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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체육회 대의원들 "문체부 시간 끌기" 성토

[취재파일] 체육회 대의원들 "문체부 시간 끌기" 성토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0.08.12 09:0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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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일) 서울의 한 대형 호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임시 대의원총회는 예상보다 훨씬 늦게 끝났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4개월이 지났는데도 왜 대한체육회의 정관 개정을 승인해주지 않느냐?"는 일부 대의원들의 성토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문체부가 상위법인 체육회 정관 승인을 질질 끌면서 자연히 하위법인 회장 선거관리규정 개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 1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앞서 오는 12월에는 각 경기단체 회장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체육회 정관과 선거관리규정이 개정되지 못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문체부가 늦어도 이번 달 안에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한체육회 대의원들이 어제 언급한 체육회 정관 개정은 4개월 전인 지난 4월 10일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날 통과된 정관 개정안의 골자는 제24조 회장의 선출 관련 부분에서 '회장을 포함한 임원이 후보자로 등록하고자 하는 경우 회장의 임기 만료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체육회는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90일 전 회장직 '사직' 대신 '직무 정지'로 정관 개정을 통과시켰습니다. 체육회는 종전 정관이 보장된 회장의 임기(4년)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도쿄올림픽 1년 연기로 국제 현안에서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회장직에 공백이 생기면 원활하게 대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현직 국회의원·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다음 선거에 출마 시 사직하지 않는 공직선거법을 예로 들어 체육회 정관의 과도한 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국가올림픽위원회(NOC) 회장 선출 시 현직 회장이 사임 후 출마하는 사례가 전무해 체육회의 정관 개정 방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IOC의 해석도 곁들였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정관 개정은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이 떨어져야 최종 확정됩니다. 하지만 문체부는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승인할지, 아니면 승인을 거부할지에 대해서 입을 닫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동안 문체부는 대한체육회가 정관 개정을 할 때마다 짧게는 1주일 뒤에, 길게는 약 1개월 뒤에는 승인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권종오 취재파일용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은 내년 1월 중순으로 예정된 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도전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런데 문체부가 정관 개정 승인을 거부하면 종전 정관에 따라 차기 체육회장 선거를 치러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 회장은 임기 만료 3개월 전인 오는 11월에 회장직에서 사퇴를 해야 합니다. 또 KOC 위원장 자격으로 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당선됐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IOC 위원직도 자동으로 상실하게 됩니다. 차기 선거에서 다시 당선된다 하더라도 IOC 위원직에 바로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문체부가 정관 개정을 승인할 경우 이 회장은 IOC 위원직을 유지한 채 차기 선거에 출마할 수 있습니다.

대한체육회 정관 개정안을 아직까지 승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문체부 고위 관계자는 "선거 중립 등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기흥 회장이 IOC 위원직을 잃더라도 선거 중립이라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승인을 거부하면 되고, 반대로 한국 스포츠계가 IOC 위원을 새로 당선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면 현 개정안을 승인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진=연합뉴스)
문체부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으면서 체육계에서는 몇 가지 추측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시나리오는 정부와 일부 정치인이 이기흥 현 회장에게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정관 개정 승인을 해주지 않은 뒤 국회에서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대한체육회와 KOC를 분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기흥 회장은 IOC 위원직을 잃으면서 KOC 위원장 선거에만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분리가 될 경우 대한체육회는 완전히 문체부에 의해 장악되면서 대한체육회장은 사실상 정부가 원하는 사람을 낙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정관 개정 승인을 해주는 대신 대한체육회-KOC 분리안을 받으라고 이 회장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 회장은 IOC 위원직을 유지한 채 KOC 위원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절충적인 방안인 것입니다.

사실이 이런 추측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닙니다. 대한체육회 정관이 이기흥 회장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거의 원칙은 차기 선거에도, 또 차차기 선거에도 엄정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체육계의 불필요한 오해와 이런저런 추측을 막는 방법은 문체부가 하루빨리 정관 개정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이미 문체부에 여러 차례 정관 승인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지난 6월에는 회장 선거규정 개정과 관련한 공청회까지 개최해 체육계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업무 보고를 받기 위해 체육회를 방문하는 최윤희 문체부 제2차관에게 다시 한번 정관 승인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4개월이나 시간을 끈 문체부가 앞으로도 계속 불분명한 태도를 보인다면 '정무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면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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