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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나만 유별난 것 같아" 그런 생각은 버리세요

[인-잇] "나만 유별난 것 같아" 그런 생각은 버리세요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20.08.09 11:02 수정 2020.08.09 11:2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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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못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전 오이만 없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게 유전적인 부분이라면서요? 제 친구도 오이 향만 맡아도 엄청 힘들어하거든요."

최근 들른 초밥 집에서의 대화다. 난 오이를 싫어한다.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보기만 해도 힘들다. 오이 하나 못 먹는다고 큰 문제가 있겠느냐만, 안 그래도 입이 짧고 빼빼 마른 날 걱정하던 어머니께서는 내게 오이를 먹이려 갖은 노력을 하셨었다. 하지만 나 모르게 음식 속에 아주 조금씩 넣으셔도 매번 귀신처럼 알아챘다. 반복되는 오이 습격에 스트레스를 받던 어린 나는 과학자가 되어 오이를 멸종시킬 생물 병기를 만들어내는 꿈을 잠깐 꾸기도 했었다.

'오이 싫어하는 나, 유별난 건 아닐까' 스스로가 답답했었던 그 시절.
이 스트레스는 집에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 급식 반찬에 오이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손도 대지 못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는지 내기를 제안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오이 한 조각 삼키면 몇만 원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난 피 말리는 고민 끝에 돈을 포기했다. 내가 유별난 사람인 것 같아 스스로가 불편하고 답답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데...하지만 요즘에는 '너 유별나게 왜 그래?'라는 시선들을 받는 일이 줄어들었다. 초밥 집 사장님처럼 내 어려움을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남아있는 부정적 시선을 만날 때도 있는데, 그때는 기다렸다는 듯 아주 당당하게 반문한다.

"이게 과학적으로 밝혀진 게 언제인데, 이걸 아직도 몰라요?"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이름도 복잡한 TAS2R38이란 유전자의 PAV 타입에 속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민감한 미각을 지니고 있어 '오이 혐오자'가 된다는 사실을 과학이 밝혀낸 것이다. 이 발견 이후 억눌려 살던 오이 혐오자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렇듯 과학은 진실을 밝혀내어 편견을 없앤다. 하지만 과학이 알려주는 진실이 항상 잘 통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을 만들어낸 것도 사람이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끝까지 못 받아들이는 비이성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틀린 믿음에 위협이 되는 과학적 진실, 그 진실을 밝혀낸 대상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현재에도.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직도 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을 구한 백신의 효용성을 부정하고 음모론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각 국가들의 다양한 모습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의 양면성을 보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비말을 통해서 전파되며, 그러므로 마스크에 의해서 차단될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과학적 진실. 이 당연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마스크 쓴 이들을 공격하던 사회들은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 있다. 선진국들의 민낯을 보았다는 반응들을 뉴스 댓글에서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이런 부끄러운 민낯이 없을까? 정신건강문제를 대하는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동일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에도 국가 별로 전혀 다른 감염률과 사망률이 나온 것처럼, 동일한 유병률로 발생하는 우울증에도 국가 별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유독 정신질환에 대해 비과학적이고 구시대적인 시각을 가진 우리 사회의 특성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만들어냈다. 우울감을 가진 사람들을 유별난 존재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아픈 이들을 병원에 가지 못하게 만든다. 한 국내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을 가진 직장인 중 31%만이 병가를 신청할 수 있었고, 평균 병가 기간은 9.8일로 유럽의 1/3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정신과 진료 사실이 직장에 알려질까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는 분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에, 개인적으로는 이 31%라는 수치도 믿기 힘들 정도이다.

당신은 유별나지 않아요.
물론 우리 사회도 계속 변하고 있다.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예전처럼 숨기지 않고 양지로 끌어내고 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요즘, 여러 회사들에서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강연을 요청했다. 온라인 강연 질의응답 시간에는 깜짝 놀랐다. 평소 오프라인 강연에서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열심히 질문을 던졌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익명의 질문이 가능하니 더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정말로 크게 힘든 상태에 처해 있었다. 원래 이런 적이 없는데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급작스럽게 우울해져 처음으로 정신과 진료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 같이 힘든 시기에 나만 이런 것이 유별난 것 같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평생 처음 경험하는 심한 우울과 무기력감, 의욕 저하가 최근에 찾아와 힘든 이들이 분명 계실 것이다. 이는 당신이 유별난 게 아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 생겨난 급격한 일상의 변화들은 뇌호르몬 시스템에 직접적 영향을 미쳐 우울증을 유발시킬 수 있다. 우리 뇌의 시상하부에는 일종의 생체시계가 들어있다. 이 생체시계에 따라 여러 뇌 호르몬들의 분비량이 조절된다. 가상의 개념이 아니다. 2017년에는 이 생체시계와 관련된 유전자들을 규명한 과학자들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만큼, 실재한다는 사실과 그 기능들이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재택 근무, 격일 근무, 장기간 휴직 등 코로나로 인해 일어난 여러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는 사회적 시차를 만들어 이 생체시계의 오작동을 유발한다. 다양한 유전자들이 생체시계와 우울증, 이 둘 모두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생체 리듬이 무너질 때 뇌호르몬의 이상이 발생하여 일정 비율의 사람들이 우울해지는 건 당연하다. 일정 비율의 사람들이 오이를 먹지 못하는 것처럼 당연한 유전자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무지한 것뿐이다. 당신은 아픈 것뿐이며, 적절한 대응과 치료를 통해 다시금 회복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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