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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짙어진 '인수 무산'의 그림자…아시아나·HDC의 '달콤한 꿈'

[취재파일] 짙어진 '인수 무산'의 그림자…아시아나·HDC의 '달콤한 꿈'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20.07.31 10:01 수정 2020.07.31 14:3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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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짙어진 인수 무산의 그림자…아시아나·HDC의 달콤한 꿈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낸 것은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이었습니다. 지난 26일, 인수 협상을 이어온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측에 "다음 달 12주 동안 재실사를 하게 해 달라"라고 공문을 보낸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한마디로 "당신을 못 믿겠다"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부채 2조 8백억 원을 추가로 파악했는데, 인수예정자 동의 없이 채권단에서 1조 7천억 원을 차입하고, 여기에 기내식 관련 계열사 부당 지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 손실 등을 꼼꼼히 다시 따져봐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집 매매 계약서에 최종 사인하기 전에 그동안 집이 얼마나 더 엉망이 됐는지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항공업계에선 "'재실사'라고 쓰고, '인수 포기'라고 읽는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정몽규 HDC 회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만났지만, 입장차만 확인하고 진전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실사하겠다는 것은 가격을 아주 파격적으로 깎거나 아니면 인수 무산을 선언하려는 의중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앞서 4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현산HDC 관계자는 그때 이미 제게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습니다. "그들(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을 믿기 어렵다. 많은 것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이 HDC현산 관계자 말을 정리해보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6월 재무 상황을 보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 부채가 수조 원이나 늘어났다. 졸지에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부실기업'을 사들이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박삼구 회장과 금호산업 측은 자구안 마련은커녕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 어쩌면 이미 그 당시 HDC현산은 '인수 불가'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더는 참지 않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도 더는 참지 않았습니다. HDC현산에 "다음 달 12일 이후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고 곧바로 되받아친 것입니다. 러시아 정부의 기업결합심사를 끝으로 선행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으니,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완료하는 등 계약을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아시아나항공 고위 관계자는 "잔금을 다 내지 않았는데 곳간 열쇠까지 내줄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HDC현산이 의도적으로 '전략적 침묵'을 선택했다. 우리 측이 지쳐 '계약종결'을 먼저 외치길 기다린 것 같다. 그리고 협상 결렬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항공업계에 정통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그동안 시간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HDC현산은 채권단과 만남조차 매우 소극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연애합니까, 편지라니요?'라고 말하며, 직접 만나자고 했겠는가?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간절하게 매달리는 형국이 되면서 HDC현산은 더 느긋해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재실사를 요구하는 것인 인수 의지가 아닌 '무산 의지' 밝힌 거라고 봐야 한다. 정몽규 회장이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고 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 "우리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국유화 가능성 제기 아시아나항공
이처럼 금호산업이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선 배경에는 '채권단이 우리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말들이 모여 무리를 이룬 '대마'는 결국은 살 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믿음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이 쓰러지면 발생할 고용·산업적 후폭풍을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기에, 어떻게든 살려줄 것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의 직접고용 인원은 1만 명이 넘습니다. 파산 위기에 처한 이스타항공의 고용 규모가 1천5백여 명인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몸집이 큰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계열사와 연계한 하도급 업체까지 고려하면, 고용은 물론 산업적인 측면에서 불어닥칠 파괴력은 상상 이상으로 커집니다.
 
실제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지원이 가능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도 "국유화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감안해 협의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어떻게든 산소호흡기라도 붙여서라도 생명을 연장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에 1조 7천억 원 차입과 5천억 원 영구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채권단 한 고위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82대 중 52대가 빌려 쓰는 '리스 항공기'다. 이 임대비용만 연간 5,000억 원에 달한다. 인수가 무산되면 당장 항공기를 빌려준 해외 리스사들이 반환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이들의 불신을 가라앉히고 경영도 어느 정도 안정화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은 투입해야 할 것이다"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 전 회장
전문가들은 박삼구 금호아시아 전 회장 입장에서도 인수 무산이 나쁜 선택만은 아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당장 구주 매각대금을 받지 못해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에는 부담이 되지만, 반대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지 않고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을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국민이 낸 세금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 현실적 대안은 '국유화'…성공 가능성은 '희박'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게 주어진 사실상 유일한 선택은 '국유화'입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8천억 원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아시아나항공 주식 37%를 가진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정부가 아시아나항공을 맡았다가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매각에 나서겠다는 복안입니다.
 
아시아나항공에 산소호흡기와 링거를 달아주는 비용, 당연히 '국민 세금'입니다. 그렇다 보니 당장 아시아나항공이 제2의 대우조선해양이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 품에서 20년 넘게 세금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국유화를 한다고 해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영국항공과 타이항공 등 전례를 봐도, 세계적으로 국유화된 항공사 중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국유화할 경우 민간보다 방만한 경영을 할 수 있다"라고 경계했습니다.
 
'재매각'은 더 큰 숙제입니다. 부채비율이 6,281%에 달하는 부실기업을 살 기업은 사실상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는 지난해 6월 말 9조 5,988억 원에서 12월 12조여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여기에 올해 1분기 영업 손실도 -2,082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18억 원보다 적자 폭이 대폭 더 늘어난 것입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항공시장이 최악인 점을 고려하면, 매각한다고 해도 채권단이 더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국민 세금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뤄질 수 없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달콤한 꿈. 국적항공사를 운영하며 멋지게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꿈. 망가진 기업을 비싸게 팔아 그룹을 다시 세워보겠다는 꿈. 이 꿈들은 이제, '달콤한 꿈'이 돼가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신규 노선 취향 가격인하
당장 닥칠 위험도 보지 못한 채 덤벼들었던 무능(無能). 핵심 계열사를 팔 정도로 부실경영을 하고도 사재 출연은커녕 65억 원의 보수까지 챙겨간 몰염치(廉恥).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충분히 돌아보지 않는 무책임(無責任). 그런 이들에게 '경영자'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마치 트로트 가수 현철이 김경호의 샤우트 창법으로 노래하는 것만큼 어색하고 또 불편합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지원조건으로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의 자구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평소에는 대주주로서의 이득을 누리면서, 정작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부끄러움은 다시는 부끄러움을 되풀이하지 않는 제도적 다짐으로 피어올라야 한다는 취지이기도 합니다.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몰염치'로 점철된 이 '진흙탕 싸움'을 국민은 준엄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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