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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파일] 지도자 명령에 '복종' 의무 32년 만에 삭제

[단독][취재파일] 지도자 명령에 '복종' 의무 32년 만에 삭제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0.08.04 09:47 수정 2020.08.06 13: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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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계에서 선수 인권 보호에 대표적 걸림돌로 꼽혀온 지도자 명령에 대한 '복종' 의무 규정이 마침내 없어집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에 명시된 국가대표의 임무 가운데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권종오 취재파일 사진 리사이징
1988 서울올림픽 개막을 5개월 앞두고 제정된 <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은 한국 스포츠계에서 '헌법'처럼 인식돼 왔습니다. 국가대표는 물론 실업 선수와 학생 선수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 사항'으로 통용돼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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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의 여러 조항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돼 왔던 것이 <제 8조 2항>에 명시된 국가대표 선수의 임무입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국가대표 선수는 촌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즉 진천선수촌에 있을 때나 외부에 있을 때도, 훈련에서나 일상생활에서도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모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이 정당하고 합리적인지, 그 여부를 가려서 선수들이 판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조항은 선수들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일종의 족쇄처럼 작용해 왔습니다. 가뜩이나 감독이 선수들의 선발과 출전 등 이른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조항까지 30년 넘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감독이 부당한 지시와 명령을 내려도 선수들이 이에 저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지난해 1월 조재범 쇼트트랙 코치의 충격적인 '성폭력' 사건이 터졌을 때 각계에서는 이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지만 한 글자도 변경되지 않았습니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한창 강화 훈련 중인 상황에서 이 조항이 삭제되면 감독이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이 있은 뒤 분위기는 확 달라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스포츠 폭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대한체육회도 결국 이 조항의 삭제를 결심했습니다.

이 조항이 삭제된다고 해서 선수들이 감독이 모든 지시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대표 지도자와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체육회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권종오 취재파일 사진 리사이징
위에 나온 사진처럼 국가대표 선수의 임무를 크게 4가지로 정의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제3항으로 '국가대표 지도자가 정당한 인권 및 안전보호를 위하여 지시한 사항의 이행'입니다. 즉 지도자가 부당한 지시를 내릴 경우에는 따를 의무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체육회는 또 선수 인권 보호를 위해 지도자에게도 의무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의 합숙 훈련에 대한 생활 지도와 인권 및 안전보호'를 국가대표 지도자의 의무로 새로 명시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감독들이 이제는 바뀌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오히려 선수들의 고충을 자유롭게 토로할 수 있도록 선수위원회를 구성하면 좋겠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복종 규정'도 없어지고 선수위원회까지 만들어지면 일부 지도자들의 탈선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체육계 일각에서는 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의 독소 조항이 삭제된다고 해서 스포츠계 폭력-성폭력이 곧바로 근절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맞아야 메달을 딴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의 그릇된 인식이 상존하고 있는 데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지방 실업팀의 경우 인권 감시의 사각지대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조만간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할 <스포츠윤리센터>를 공식 출범시키고 구체적인 대책도 발표할 계획입니다. 대한체육회도 폭력-성폭력 근절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적-제도적 대책과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일선 스포츠인들의 인식과 올바른 스포츠문화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폭력-성폭력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스포츠 지도자들의 대오각성과 행정 당국의 철저한 무관용 원칙만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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