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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1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한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을까. 대법원 선고 이틀 전 이재명 지사를 만나러 수원으로 가면서 가졌던 기대다. 법이라는 칼이 자신의 심장을 정통으로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 먼발치에서 본 적도 없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인터넷에서 그가 지난 2월에 쓴 글을 읽고 나서다.

"나 역시 부양할 가족을 둔 소심한 가장이고 이제는 늙어가는 나약한 존재다. 두려움조차 없는 비정상적 존재가 아니라 살 떨리는 두려움을 사력을 다해 견뎌내고 있는 한 인간이다. 누릴 권세도 아닌 책임의 무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쉬울 뿐 지사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정치적 사형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황혼녘에서 경제적 사형은 두렵다. 전 재산을 다 내고도 한 생을 더 살며 벌어도 못 다 갚을 엄청난 선거자금 반환 채무와 그로 인해 필연적인 신용불량자의 삶이 날 기다린다."

사람 냄새가 훅 끼쳐왔다. 혼자 술이라도 한잔 한 건가. 늙어가는 나약한 존재라니, 소심한 가장이라니, 살 떨리는 두려움이라니, 인생의 황혼녘이라니, 이게 우리가 알던 이재명 맞는 건가? 지사직 박탈되고 피선거권 잃는 정치적 사형은 두렵지 않으나 신용불량자 되는 것은 두렵다고? 먹고 살 일이 두렵다고, 다시 가난해지는 것이 두렵다고? 이게 정말 이재명이 직접 쓴 글 맞는 건가? 그에게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썼는지 먼저 물었다.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었고요. 코로나 발생한 이후일 텐데 제가 공관에서 밤늦게 두세 시쯤 썼을 거예요. 사람들은 저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으로 여기잖아요. 그렇게 기대하기도 하고 그렇게 믿기도 하는 거 같고요. 저도 사실 아플 때도 많고 괴로울 때도 많지요. 그날 밤 생각하니까 정말로 두렵고 힘든 겁니다. 우리 가족들, 취업도 못하고 인턴도 못하고 헤매는 우리 아들들. 나만 믿고 평생을 같이 따라와 준 아내. 이 사람들이 앞으로 살게 될 곤궁한, 비루한 삶을 생각하니까 너무 처참하더라고요."

단두대에 선 사람의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 잠이 잘 오지 않고 피가 마르고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들다 같은 뭔가 섬세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원했는데 그는 '엄청 불안하다', ' 오늘 내일까지 참 잔인한 시간이 될 거 같다'는 표현에 그쳤다. 불안하다는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서 비장함이나 긴장감은 읽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잠은 잘 잔단다.

"제가 폭탄이 옆에 떨어져도 잠은 잘 잡니다. 제가 좀 무감각해졌다고 할까, 단련됐다고도 할 수도 있겠고. 제가 살아오면서 이런 비슷한 경우를 좀 많이 겪었거든요."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선 느낌은 부인 김혜경 씨 표현이 남편보다 구체적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바뀌지요. 어떤 때는 잘 될 거 같고 어떤 때는 안 될 거 같기도 하고. 잠도 잘 안 오고. 워낙 오래된 시달림이다 보니 어느 정도 감각이 무뎌진 줄 알았는데 어제 그제 언론에 크게 나오고 운명의 날이다 뭐다 하니 많이 불안하지요. 더군다나 며칠 전에 박원순 시장님이 돌아가셔서 불안감이 더 가중되는 거 같아요. 대선 때 자주 뵙고 가깝게 생각하던 분이라서 충격에서 빠져나오기 힘드네요."

똑같은 사물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며 2심 재판부의 유죄 판결 논리를 정리할 때 그는 냉철한 법률가였다.

"남들이 오해할 수 있는데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이렇게 본 거죠. 그 오해를 유지시켰다. 결국 거짓말한 것과 똑같다. 가만히 있어서 다른 사람이 오해하게 하나 거짓말을 해서 오해하게 하나 똑같다. 그렇게 본 거죠. 그 사람 (2심 재판장)이 보면 그럴 수 있어요."

