 정부출연연 하나도 없다. 기상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선택이 옳을지는 기상 분야에 관련된 모든 종사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힘들게 만들어놓은 우리의 독자적 수치예보모델이 앞으로 평탄한 길을 걸어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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