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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08] 자가격리를 하다 떠오른 '격리의 품격'에 대한 생각

● 겪어본 적 없는 이야기 : 최소한의 '격리의 품격'

코로나19 이후, '자가격리'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은 '일상의 언어'가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지역사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황을 전제로 '자가격리'를 연구해 적합한 시스템과 보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심리, 정신 건강의 문제는 물론 공간이라는 물리적 환경까지 사회적 안전망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립니다. 베이징 특파원을 마치고 지난 3일 귀국한 정성엽 기자의 14일간 '자가격리' 경험 통해 새로운 '팬데믹 시대, 새로운 사회안전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3년여 만에 귀국…곧바로 336시간 격리

3년여 만에 귀국해 가장 손꼽아 기다린 날이 있었습니다. 7월 17일, 낮 12시. 오매불망 기다렸던 17일 정오는 자가격리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지난 3일 귀국 후 정확히 14일 동안 자가격리를 했습니다.

자가격리를 위한 절차는 인천공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자가격리 장소와 가장 가까운 선별진료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전용 택시를 타고 주소지 소재 보건소로 향했습니다. 보건소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서류 작성을 마친 뒤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습니다. 목구멍과 코 깊숙이 장침(長針) 수준의 면봉이 쑥 들어갈 때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검체 채취가 끝난 뒤엔 타고 왔던 택시로 격리 장소(집)까지 이동했습니다.

다음날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그래도 격리 생활에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잠복 기간을 감안하면 진단 검사 이후에도 감염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두 번씩 발열 체크를 하고, 이상 증세 유무를 살핀 뒤 보고해야 합니다. 공항에서 휴대전화에 설치한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섭니다.

행여 격리자가 보고 시간을 놓칠세라 자가격리 앱은 아침저녁으로 "발열 체크할 시간입니다"라는 경보 문자를 보냅니다. 하지만 '친절함'보단 '족쇄'란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가격리 앱은 격리자의 위치 확인도 합니다. 격리자가 격리 장소를 벗어나면 지정 공무원이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격리자 입장에선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보다 더 격리자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게 우리 국민의 요구 수준입니다. 격리자에게 '손목밴드'를 채워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 대학 연구팀이 '손목 밴드'에 대한 비용대비 사회경제적 효과에 대해 물었더니,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의견이 5명 중 3명(57.9%)에 가까웠습니다. "기대 효과 보다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는 부정적인 의견은 15.4%에 불과했습니다. 기존 자가격리 앱보다 더 강력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90%가 넘었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연구팀이 지난 4월 10~13일 한국리서치에 의뢰, 전국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차 코로나19 국민인식 결과인 이 설문 조사는 전국 만18세 이상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로, 성별·지역·연령을 기준으로 비례할당 표본 추출했으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 표집오차는 ±3.1%p입니다.

● 격리자 둥절, 제가 이탈을 했다고요?

자가격리 6일째 되던 날, 지정 공무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 위치가 격리 장소를 계속 벗어난 것으로 파악된다는 겁니다. 어리둥절해 "어디에 있는 걸로 나타나냐"고 물었더니, 황당하게도 "인천공항"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격리 장소에 조신하게(?) 잘 있는 걸로 확인된 아내가 제 전화를 건네받고서야 결백함이 증명됐습니다.

지정 공무원은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면서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대응 매뉴얼대로 격리자에게 현재 앱을 삭제하고 다시 설치하게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다행히 제 위치도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자체 통신 위성을 연달아 쏘아 올리고 있는 중국에서는 GPS 위치 정확도가 2.5m 단위까지 감지 가능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집 안 안방에서 화장실로 이동하더라도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의 정밀함은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인 게 사실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앱이 해킹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밀도, 보안 문제 등 코로나19로 자가격리가 일상화되는 상황이라면 이런 기술적인 진보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판단됩니다.