이재명은 2심 재판부 판결이 어처구니없이 황당했다고 말했다.

"저는 검찰은 믿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입니다. 재판에서 저의 예상을 벗어난, 일반적 예상과 너무 다른 결론이 난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대개 기억이 날 정도예요. 그랬는데 수원고법의 2심 재판부가 판결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저히 뭔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당황을 넘어 황당했습니다."

"그러면 모레(16일) 대법원 재판에서 그게 바로 잡힐 거라고 보는 거죠?"

"객관적인 사실관계, 합리적인 법 해석에 따르면 납득할 만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믿긴 하는데 문제는 이게 마지막이잖아요. 사람이 하는 일은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결과의 끝은 너무 잔혹하죠. 제 입장에서는. 그래서 사실 엄청 불안하죠."

"대법원 소부에서 몇 달을 끌다가 전원합의체로 넘기고, 심리는 단 한 번으로 마치고도 선고기일은 정하지 않고 그러다가 나흘 후에 선고한다고 하고, 또 그 선고를 이례적으로 방송으로 중계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할 때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도대체 이게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죽이려는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텐데 답은 짧았다.

"그냥 제가 불안하죠. (대법원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대법원 판결 이야기를 하던 그가 갑자기 성남에서 시민운동가로 살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과 관련해 구속되었을 때 심리적으로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단다. 권력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일하던 동지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그때 죽는 줄 알았단다. 스치기만 해도 자지러지도록 아팠고 눈길만 받아도 살이 아렸단다.

자신의 인생이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다 회복이 되더란다. 그때부터 '포연이 걷히면 실상이 드러난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사필귀정이란 말을 반복했는데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이재명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2
이재명과 인터뷰 약속은 지난달 말에 잡혔다. 대법원이 그의 사건에 대한 심리를 마치고 선고기일은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기도청 실무팀에서 사전 질문지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사전 질문지를 보내는 대신 이재명 지사에게 메일을 썼다. 인터뷰를 하려는 취지, 필자의 간단한 경력을 적었다. 부인 김혜경 씨도 인터뷰하고 싶다고 적었다.

메일을 보낸 다음 날 김혜경 씨 인터뷰를 포함한 필자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겠다는 답이 왔다. 아무런 전제조건이 없었다. 무엇을 물어봐 달라는 말도 없었고 어떤 질문은 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부탁 같은 것도 없었다.

인터뷰 하루 전날인 13일 오후, 대법원에서 그의 사건 선고를 16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가 인터뷰를 연기하거나 취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48시간 후에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한가하게(?) 인터뷰를 할 여유는 없을 것이었다. 그는 인터뷰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다. 약속한 대로 14일 오후 2시 경기도청 상황실에 그가 등장했다.

"인터뷰 약속을 미루자고 할 줄 알았습니다만."

"예측 못하게 선고기일이 잡혀서 취소해야 되는데 어렵게 잡은 거라 어차피 그 후에 쓰실 거니까 만약에 제가 목이 날아가면 버리면 될 것이고 혹시 살아나면 유용한 것이 될 것도 같아서요."

당초 2시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3시간을 훌쩍 넘겼다. 군데군데 비보도를 전제하긴 했지만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았다. 말을 돌려 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직설적이고 명쾌해서 그의 말을 두 번 세 번 곱씹을 필요가 없었다. 내일모레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쩌면 이렇게 태연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강심장이었다.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3
그의 삶은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변호사가 되어 성남으로 돌아와서 시장에 당선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장 선거에서, 당내 경선에서 모두 패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2번의 구속과 수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시민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았지만, 중앙정치 무대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성남시장 8년은 그가 앞으로 무엇이 되든 계속 거론될 자랑스런 시간이지만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시장 재임 8년 동안 나흘 중에 사흘은 압수수색, 조사, 수사를 받는 시간이었다. 청년수당 같은 그의 파격적인 실험은 중앙정부의 집요한 방해와 견제를 받아야 했다. 고발에는 고발로, 고소에는 고소로 맞섰고 단식 투쟁도 불사했다. 그의 무기는 반골 기질과 법이었다. 그 시절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남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양 요란을 떤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봐준다고 그는 믿었다.

