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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득은 주는데 빚은 급증…부채의 역습 "경보"

코로나19의 충격에 지난 3월 1천4백 선으로 하락했던 코스피가 2천 선을 회복했다. 코로나19로 다시 올 수 없는 투자기회를 잡았다는 듯 이른바 '동학 개미'들은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주식을 사들이며 머니 게임에 뛰어들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은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2번째 부동산 가격 안정대책이 발표됐지만, 30-40대를 중심으로 영혼까지 끌어다 쓴다는 '영끌 대출'까지 하며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집 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지금이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늘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만 보면 2020년 벽두에 돌연 나타난 코로나19와 경기침체는 남의 나라 얘기 같다. 여당인 민주당 의원조차 지금의 대책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주식과 부동산 열풍 속에서 부채라는 악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은밀하게 확산해 한국경제를 집어삼킬 태세다. 한국은행에 이어 국회예산정책처도 급증하는 대한민국의 부채 수준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김용철 취파용

● 한국은행, "금융안정지수 '주의'…금융불안 재연 우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 관련 실물 및 금융 부분의 20개 지표를 월별로 표준화해 산출한 금융안정지수를 6개월마다 발표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6월 24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금융안정지수가 2월부터 빠르게 상승해 4월에 위기단계인 22.3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금융안정지수는 하락했지만 5월 지수는 18.0으로 '주의단계' 임계치인 8.0을 배 이상 상회하며 '위기 단계'에 다가서 있다.

한국은행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시장 안정화 조치 등 적극적 정책대응으로 금융시장 불안은 대체로 진정되었으나, 코로나19 전개 양상에 따라 금융불안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다시 확산속도가 빨라지면서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1천4백만 명을 넘어섰다. 7월 들어 봉쇄를 풀고 경제활동을 본격 재개했던 미주와 유럽 국가들은 통제를 다시 강화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김용철 취파용

● 국회예산정책처, "우리나라 민간부채 위험 수위…신용갭 곧 '경보단계' 진입"

국회예산정책처는 가계와 기업의 급증하는 빚에 대해 좀 더 엄중한 경고장을 날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7월 6일 발표한 '최근 우리나라 민간신용 증가 추이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신용갭이 2018년 말 0.4%에서 2019년 말 7.0%로 급상승하면서 '주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올 연말이 되면 이 신용갭이 10%를 넘어 최고 위험 단계인 '경보'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소득보다 민간의 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산정해 발표하는 신용갭(Credit-to-GDP gap)은 민간신용(가계나 기업의 대출)규모 대비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장기적인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나는 지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신용갭이 2% 미만이면 '보통', 2∼10%이면 '주의', 10%를 넘어서면 '경보' 단계로 구분한다. 연간 소득보다 대출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 지를 비교해 부채 상환에 문제가 없는지를 가늠하는 수치다.

우리나라의 총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규모는 2018년 말 187.6%에서 2019년 말 197.6%로 10%P 상승했다. 가계와 기업의 빚이 지난해 경상GDP 1천919조 원의 두 배 가까이 됐다는 얘기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민간부채의 비율이 10.4% 포인트 증가한 208%로 높아지고, 신용갭이 10%를 훌쩍 뛰어넘어 '경보'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용갭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2007년 4/4분기 13.2%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4/4분기 10.7%로 올랐다가, 그 이듬해인 2009년 2/4분기 13.2%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발생한 두 차례의 금융위기 때 모두 신용갭이 13.2%를 나타냈다.

김용철 취파용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올해 민간신용증가율은 지난 2년간의 증가율인 6.1%, 명목GDP 성장률은 0.8%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올 들어 가계와 기업의 부채 증가율은 지난 1분기 7.6%, 명목 GDP 상장률은 1%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부채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면서 성장률은 더 떨어지고, 부채는 더 늘어나 신용갭이 예상보다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019년 국가별 GDP대비 민간부채 증가 폭, 한국이 2번째다

● "한국, 소득 대비 민간부채 증가 속도 세계 2위"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GDP대비 민간 부채 증가속도는 국제결제은행(BIS)에 신용 자료를 제출하고 있는 주요 43개 국가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이 11.1%P 증가한 칠레 다음으로 부채 증가 속도가 빨랐다.
주요국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

작년 말 현재 BIS에 신용 자료를 제출한 주요 43국의 GDP대비 민간 부채 비율은 평균 156.1%, 선진국의 평균은 168.6% 였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은 43개국 평균보다 41.5%P, 선진국 평균보다는 29.0%P가 높았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24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 1/4분기 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은 201.1%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전체 가계와 기업의 평균 부채가 연간 소득의 2배를 넘어선 것이다. 주택 관련 자금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계부채가 6.5% 증가했고,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 노력 등으로 기업 부채는 8.6%가 증가했다.

김용철 취파용
● 올해 국가채무 111조 증가, 840조 원 돌파 예상

가계, 기업과 함께 국가경제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국가의 부채규모는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각종 연금과 기금을 제외한 국가의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111조 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의 부채는 올 한 해 15.2% 증가하면서 840조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기업과 가계의 소득은 줄어 세수는 감소하기 때문이다. 올해 세수는 예상치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국가 부채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은행(빨간색)과 상호금융기관(파란색)의 평균 대출금리

● 사상 최저 금리 행진, 부채 걱정하면 바보?

한국은행은 지난 7월 16일 기준금리를 0.5%로 동결했다. 같은 날 유럽중앙은행(ECB)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하며 예치금리(DFR)와 한계대출금리도 각각 현행 -0.50%와 0.25%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채권을 사고파는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조정하는 기준금리는 0%, 은행들이 운용하고 남은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치금리는 -0.5%, 은행들이 돈이 모자랄 때 중앙은행에서 빌리는 한계대출금리는 0.25%라는 얘기다.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도 0-0.25%이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도 모자라 부실기업의 채권까지 사주며 돈을 풀고 있다. 한마디로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경제활동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지난 5월 말 현재 우리나라 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는 신규대출 기준으로 연 2.82%, 저축은행 등 상호금융기관의 평균대출금리는 연 3.59%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대출금리가 연 10%를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은행에 저축을 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는 평균 1.07%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가 늘어난다고 걱정하면 투자를 모르는 바보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돈을 푸는 것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 부채 부담을 줄이고,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투자와 소비를 늘리도록 유도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싸게 풀린 돈이 투자보다는 투기적인 곳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는 심각한 자원배분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 경제주체들은 "금리는 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하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도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고 싶어서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미국 연준의 가파른 금리인상도 마찬가지였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투기적 행태가 확산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면서 금리인상이 뒤따랐다. 그리고, 금리인상과 함께 그동안 초저금리 속에 감춰져 있던 각종 도덕적 해이와 부실, 거품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세계적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값 걱정을 했는데 잘 버티고 있구먼. 괜한 걱정을 했어." 만나기만 하면 불어나는 국가부채와 가계부채, 부동산 투기를 걱정하던 한 선배의 말이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이 언제 바뀔지는 알 수 없다. 금리가 오르지 않더라도 끝없이 상승할 것 같았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멈추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모두가 부채 걱정을 하지 않고 버블에 환호하는 때가 진짜 문제가 발생하는 시기라는 것을 과거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부채 걱정을 하던 선배의 안도가 그 임계점,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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