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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집 짓기, '내 사람 공부'가 먼저입니다

김종대|건축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SBS 뉴스

작성 2020.07.25 11:10 수정 2020.07.28 18: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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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짓는 일은 마음을 짓는 일

3년 전쯤 연세가 지긋하신 한 부부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고 단둘이 살고 있는 이 부부는 공기가 좋은 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노년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집을 짓고 싶어 하셨다.

"내 아내의 소망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에요. 독서가 취미이니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서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내게 말했다. 아내가 민트색을 좋아한다는 걸 알려준 것도 남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해 보였지만, 평소에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묵묵히 전해주는 모습이 정말이지 아름다워 보였다. 아내는 농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을 위해 텃밭 공간에 신경을 많이 써달라고 했다. 퇴직 후 취미 겸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시작한 '텃밭 가꾸기'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부부는 텃밭에서 가꾼 과일로 청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있었다.

또한 넓은 거실과 게스트 룸도 부부에게는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타지 생활을 하는 자녀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부부는 자녀들이 찾아오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픈 마음이 컸다. 거기에 더해 텃밭에서 기른 농산물로 만든 잼이며 과일주스를 판매할 수 있는 판매 공간도 갖추길 원했다. 여러 요청사항으로 설계하기가 녹록지 않았지만, 그 부부가 평생 꿈꿔왔을 집과 가족에 대한 희망을 오롯이 녹여내기 위해 설계를 고치고 또 다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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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가족 구성원의 희망이 담긴 결정체이다.이 부부의 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집을 짓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짓는 일이다. 아파트처럼 다 만들어진, 나의 생각과 관계없이 지어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그려오던 것들을 구현하는 과정이 반드시 따라온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이웃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새로 마음을 짓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자녀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던 아빠도, 아이들의 방을 설계하면서 자녀의 취향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딸아이가 좋아할 줄 알았던 하늘이 보이는 천장이 사실은 아빠의 로망인 경우도 있었다. 감정 표현이 적은 남편이 알고 보니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기도 한다. 안방에 침대를 어디에 둘 것이냐를 두고도 부부의 다름이 드러나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기도 한다.

집을 지으면서 꼭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한때 유행한 땅콩 집을 짓는 과정에서 두 가정의 관점이 서로 달라 결국 집짓기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한 가정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데 둘 이상의 가족이 만났을 때의 어려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과 공동의 활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는 일은 어려웠고 공사비 분담에 대한 문제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집을 한번 지어본 사람들이 다시는 집 못 짓겠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 이유에는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상처가 한 몫한다.

집을 짓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짓는 일이다. 가족을 포함해 가깝게 지내는 사람인 경우, 우리는 상대방을 잘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상대를 자기 위주로 판단하고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집을 짓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말 있다.

"집을 짓기 전에 마음을 먼저 지어보세요"라고...

마음을 짓는 일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족, 그리고 이웃에 관한 관심이며 배려이다. 관심과 배려가 공간을 만들고 창을 내는 집 짓기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 김종대 건축가의 '건축 뒤 담화(談話)' 시리즈는 도시 · 건축 · 시장 세 가지 주제로 건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습니다. 격주 토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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