2년 전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칼과 창이 그를 동시에 겨누고 있었다. 적군만이 아니라 아군도 비수를 들이댔다. 민주당에서 그의 제명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했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던 그가 휘청했고 그가 위기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법이라는 칼을 들어 한 편으로 찌르고 한편으로 막아내면서 필사적으로 버틴 것도 사실이지만 그를 구해준 것은 그를 찍은 337만 명의 유권자들이었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남경필 후보를 20% 이상 앞서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김영환은 5% 득표에도 실패했다.

그를 인터뷰 하던 날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여론조사에서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위라는 결과가 나왔다. 2년 전 경기지사 취임 당시 그는 꼴찌였다.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그는 이낙연 의원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이재명 지지율이 20%에 육박하면서 최근 두 사람의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다.

그를 위협하던 무기들은 실체가 없거나(무죄 판결) 그를 찌르기에는 힘이 부족하거나(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스스로 싸울 의지를 포기했다(고소 취하). 마지막까지 그의 심장을 날카롭게 겨누었던 허위사실 공표라는 비수 역시 대법원 판결로 무력화됐다. 그는 이제 족쇄를 걷어내고 날개를 얻었다.

#4
이재명은 지난해 8월 송추계곡에서 불법 영업을 하다 강제철거를 당한 주민들을 만났다. 대화 분위기는 험악했다. 상인들은 지사를 면전에 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주민들의 언성이 높았고 가끔은 말끝이 짧아서 반말처럼 들렸다. 여차하면 책상을 엎고 물병이라도 집어 던질 기세였다. 자신들의 생계 수단을 이재명이 한순간에 철거해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재명의 태도는 그들을 달래기보다 화를 돋우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분들 기분 나쁘고 불쾌한 거 안다며 멱살을 잡아도 좋다는 그의 말은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화를 내는 주민들에게 그 역시 얼굴을 붉히며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유예기간을 달라는 한 주민의 요청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칼에 거절했다.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유권자들이기도 한 주민들에 대한 공손함이나 절제된 언행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려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 그 사람들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 사람들 하소연을 듣는 목민관의 자세는 아닌 거 같다고 했더니, 맞단다.

"그게 정확하게 보신 거예요. 저는 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진짜 표현해요. 원래 정치하는 사람은 감정 표현 안 하잖아요. '허허허' 이렇게 웃고 '아, 네네네.' '그럴 수 있겠네요.' 이렇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 사람들 괴롭히는 거예요. 불가능한 희망을 갖게 하면 희망 고문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닥치고 있는 객관적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대비하게 해줘야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피해 안 입으려고 허허허 웃어주고 난 다음에 그 사람들 기대를 꺾어버리면 더 나쁜 짓이잖아요."

당시 상황을 찍은 영상은 47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다. 댓글이 2만 개가 넘는다. 하나 같이 이재명 칭찬 일색이다. 역시 이재명 사이다! 라며 속 시원하다고 열광한다. 해방 이후 그 누구도 못했다는 계곡 불법 영업 단속을 이재명은 1년 만에 해치웠다. 경기도 내 계곡에서 불법 영업을 하던 1천400곳의 시설들이 자진 또는 강제철거됐다.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법을 앞세운 행정 관료로 보일 때가 더 많다. 아직 정치인이 되지 못한 미분화 단계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의 탄생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권력 행사는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권력은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는 말에도, 잘 드는 칼은 칼집 안에 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공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법률이 금지하지 않는, 부당하지 않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게 행정입니다. 행정의 적극성이라고 하죠. 그런데 지금 행정은 어떻게 하냐면 법이 하라고 한 거. 상사가 시킨 거. 전에 하던 것. 관행 이 세 가지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복지부동이라고 하죠. 이건 매우 잘못된 거죠. 책임 안 지려고 하는 거지."

