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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흉악범 변호인 향한 비난, 과연 괜찮은가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재벌총수가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와 관련한 뉴스가 나온다. 최근 삼성 불법승계 사건에 400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는 보도에 삼성은 100명 이상의 임직원 등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변호인단의 숫자가 턱없이 부풀려 졌다며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400명 변호사 참여에 대한 뉴스 나가자 포털에는 여러 댓글이 달렸는데, 순공감순 1위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최정규 인잇

재벌총수가 호화 변호인단을 꾸리든 말든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임을 천명하는 쿨한 반응과는 달리, 변호인 선임에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변호인단에 참여한 변호사에 대해 비난을 내뿜는 일도 종종 보게 된다.

▶ "변호 못 하겠다" 고유정 측 변호인단 5명 일괄 사임계 제출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 사건의 변호인단 구성에 대해 작년 7월 관련 보도가 나간 후, 변호인단에 참여한 변호사들은 "돈에 환장해서 악마를 변호하는 5인"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한 변호인단은 보도 다음 날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 이후에도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들이 사임을 했고, n번방 사건의 공범을 변론한 변호사가 공직비리수사처장 추천 위원으로 선정되었다가 그의 변론 경력이 알려지자 사임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다보니 흉악범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사람들을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변호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흉악범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자신의 악하고 모진 범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며 그 변론 과정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은 악함을 비호하는 것이라는 공식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공식은 항상 옳은 것일까?

# 약촌오거리 사건

20년 전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가 칼에 12차례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경찰은 근처 다방에서 심부름하며 먹고 자던 '다방 꼬마' 15살 소년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 검찰, 법원은 소년이 살인범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 소년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자신의 악하고 모진 범행에 대한 형사책임을 졌다는 내용까지는 다른 흉악범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흉악범으로 몰려 징역 10년을 살고 나온 그 소년은 실제 범인이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실, 사건 발생 3년 후 진범이 수사기관에서 자백을 했음에도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 그냥 사건을 묻었다는 사실, 16년이 지나서야 재심이 열려 무죄를 받은 사실, 뒤늦게나마 진범에 대한 처벌 절차가 진행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팩트라마] "제 아이는 살인자의 자식이 아닙니다!"

최근 재심 사건을 무죄로 이끈 변호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그의 노력과 스토리에 우리 모두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 살인범으로 몰린 15살 소년이 재판을 받았을 때 그의 억울함을 위해서 변호했던 변호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20년 전 흉악범을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는 과연 재심 변호사처럼 영웅 대접을 받았을까? 앞서 소개한 공식대로 우리는 흉악범의 범행을 비호한다며 비난하지는 않았을까?

15살 소년이 수사기관에 붙잡혀 몇 날 며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당하며 '결국 이러다 여기에서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 속에 허위 자백을 했을 때, 그를 조력하는 변호사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한 1심 재판부가 오히려 자백을 번복한 것에 괘씸죄를 적용해 징역 15년을 선고할 때 그 옆에서 '끝까지 노력해 누명을 벗자'고 그를 설득하는 변호사는 없었다. 그저 형량이라도 줄이기 위해 다시 자백을 하자는 국선 변호인의 충고만 있었고, 실제 그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항소심에서 반성문을 써냈다.

최정규 인잇

기업 범죄로 기소된 사람들은 그 유명하다는 전문 로펌의 조력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전관 변호사들을 추가로 선임하는 '변호사 쇼핑'을 즐기고 있다. 그 쇼핑 구매목록에 올려진 변호사들은 그 변호에 참여한 것을 자신의 경력이라고 내밀며 다른 기업 범죄 변호를 맡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호화 변호인단을 꾸리는 사람들, 그리고 변호를 맡은 변호사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며 변호사들은 그 권리가 달성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남는다.

 
"기업범죄 가담자와 달리 흉악범은 국선변호인의 조력만 받아야 하는가?"
"기업범죄 변호인과 달리 흉악범의 변호인은 이토록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기업범죄로 기소된 사람들이 누리는 호화 변호인단에 대해서는 '400명을 쓰든 4,000명 쓰든 무슨 상관'이라고 하면서도, 흉악범에 대해서는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약촌 오거리 사건'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흉악범의 악한 행동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아야 할 이유다.

* 편집자 주 : 최정규 변호사는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사건 △성추행·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노동자 사건 △신안 염전 노예 사건 등의 변호를 맡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인잇 네임카드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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