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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유기 동물 신고, 119에 하시면 안 돼요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소방청이 2020년 상반기 119 생활안전출동 통계를 최근 발표했는데, 동물 포획 출동이 가장 많았다. 동물 포획 건수는 총 43,289건으로 전년 상반기(42,770건) 대비 519건(1.2%) 늘어났고 전체 생활안전출동의 1/3 이상(약 34.6%)을 차지했다. 이 말은 소방대원들이 하루 평균 237번 동물포획을 위해 출동을 한다는 뜻이다. 포획 동물은 개, 고양이, 뱀 순으로 가장 많았고, 너구리(85.3%↑)와 멧돼지 포획(53.5%↑)도 크게 증가했다.

개, 고양이 포획 출동이 많다는 통계를 보고 '아, 우리 집 고양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안 내려오면 119에 신고해야지', '유기견을 발견하면 119에 신고해야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18년 9월 시행된 '119 생활안전 출동 기준'에 따르면 들개 공격, 멧돼지 출몰, 말벌 퇴치 등 인명 피해와 직결되는 긴급상황은 출동하지만 길고양이 구조, 유기견 포획 등 단순 동물구조 업무는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방청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비응급' 출동에 소방력이 너무 많이 투입되면 인명 구조, 화재 진압 등 중요한 고유 업무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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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반려견 유기동물 유기견 강아지 개 (사진=픽사베이)

흔히 '범죄 신고는 112, 나머지 신고는 119'라고 여겨 동물구조 요청을 거절하는 119가 야속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정된 소방력으로 잠금장치 개방, 벌집 제거 업무까지 하는 소방대원들의 상황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물구조를 위해 출동한 사이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해본다면, 소방청이 '단순 동물포획 업무 출동을 거절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기동물을 발견했을 때 어디에 신고해야 할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원칙적으로는 지자체 담당자(시청, 구청 유기동물 업무 담당자)에게 연락해야 하지만, 동물보호 전담 부서가 없는 곳이 많고, 동물보호 담당 인력이 다른 여러 가지 업무를 병행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도움을 제때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지자체는 담당자나 (위탁)보호소 소장 등 구조 인력이 곧바로 출동하여 동물을 구조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시민이 스스로 동물을 구조하거나 민간 동물단체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내가 사는 지역의 동물보호 담당자가 누구이고 동물구조 상황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서울, 부산, 경기 등 지자체는 통합민원콜센터 '120'으로 문의해보자).

또 한 가지 고민할 부분은 '예산' 문제이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소방서에 동물구조 전담 인력을 배치한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인데, 소방서 내에 동물구조를 위한 별도 소방 계급 체계를 마련해놓고 수의사까지 고용하여 업무를 수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을 도입하면 좋겠지만,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개인에게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도 있다. 독일의 경우, 119가 단순 동물구조를 위해 출동하면 보호자에게 비용을 청구한다. 예를 들어 나무 위에 올라간 반려묘 구조를 위해 소방대원이 출동하면 시간당 100~300유로의 비용을 청구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동물구조와 관련된 인력과 예산 모두 부족하다. 프랑스, 오스트리아처럼 소방서 내에 동물구조 전문팀이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이루어지기 어렵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119에 전화해서 도와달라 해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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