그는 조치라고 말하면 될 것을 굳이 명령, 강제 같은 권위적인 냄새 나는 단어를 쓴다. 일부러 그런 단어를 썼다고 말한다. 행정은 선행이 아니라 공무수행이라고 단언한다. 도둑에는 큰 도둑, 작은 도둑이 없다는 그의 말은 법을 앞세운 행정 관료의 느낌이 물씬 난다. 그는 자신의 권한을 최대치로 행사할 때 보람을 느낀다. 그 권력의 행사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것이라 박수까지 받으니 그의 기쁨은 두 배 세 배가 될 것이다.

"이런 면 때문에 이재명이 권력 지향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어진 권한은 최대치로 행사하는 게 저의 분명히 제 목표예요.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사람들은 법이 하라고 한 거, 상사가 시킨 거, 전부터 하던 거 외에는 하지를 않아요. 무책임해. 책임을 지지 않는 거죠. 저는 의무라고 보기 때문에 책임이라고 보기 때문에 해야 될 일을 찾아서 최대치로 합니다. 저는 권력을 지향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사회에 기여하는 데 권한을 갖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하는 거죠."

"그런 것을 권력 의지라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어요. 권력 의지라는 의미를 나쁘게 써서 그렇지. 권력 의지가 강한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별로 미련 없어요."

"(권력 의지가) 강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없는 건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권력 의지는 강한 게 맞죠. 거기서 사욕을 도모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권한이 필요한 거죠."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5
그의 삶에는 눈물의 기록이 별로 없다. 슬픔의 눈물도 별로 없고 좌절의 눈물에 대한 기록도 없다. 그와 서해성이 꽤 공들여 썼음이 분명한 <이재명의 굽은 팔>이란 책에도 눈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공장에 다니던 10대 시절 프레스에 눌려 손목 관절이 으스러졌을 때조차 고통의 눈물에 대한 묘사가 없다. 세월호 추모 행사 때, 이천 화재 사고 희생자 추모식 같은 데서 눈물을 보인 듯 만 듯했지만, 그가 펑펑 우는 장면은 찾기 쉽지 않다.

그의 글에는 눈물이 없고 애상이 없고 처연함이 없다. 자신의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건조하게 마치 수사 기관에서 참고인 진술하듯 말한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 몇 권 감인데 그는 물기 없는 한두 줄의 글로 처리한다. 큰형은 공사판을 떠돌다 한쪽 다리 절단, 여동생은 뇌출혈로 일하던 화장실에서 사망 뭐 이런 식이다. 남에게 동정 따윈 사지 않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 시절과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싫은가.

사람들의 살아온 사연이란 사실 한 꺼풀만 벗기면 다 거기서 거기다. 어렵고 힘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재명의 집안 이야기는 그의 말처럼 참혹하다는 말 이외에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가 겪은 경제적 빈곤, 정서적 빈곤이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 그는 담담하다. 이제 자신의 가난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변호사가 되고 1년 만에 승용차를 타고 개천에서 난 용으로 오래 살고서도 그에게 가난은 쉽게 극복된 것 같지 않다.

'가난했지만 우리 가족은 화목했습니다. 부모님은 저희들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셨고 형제들 간에 우애가 각별했습니다'라는 류의 가난한 가족의 행복 서사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가난은 가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난은 불화를 부르고 가난은 갈등을 부르고 가난은 패륜을 부르기도 한다. 그게 훨씬 현실의 모습에 가깝다. 이재명의 가족사는 우리들의 환상에 차가운 물 한 동이를 확 끼얹는다.

견고한 리얼리스트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진술을 들어보자. 그의 아버지는 공장 다니는 그가 공부 좀 하겠다며 녹초가 된 몸으로 밤에 공부를 할 때 전기요금 아깝다고 30촉 전등을 5촉 전등으로 바꾼 사람이다. 어렵게 검정고시 합격하고 대학 입시에 도전할 때 '네가 아무리 그래 봐라 출세할 수 있는지'라며 격려하기는커녕 야유하듯 말했다. 학력고사 성적 확인하러 간다니 차비 아깝다고 가지 말라던 아버지를 그는 증오했다. 그 증오는 오래갔다.

