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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휴가인데도 우울해"…저 요즘 왜 이럴까요?

문요한|정신과전문의. 책 <오티움 : 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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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0.07.21 11:02 수정 2020.07.21 14: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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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할까?'

'한 1년만 마음껏 쉴 수 있다면…'

직장인이라면 자주 하는 생각이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듯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직장인들일수록 자유 시간을 그리워한다. 물론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이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생각이 되고 만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돈이 충분하고,
하루 종일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생은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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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할까?
# 쉬는 시간이 많다고 행복할까?

중현 씨는 지난해에 공기업에서 정년을 채우고 퇴직을 했다. 교사인 아내는 정년이 꽤 남아 있다. 부부는 경제적으로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중현 씨의 세상이 된다. 온통 자유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하기는커녕 무기력해졌다. 친구를 만나서 낮술을 먹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유의 기쁨은 딱 3개월이었다. 이후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아내는 굳이 바라지 않는데도 학교까지 출퇴근시켜준다. 그렇게라도 해야 뭔가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다. 그 후 오전에는 간단히 집안일을 하고 TV를 본다. 오후에는 집 앞 공원을 산책하다가 도서관에 들른다. 아내가 퇴근할 무렵이면 다시 아내를 태우고 돌아온다. 저녁을 함께 먹고 TV를 보다가 잠을 잔다. 아내가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아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런 날이면 엄마를 기다리는 초등학생 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만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불러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불러내고 싶은 사람도 별로 없다.

# '월요병'이 아니라 '주말병'!

과연 일부 퇴직자들만의 이야기일까? 많은 직장인들은 금요일 오후부터 행복해진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만 되면 월요병이 시작한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주말병'이라는 것도 있다. 즉, 주말이나 연휴가 시작할 때 우울해지는 것이다. 시간이 많은데 특별한 약속은 없고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계속 잠을 자거나 게임이나 동영상을 즐기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울적해진다. 실제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휴가나 방학 기간에 심리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일부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조사를 해보니 주말병을 호소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았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 볼프강 매닝 교수 등은 16년간 독일 노동자 3만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설문 조사 결과, 고학력자들의 경우 주중보다 주말에 삶의 만족도가 더 낮았다. 또 월요일에 가장 만족도가 높고 주말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머리를 많이 쓰고 일을 통해 자기 효용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할 일이 없으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이다.


어른들도 놀이가 필요하다, 본인에게 꼭 맞는.
# 어른도 놀이가 필요하다

많은 현대인들의 비극은 여가 시간의 부족이 아니라 여가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데 있다. 한 마디로 놀 줄 모르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보상 때문에 무언가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에 우리는 삶의 모든 것에 생산성과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댄다. 새로운 취미 활동을 즐기다가도 종종 '지금 내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쓸데없는 걸 하는 게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한 잣대를 들이민다. "그런 것 배워서 뭐 하려고?" "그게 돈이 돼?" "왜 사서 고생을 해?"

아이들이 행복한 것은 잘 놀기 때문이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놀이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것은 바로 '놀이의 결핍' 때문이다. 미국에는 국립 놀이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 소장 스튜어트 브라운은 원래 정신과 의사였다. 그는 어쩌다가 놀이연구소 소장이 되었을까? 그는 연쇄살인범들의 정신감정을 담당하면서 이들의 어린 시절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이에 맞는 놀이 경험이 결핍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계기로 약 6,000명의 '놀이 역사'를 연구해본 결과 어린 시절에 잘 놀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즐거움이 없고, 경직되어 있고, 중독 성향이 강하고, 일중독에 빠지거나, 우울했다. 그가 놀이연구소를 만든 이유다.

아이들처럼 어른도 놀이가 필요하다. 책임이나 의무 때문도 아니고 보상이나 결과에 매이지 않고 그냥 활동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는 놀이가 필요하다. 다만 아이 때와 달리 어른의 놀이는 상대적으로 초점과 배움 그리고 체계가 있다. 악기를 연주하고, 서핑을 하고, 심리학 공부를 하고, 발레를 하고, 정원을 가꾸는 등 보다 명료한 초점이 있고 배움과 연습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해간다.

# 난이도가 있지만 지속적인 행복, 오티움 ótĭum

이러한 어른의 놀이를 일컬어 '오티움 ótĭum'이라고 한다. 라틴어인 오티움은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말한다. 이는 별다른 노력 없이 쾌감을 얻는 중독과는 엄연히 다르다. 오티움은 시간이 남아서 슬렁슬렁하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노력을 기울이는 여가 활동이다. 추운 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직접 원두를 사다가 로스팅을 하고, 손에 물집이 잡혀가며 정원을 가꾸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예나 악기를 배우러 간다.

즉, '사서 고생하고 그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존재'가 인간이다. 쉽게 얻은 즐거움은 빨리 휘발되지만 어려움을 거치고 얻은 기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티움은 '난지행難持幸' 즉, '난이도가 있지만 지속적인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 자력의 기쁨이야말로 삶의 주름을 펴는 보톡스가 된다. 당신의 경우 사서 고생하고 그 과정에서 기쁨을 얻는 활동은 무엇인가?

* 편집자 주 : 문요한 의사의 '잘 쉬면서 삽시다' 시리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나를 위한 진정한 휴식법을 알려 드립니다.

인잇 필진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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