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잇] 위기를 기적으로 바꾸는 말.한.마.디.

강원국|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책 <나는 말하듯이 쓴다> 저자.

SBS 뉴스

작성 2020.07.26 11:00 수정 2020.07.26 16:25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말의 기적
: 기회는 위기의 옷을 입고 온다

 

"지금 당장 나가세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나는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열심당원'은 아니다. 겨우 주일 예배를 지키는 정도다. 목사님이나 교회 성도들과 교제도 없다. 성가대에 서고 싶었지만,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단념했다. 예배 중 한 번 정도는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성가대석의 좁은 공간을 헤치고 만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목사님 설교 중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려던 순간 교회를 울리는 목사님의 한마디.

"이 자리에 신천지 추수꾼이 들어와 있는 것 다 압니다. 지금 당장 나가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교회에 다닌 지 40여 년 만의 최대 위기였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강원국
#1 모든 조직은 늘 '위기'라는 폭탄을 껴안고 산다

내가 다닌 직장 가운데 절반은 문을 닫았다. 이를 보며 나는 모든 조직은 늘 '위기'라는 폭탄을 껴안고 산다는 걸 확인했다. 위기 앞에서 사람들은 대개 자리를 피하거나 침묵한다. 딴청을 부리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궁지에 몰린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격이다. 해결되는 것은 없고 보는 사람들 속만 터지게 하는 악수(惡手)다.

사실이 아니라고 무조건 부인하거나 은폐, 또는 축소하기도 한다. 가장 나쁜 대응이다. 일종의 방어기제로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부하를 희생양으로 삼기도 하고, "나만 그랬냐? 너도 그러지 않았냐?"라며 물귀신 작전을 쓰기도 한다. 이를 되받아치며 역으로 공세를 취하는 건 정치권에서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재벌들은 갑작스러운 선행이나 사재 출연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데,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별로 효과가 없을 걸 알 텐데 당황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모면하려는 것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는 회피하거나 무턱대고 벗어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선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차분함이 필수 덕목이다. 마음속으로 '침착, 또 침착!'을 되뇌어야 한다. 냉정하게 공식적인 한마디를 준비해야 한다.

할 말을 정리했으면 빨리 표명하는 게 좋다. 위기 상황이 되면 언론은 뭔가를 쓰기 위해 안달한다. 위기일수록 언론은 특종에, 사람들은 정보에 목말라한다. 정보 공백 상황이 계속될수록 위기는 증폭된다. 어떤 기자는 추측이나 당사자에게 불리한 증언만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SNS에서는 루머가 양산된다.

#2 위기를 극복하는 메시지

위기는 메시지로 관리된다. 위기 시 메시지 대응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첫째, 사실과 현황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공개한다. 은폐와 축소, 왜곡은 불에 기름을 붓듯 위기를 걷잡을 수 없게 한다. 둘째, 사건이나 사태의 성격을 규정한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본질과 쟁점은 무엇이며, 심각한 정도는 어떠한지 밝힌다. 셋째, 위기가 미칠 영향과 파장 등을 설명한다. 피해의 수준과 범위는 어느 정도이고,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상세히 밝힌다. 넷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취하고 있는 조치와 진행 상황을 알린다. 아울러 잘못 대처한 점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한다. 다섯째, 앞으로 사태를 해결해나갈 방안과 각오를 밝힌다. 여섯째,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을 소상히 알리고 협조를 당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만이 전부는 아니다. 잘못한 게 없더라도 밖에서 잘못했다고 본다면, 이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공중(公衆)의 시각, 즉 '인식' 역시 중요하다. 사실과 인식, 이 두 가지를 다 보는 것이 객관적인 관점이고, 사태를 직시하는 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사태는 이것입니다"라고 한마디로 규정해야 한다. 이 한마디가 사태의 향방과 파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때 내게 유리하면서도, 밖에서 인정하는 한마디를 찾아야 한다. 내게 유리할수록 좋겠지만, 그러면 밖에서 믿어주지 않으니 유리함과 인정, 사실과 인식 사이에서 절묘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조직이라면 이 한마디로 목소리를 통일할 필요도 있다. 위기의 성격을 규정한 한마디로 구성원이 한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조직에 몸담은 구성원들에게 그들의 가족, 친구뿐 아니라 언론까지 문의하고, 이렇게 내부에서 나온 얘기는 다른 어떤 말보다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조직이 위기에 몰리면 그간 아끼고 대우해줬던, 그래서 누구보다 혜택을 많이 받던 사람 가운데 배신자가 속출한다. 속사정까지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이 비난하고 나서면 조직 처지에서는 더 아픈 법이다, 이때 조직이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도 하나 된 목소리다.

#3 위기에 빛나는 지도자의 자격

8년 동안 두 대통령의 생각을 말의 형태로 쓰는 일을 했다. 덕분에 국가 지도자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시련은 영원하지 않다. 모든 것은 지나가니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어려움의 끝은 반드시 온다. 둘째, 그 끝이 왔을 때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하자. 미진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도록 하자. 최선을 다하자. 셋째, 위기에서 기회를 찾자. "역사는 반드시 기회를 준다. 그 기회는 위기의 옷을 입고 온다. 그 기회를 포착하고 선용하는 민족은 흥하고 그렇지 않은 민족은 쇠락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생각으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위기가 생기면 구성원들은 지도자를 쳐다본다"라며 위기 시에 지도자는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첫째,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피하거나 비껴가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 둘째,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하여 후일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그는 경기 진작을 위해 훗날 부담이 될 부동산 부양 정책을 쓰지 않았다. 셋째, 위기를 부풀리거나 조장하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 북한이 자기 영해 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호들갑스럽게 대응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 진짜 위험에 빠지느냐, 아니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위험을 대하는 자세와 생각에 달렸다. 과민성대장증후군 때문에 나는 늘 위기이지만 또한 항상 대비하며 산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사전에 연습하고 준비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낭패 보지 않고 해냈다는 데 감사하고 뿌듯하다.

인잇 강원국 네임카드
# 인-잇 #인잇 #강원국 #말잘하고글잘쓰는법

#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법' 시리즈

① [인-잇] 술술 읽히는 글쓰기? 입부터 먼저 열어라
[인-잇] 나는 '관종'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③ [인-잇] 위기를 기적으로 바꾸는 말.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