"자식을 키우면서 내가 그 나이가 돼 보니까 그때는 자식의 입장에서만 아버지를 원망했고요. 이제는 같은 아버지 입장이 돼 보니까 참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셨구나 싶어요."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어머니 삶은 눈물의 연속이었을 텐데 어머니의 눈물을 말하는 것조차 이재명은 꺼린다.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불행이 전염된다고 생각하는가. 그의 인터뷰 기사를 꽤 많이 봤는데 어머니가 울었다는 표현은 없었다. 오빠 시장 당선된 뒤 다른 데로 옮기면 오빠 덕 본 거 아니냐는 말 나올까 걱정하던 여동생이 새벽에 화장실에서 일하다 쓰러져 죽었을 때 그가 많이 울었단다. 부인 김혜경의 말이다.

기쁨이나 성취에 따른 눈물도 없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대학생이 되었을 때,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눈물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눈물이 없었을 리는 없을 테고 눈물에 대한 기록을 그는 애써 회피하는 듯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 걸 안동 양반 기질이라고 하나요? 남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거 있잖아요. 그 다음에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저는 낯간지러워서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 심지어 그런 얘기 많아요. 가짜 인권 변호사다. 기록이 없다. 그런 얘기. 그 다음에 지금 말씀하신 그런 얘기. 제가 표현을 잘 안 해놓을 뿐이죠. 그런데 그걸 굳이 해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눈물로 상징되는 공감 능력도 공인의 평가 요소 아닌가라는 취지로 질문을 이어갔다.

"제가 공무에 대해서는 자랑을 많이 하는데 그건 의무라고 생각해서 하는 거고요. 남의 일을 하는 거니까. 일을 맡긴 주체한테 보고해야 하잖아요. 알 권리이기도 하고. 공직자로서의 성과를 보고하는 것이니까. 그런 건 진짜로 열심히 홍보하고 자랑하는데 제 개인적 살아온 이야기라든지 이런 건 잘 안 하는 편이죠. 하는 게 이상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표현을 거의 안 하죠. 그래서 제가 사회생활 하면서 대학 졸업하고 사법 연수 마치고 난 다음에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죠."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그에게 느껴지는 강퍅한 이미지는 그가 법을 앞세우며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법으로 상대방을 윽박지르기도 했고 침묵시키기도 했고 법으로 상대방을 굴복시켰다. 법이라는 칼에는 인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다. 법의 차가운 이미지가 이재명에게 투영되어 있다.

법은 잘 드는 칼이다. 그 칼을 다루다 보면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의 몸에 소년공 시절 수백 군데의 입은 상처가 있다면 그의 마음에는 법을 다루다가 생긴 수백 군데의 상처가 있을 것이다. 진정한 검의 명인이라면 함부로 칼을 뽑지도 않을 것인데 그는 걸핏하면 칼을 뽑았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뽑기도 했고 남을 찌르기 위해 법이라는 칼을 뽑았다. 그의 칼은 좀처럼 용서를 모르는 날카롭고 냉랭한 칼이었다. 그에게 덕과 부드러움의 품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일 게다.


#6
경기도지사 비서실은 15일 오전 중에 김혜경과의 인터뷰 시간과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한 시가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짐작건대 김혜경이 내켜 하지 않는 듯했다. 불과 24시간 후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인터뷰를 하고 싶겠는가? 방송 기자가 온라인 지면 한 귀퉁이에 쓰는 글이라니 더욱 그럴 수 있었다. '사모님이 영 내켜 하지 않는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참모들 표정이 눈에 선했다. 정 어려우면 김혜경 여사 인터뷰는 안 해도 된다고 말하기 위해 담당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독촉 전화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0분쯤 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김혜경이었다.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청년 변호사 이재명이 음대 졸업생 김혜경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8월이다. 이재명 변호사는 그달에 다섯 명과 소개팅을 하기로 돼 있었고 김혜경은 그중 세 번째로 만난 여성이었다. 이재명은 첫눈에 반했고 김혜경은 천천히 반했다. 김혜경은 주변에서 두 사람의 결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남자라면 포장마차를 같이 하면서라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재명에게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고 물었다. 친구도 많지 않고 예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즐기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집에서 집사람과 노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단다. 이재명의 친구는 누가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는 "제가 주로 노는 친구는 제 아내예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잘 안 믿더라고요."