● 격리자도 관리자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 : 팬데믹 시대 '격리와 관리체계'는 새로운 생존의 조건

격리자를 관리하는 공무원은 보건소에서 진단 검사를 받고 난 뒤 지정됐습니다. 개인적으론 검사를 받은 날짜가 금요일이어서인지, 공무원은 주말을 건너 월요일에 지정됐습니다. 격리자 감독 공무원은 방역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은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원래 업무를 하면서 격리자 감독을 병행하는 방식입니다. 자치구마다 격리자 담당 공무원 배치 방식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대체로 6급 주무관 이하 구청 공무원들이 나눠 맡고 있습니다. 격리자 감독 업무에 투입되기 전에 사전 교육을 미리 받지만,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방역 전문 인력이 아니다 보니 격리 중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미지수입니다. 격리자 입장에선 '겪어본 적 없는 세상'에서 이런저런 의문이 발생하지만, 지정 공무원이 이를 대응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격리자도, 공무원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나왔습니다. 격리가 일상이 되는 사회에선 이를 감당할 전문성을 갖춘 방역 인력도 충분히 확보돼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자가격리 앱 삭제=격리 해제 : 2주 만의 외출, 꼭 사고 싶었던 그것은?

겪어본 사람에겐 결코 짧지 않은 2주간의 자가격리는 어떻게 해제되는 걸까요? 격리 해제는 엄중하고 비장했던(?) 시작과는 달리 마무리는 꽤 싱겁습니다. 격리 해제 전날 개인적으로 지정 공무원에 문의했더니 "이상 증세가 없다면 격리 앱을 삭제하면 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앱을 지우지 않고 집 밖을 나가면 계속 격리지 이탈로 경고가 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낮 12시, 앱 삭제 버튼을 가차 없이 눌렀습니다. 2주 만의 외출, 그토록 바라던 격리 해제 후 처음 향한 곳은 어디일까요? 저는 편의점이었습니다. 쓰레기봉투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SDF

● 집안에서 쌓여가는 쓰레기…'격리 공간'의 중요성을 생각하다

돌이켜보면 격리를 시작하던 첫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도착 첫날 저녁, 저희 가족의 선택은 치킨이었습니다. 배달원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문 앞에 고이 놓인 치킨을 집안으로 들였습니다. 말 그대로 게 눈 감추듯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수북하게 쌓인 치킨 뼈는 고스란히 2주 동안 저희 가족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 후 무엇을 먹을지는 쓰레기량이 얼마나 나오느냐의 기준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래도 매일 만만찮게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실온에 둘 수 없어 냉동고로 향했습니다. 일반 쓰레기는 보건소에서 지급한 오렌지색 비닐봉투에 담아 소독 처리해 보관했습니다. 생수병 같은 재활용 쓰레기, 생활 쓰레기의 양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렌지색 비닐봉투는 그 양을 감당하기 버거웠습니다.

반출은 안 되고 쌓여만 가는 쓰레기와 함께 한 14일간의 격리, 쌓여가는 쓰레기로 고민을 하다 보니, 저절로 격리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격리자에게 최소한 보장 돼야 할 격리 공간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요? 최소한의 격리 공간조차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팬데믹 시대 '자가격리'…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은?

'최소 공간권' 확보와 관련한 문제 제기는 교정 시설과 관련해서 이미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2016년 12월 헌법재판소는 '구치소 내 과밀수용행위 위헌확인' 판결에서 재판부는 "1인당 수용면적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생활조차 어렵게 할 만큼 지나치게 협소하다면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전원일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1인당 최소 수용면적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은 없지만 헌재는 적어도 2.58㎡(0.78평) 이상은 확보돼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자가 격리의 최소 공간을 교정 시설의 그것과 직접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적어도 팬데믹 시대의 자가격리를 '최소 공간권'의 관점에서도 살펴야 할 필요성은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민해야 할 지점은 격리 공간만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방역을 위해 배려 있는 격리가 필수적인 만큼 사회적 공조 방안이 필요한 이유도 충분합니다. 격리 생활의 체감 충격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데, 특히 격리 시 충격이 훨씬 클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취약층에 대한 배려, 사회적 안전망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자가격리 중 발현한 공황장애, 외로움 등 정신건강의 문제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잇달아 보도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자가격리가 지금보다 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하며, 인권적이고 사회보장적이어야 할 당위성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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