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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이 결혼생활도 좋다

문요한|정신과전문의. 책 <오티움 : 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저자.

# 왜 중국집 사장은 일이 끝나면 색소폰을 불까?

집 앞 상가 1층에 퓨전 중국집이 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밤 9시에 닫는다. 한 3년 전이었을까? 밤 10시가 다 되어 중국집 앞을 지나는데 안에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왔다. 궁금증에 앞서 귀부터 거슬렸다. 음악이 아니라 완전한 소음이었다. 이후로도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그 가게를 지날 때면 색소폰 소리가 들렸다. 아마 한 시간 동안 색소폰 연습을 하고 집에 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점 귀에 감겼다.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춰 집에 간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식사를 하고 난 뒤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왜 밤에 집에 안 가시고 색소폰을 부세요?"

주인은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들리던가요? 뭐 별게 있겠습니까. 좋아서 불지요. 그게 저에게는 삶의 낙입니다."

그에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힘든 하루를 위로하고 외로움을 다독여주는 작은 기쁨이었다. 이전에는 일이 끝나면 매일 소주 1~2병을 마실 정도로 술에 의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알코올성 간염' 진단을 받았다. 퍼뜩 정신이 들어 술을 끊었다.

그런데 문제는 술을 끊고 나자 아무 낙이 없더라는 것이다. 술 대신 다른 즐거움을 찾아야 했다. 그때 만난 게 색소폰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조금씩 연주 실력이 늘어나자 재미가 붙었다. 누가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밤마다 연습을 했다. 곡 하나를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연주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색소폰을 통해 작은 행복을 만났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궈내는 행복이었다. 그는 나중에 할 수만 있다면 요양원 같은 곳에서 색소폰을 불며 봉사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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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행복은 무엇인가요?
# 혼자서 행복한 사람이 결혼생활도 좋다 : 나 홀로 행복할 수 있는가?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부부들의 상담을 해왔다. 불행한 결혼생활 때문에 찾아오는 이들은 누구 못지않게 행복한 부부관계를 원하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왜 불행할까? 간단히 말해 상대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이다. 이들은 대체로 일이나 여가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관계'에서 모든 행복을 바라게 된다. 당연히 배우자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상대가 내 기대대로 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책임이 온통 상대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렇기에 상대가 자신의 기대대로 해주지 않는다면 크게 실망하고 좌절한다.

그에 비해 여가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이들은 모든 행복을 관계에서 채우려고 하지 않고, 자신을 행복하게 할 기본적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와 관계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다. 행복은 균형이 필요하다. 관계 안에서 행복하려면 관계 바깥에서도 행복해야 한다.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관계를 통해 행복하려면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보다 즐기기!

우리는 전례 없는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회는 점점 개인화하고 있다. 이 시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의 특정 시간 동안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싫다고 해서 그 시간을 비켜갈 수 없다. 이미 영국은 2018년 '외로움 특임장관'을 만들 정도로 외로움의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BBC는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하는지 55,000명에게 묻기도 했다. 답변을 받아보니 사람들은 취미 활동이나 공부에 주의를 돌리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쓸모없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답했을까?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길 줄 아는 것이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 전부를 행복하게 느낄 순 없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자신에게 집중하고 기쁨을 느낄 활동이 있다면 우리는 잠시나마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빈둥거리는 휴식이 아니라 기쁨을 느끼는 여가 활동이다. 이를 라틴어로 '오티움ótĭum'이라고 한다.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은 내면 깊숙이 침투하는 외로움을 막아내고 지금 행복을 선사한다. 그 기쁨이 고단한 삶의 위로가 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잘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 어떻게 자기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우리 시대가 불행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나'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지만, 정작 나를 채우는 내용물은 빈약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블루를 앓았다. 그것은 꼭 감염에 대한 공포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였다. 모처럼 사회적 활동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 우울하고 답답함을 느꼈다.

우리는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과 마주하기란 여전히 낯선 행위이다. 과연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거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너무 막막하다. 특히, 일과 관계에서 나다움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해 여가는 다르다. 여가는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시간이다.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은 우선 여가의 영역에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야 한다. 이 거친 세상에서 나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작은 기쁨을 스스로 찾아보자.

* 인-잇 편집자 주 : 문요한 의사의 '잘 쉬면서 삽시다' 시리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나를 위한 진정한 휴식법을 알려 드립니다.

인잇 필진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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