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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못 한다

[취재파일]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못 한다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0.07.21 10:24 수정 2020.07.21 10: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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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할 가능성이 새로 제기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어제(20일) 홍콩 유력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1980년대 미소 냉전 시기에 양 진영이 상대국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에 불참한 바 있는데, '신냉전'으로 불리는 최근 분위기상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중국은 최근 대회 개막일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카운트다운 시계'를 대중에 공개하고 베이징 동계올림픽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습니다.

[취재파일]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못 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얘기가 나오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입니다. 대중국 강경론자인 마르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이 2018년에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 인권 상황을 이유로 개최권 박탈을 주장한 데 이어, 릭 스콧 미 상원의원은 지난 3월, 2021년 1월까지 인권 상황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으면 개최국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이 '홍콩보안법' 제정을 강행한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습니다. 향후 중국이 홍콩의 인권을 탄압하고 미중 양국 간 갈등이 격화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은 곧바로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보이콧을 결심하면 우방인 영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이 합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이듬해 3월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미국과 친밀한 50여 개국은 이에 동조하기 위해 불참했습니다. 한국도 1980년 5월 17일 모스크바올림픽 불참을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스크바올림픽은 '반쪽 올림픽'으로 전락했습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주장을 경계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온라인 연설에서 "정치적 배경으로 인한 올림픽 보이콧이나 차별은 매우 위험하다"며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고, 시민들이 올림픽을 통해 얻는 자부심과 기쁨을 빼앗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불참 사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하계올림픽 불참으로 이어졌다"며 "보이콧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미국이 만약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이란 초강수를 둘 경우 한국도 난감한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 탄압을 거론하며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이 중국에서 열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나라에게 강조하면서 보이콧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할 수 있을까요?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국내 스포츠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보이콧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1980년에는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여러 요인으로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또 모스크바올림픽 개최국인 소련은 적대국인 반면 미국은 우리의 최대 우방이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데다 남북 관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고려하면 보이콧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요구대로 보이콧을 결정한다면 한중 관계는 거의 파탄날 것이 뻔합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이었던 한국이 바로 다음 동계올림픽에 불참한다는 것도 큰 부담입니다. 또 우리는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는 나라가 올림픽을 보이콧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입니다.

대한체육회 로고 (사진=연합뉴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 서방 진영 국가들이 만약 정치적인 이유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한다 해도 한국은 거기에 동참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치적인 보이콧으로 '반쪽 올림픽'이 될 확률보다는 코로나19로 베이올림픽이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 하계올림픽이 코로나19로 끝내 취소되면 5개월 뒤에 열리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31억 달러(약 3조 7천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스키 대회장이 있는 허베이성 장자커우(張家口)와 베이징을 연결하는 고속철 사업에 82억 달러(약 9조 8천억 원)를 쓰는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이 야심 차게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보이콧을 선택한다면 중국은 한마디로 '재앙'을 겪게 됩니다.

왕이웨이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동계올림픽과 관련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과 달리 중국은 전혀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중국 정부의 고민은 앞으로 커질 수밖에 없을 전망입니다. 신장 위구르와 홍콩 문제는 중국의 주권과 관련돼 있어 '양보'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원칙을 강조하며 강경하게 나올수록 2022년 베이징올림픽은 '반쪽 올림픽'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전 세계 스포츠가 위축된 가운데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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