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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식시장 활성화 위해 고쳤다"는 정부…길 잃은 세제 개편안

[취재파일] "주식시장 활성화 위해 고쳤다"는 정부…길 잃은 세제 개편안

박찬근 기자 geun@sbs.co.kr

작성 2020.07.22 14:13 수정 2020.07.22 14: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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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이 주식으로 돈을 꽤 벌었습니다. 직장 생활 5년 차. 슬슬 돈이 모이니 굴릴 궁리를 하게 됐습니다. 정기예금이나 적금 이자로 손에 쥐게 될 금액을 보니 재테크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답니다.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논의와는 별개로, 집은 너무 비싸져 어차피 못 살 물건이었답니다. 현실성 있는 선택지는 증권시장이었습니다. 증권 계좌를 만들고 월급 통장에 쌓인 돈을 옮겼습니다. 운인지 실력인지 투자 첫해였던 지난해 500만 원 정도 수익이 났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투자 원금만큼 신용대출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3천700만 원쯤 벌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25일, 정부가 이른바 개미 투자자들에게도 수익에 대한 세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신 거래세를 조금 낮춰준다고 했습니다. 바로 계산기를 두드렸답니다. 올해 거래세로 34만 원 정도를 냈는데, 세제가 바뀌면 거래세는 20만 원으로 줄지만 양도세 340만 원 정도를 추가로 내야 합니다. 바뀐 규정이 적용되는 3년 뒤, 같은 투자금으로 같은 수익을 낸다면 세 부담이 10배 넘게 늘게 됩니다.
*첫 발표 때 정부는 상장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2천만 원 공제를 적용한 뒤 3억 원 이하 초과분에 대해 20%, 3억 원 초과분에 대해 25% 세율로 과세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매매 금액 전체에 부과되는 거래세는 현행 0.25%에서 2023년까지 0.15%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이런 개미 투자자들이 주변에 더러 있습니다. 정부가 헤아려보니 전체 개인 투자자의 5%, 30만 명 정도가 연 2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30만 명과 2천만 원 이상 투자 소득을 목표로 하는 투자자들의 반발을 정부도 예상했습니다. 정부가 준비한 논리는 조세의 형평성이었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의 원칙이 주식 투자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증세를 위한 개편이란 시각에는 거래세 인하로 세수가 줄어 전체 세금은 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개미 투자자 세금 징수 (자료화면)
과열된 증시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었습니다. 어제(21일) 종가 기준 코스피는 2,228.83, 올해 가장 높았던 2,267.25의 98.3% 수준까지 회복했습니다. 엉망이 된 실물경제와 괴리가 큽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6월 수출이 10.9% 줄어 392억 달러에 그쳤습니다. 이런 탓에 이미 마이너스로 돌아선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다시 하향 조정되고 있습니다. 주가 급등은 실물경제 회복에 부응한 것이 아니라, 갈 곳 없는 유동성 자금이 증시로 대거 흘러든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합니다.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고 언제 폭락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과 중국 증시는 더 심합니다. 코로나19 발생 전보다도 높아진 나스닥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를 두고 비이성적 과열,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부 발표 3주 만인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금융세제 개편이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 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인 투자자를 응원하고 주식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본래 개편 방향과 정반대 주문을 한 겁니다. 그 사이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조세 원칙은 여전히 유효했고 증시는 여전히 과열돼 있었습니다. '반대 여론에 밀렸다', '지지층인 젊은 세대 끌어안기다'라고 비판받는 이유입니다.

다시 5일 만인 오늘, 정부는 다시 고친 금융세제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과세 기준은 완화됐습니다. 양도세 공제 금액이 5천만 원까지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해 5천만 원까지는 주식으로 돈을 벌어도 양도세를 안 내는 겁니다. 정부가 다시 헤아려보니 한해 5천만 원 이상 버는 개인 투자자는 전체의 2.5%, 15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문 대통령의 '개미 응원' 발언 이후 2.5%의 개미 투자자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 셈입니다. 주식 투자로 한 해 2천만 원에서 5천만 원을 버는 사람들입니다. 정부 스스로 언급했던 조세 형평성을 저해하면서까지 세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 대상인지 의문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주식시장 활성화가 장려할 일인지를 생각하면 더욱 의문이 커집니다.

과세는 본래 의욕을 꺾는 일입니다. 소득세율이 오르면 일을 덜 하게 되고 금융투자 소득에 세금을 물리면 투자를 덜 하게 됩니다. 과세는 본래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과세하고 증세한다면 움직일 수 없는 원칙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소득 격차의 완화 같은, 사회가 합의한 가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다시 고친 이번 주식세제 개편안이 이런 가치에 따른 것인지 함께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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