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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시장님, 의원님, 청년이 미래라면서요?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2018년 즈음 부터 전국 각지에서 '청년 마음건강'이라는 이슈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단체의 역할이 바로 그것, 청년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하는 것이다 보니 최근 몇 년간 지역에 내려가서 사례 발표를 할 일이 참 많아졌어요.

그런데 그런 자리에 가면 대체로 시장님, 지사님 같은 어른들이 오십니다. 행사 초반에 축사를 하러 오시는데요.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이 이곳, (지역명)의 미래입니다."


라는 표현이지요. 지역의 청년 인구 유출이 눈에 띄도록 심각해졌고 지난 3년간 몇 명이 수도권으로 갔는지, 그래서 이 추세대로라면 몇 십 년 뒤에 우리 지역은 청년 없는 도시가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을 덧붙입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청년 여러분들이 우리 지역을 지켜주고, 이곳에서 일해주어야 우리 지역에는 미래가 있다. 뭐 그런 말씀이지요. 거의 모든 지역의 단체장들께서 똑같은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행동도 하지요. 바로, 축사가 끝나기 무섭게 현장을 빠져나가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축사하는 동안 청년들의 표정을 보면 대체로 '멍~'하거나 '어쩌라고'하는 표정들입니다. 거의 듣지 않는 것이지요. 말씀이 지루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요즈음 지자체장 님들은 TV 출연에, 유튜브에 다양한 매체로 단련된 분들이 많아서 말을 참 재미있게 잘 하세요. 진짜 문제는 그 메시지들이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청년들이 떠나는 지역, 그래서 청년들이 반드시 필요한 지역이라면, '무엇 때문에 청년들이 떠나는지'를 들어봐야 할 텐데. 하실 말씀만 하시고 떠나버리시는 모습을 보며 어떤 청년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니, 청년들이 지역에서 사는 게 왜 힘든지, 무엇이 부족한지, 인프라인지, 네트워크인지, 일자리인지 듣고 반영하려는 모습이 있어야지, 우리 지역이 조금씩 더 살만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텐데. 할 말만 하시고 훅, 떠나버리시면... 그냥 우리 동네가 망하지 않게 너네가 남아줘! 라는 말만 하시겠다는 거 아닌가?"

"야 야, 다 그런 거지 뭐. 이 동네 청년 인구 0명 될 때 쯤, 저분이 임기 중이겠냐?"


이러한 시니컬한 반응들. 청년들이 '싸가지'가 없어서일까요? 글쎄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상담 현장에서 이른바 '상경 청년'들을 만나면요. "서울에서 사는 거 힘들어요. 솔직히 우리 지역에 살고 싶어요"라는 말들을 참 많이 듣습니다. 그러면 제가 묻죠. "그런데 왜 못 내려가는 거예요?" 그 안에 답이 있습니다. 청년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왜 못 내려가는지.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시행정을 전혀 모르는 저일지라도 '아... 이런 부분들이 갖추어진다면 청년들이 안 내려갈 이유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지점들이 지자체에서 만들고 있는 청년정책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거지요. 즉 정책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청년들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기성세대의 시각과 태도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행사가 하나 최근에도 있었습니다.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죠. 새롭게 제정될 '청년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의 조직위를 발족한다고, 아주 큰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안철수 대표를 비롯해서, 미래통합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많은 의원님들이 오셨습니다. 그런데요. 아주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이 공개됐지요. 코로나 방역 문제로 거리두기 착석을 한다고, 두세 자리씩 뚝뚝 띄워서 '내빈'들을 앉히고, 참여한 청년들은 복도 바닥에 다닥다닥 붙여서 쭉 앉힌 겁니다.

청년의 날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 자리는 '거리두기', 청년들은 복도 바닥에 '다닥다닥'

사진으로 보시면 기가 찰 만한 모습인데요. 국회의원, 연예인, 유튜버를 제외한 모든 청년 참여자들은 복도 끝과 계단 쪽 바닥에 아주 딱 붙어서 앉아있습니다. '청년의 날'을 위한 행사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그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참여한 청년들은 모두 내빈의 축사에 박수를 칠 뿐. 어떤 의미로도 주체로서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요. 왜냐하면 주최 측은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참여자 청년들을 활동 인증서를 준다는 내용 아래, '모집'했거든요.

그런 웃픈 모습을 연출한 이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내빈석에 앉은 '높은 분들'과 계단에 쭈그려 앉은 청년들이 모두 함께 '청년이 미래!'라고 적힌 푯말을 머리 위로 들어서 외치는, 아주 웃픈 풍경이었습니다. 객체로서의 청년. 이탈하지 않게 머릿수를 카운트하는 데만 쓰이는 청년. 표심 잡기의 대상인 청년. 언제쯤 이런 시선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시장님, 그리고 의원님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선, 지금과 같은 태도를 가진 채로 '청년이 미래야'라고 말씀하시는 거, 우리 미래가 어둡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는 거죠?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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