이재명은 김혜경에 대해 '위대한' '훌륭한' '대단한' 같은 형용사를 사용했다. 김혜경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녀는 이재명의 가장 가까운 참모이자 동지다.

"어제 이 지사님과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정치인 이재명에 대해 김혜경은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김혜경이 크게 웃으면서 답했다. "50%는 좀 많고 한 20%…"

다른 어떤 부부보다 인생 풍파가 많아서일까, 두 사람은 부부를 넘어 동지 같은 느낌을 준다.

"저보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에요. 제가 지난번에 한창 공격받고 검찰 조사받을 때 지지자들이 제게 격려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면 그것을 보면서 옆에서 그렇게 울더라고요. 제가 짠해서 그랬는지…"

두 사람은 쓰는 단어가 비슷했다.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는 단어들이 있었다. 대화가 많다는 말은 사실처럼 보인다. 이재명을 알기 위해서는 김혜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7
그는 대중의 힘을 믿는다는 점에서 포퓰리스트다. 그는 확고하게 대중의 힘을 믿는다. 정치의 주인은 국민이고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은 대리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대리인에 불과한 정치인들보다 현장에서 '주인'인 대중을 만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의도 대리인'들을 만나기보다 살벌한 분위기의 송추계곡 집단민원 현장을 간다.

"대리인들은 주인들 눈치를 봐요. 주인들 따라 갈 수밖에 없어요. 진짜 정치는 본질적으로 국민들이 하는 거죠. 국민들의 지지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서 여의도 정치인들이 편 짜서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하는 거지, 여의도 정치인들이 편 짜서 국민들 움직이지 못하거든요."

여의도 정치권의 지지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면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친하게 지내면서 형님 동생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다만 길을 끊어 놓으면 안된다. 단절을 시켜놓으면 안 되고 넘어올 수 있는, 같이 만날 수 있는 통로만 만들어 놓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그는 민주당을 포함한 여의도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가 소위 20% 지지율 받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까? 그때도 제명하라고 하잖아요. 그때도 나름대로 15% 지지율을 받을 때였어요. 그런데도 누구도 내 편 들어주지 않았잖아요."

"이해찬 대표는 좀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항간에서 이해찬과 이재명을 한 묶음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물었다.

" 그건 가만히 있는 거죠. 뭘 도와준다기보다는. 부당하게, 억울하게 하지 않는 정도. 그 정도 아닌가요? 저한테 뭘 해주셨죠? 하여튼 (여의도 정치권에서) 저는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존재일 겁니다."

자신이 여전히 기존 정치권에서 비주류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지만 그걸 슬프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과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이 지지하지 않으면 자신은 존재할 수 없고 그게 없으면 자신은 순식간에 몰락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안다는 점에서도 그는 철저한 포퓰리스트다. 그를 지지하는 대중들과 함께 그가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을, 여의도를 조여오고 있는 듯하다.

자신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일 뿐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크지만 그렇다고 이 공동체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만을 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개인의 가치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합리적 질서 유지에 집중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합리적 길을 찾아내느냐? 새로운 거 찾아보자 이게 진보일 테고 있는 거 잘 지켜보자 하면 보수일 텐데 저는 이쪽에(보수) 더 중심이 있는 게 맞죠. 사람들은 저 보고 가장 과격한 좌파라고 하는데 좌파 아니죠."

다만 생각이 빠르고 행동이 격하다는 점, 최대치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급진 또는 과격이란 표현은 맞다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보수, 행동 양태는 진보. 뭐 이렇게 부를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에 매이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것저것 안 가린다는 것이다.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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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20%에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에 대한 악의적 공격이 많이 사라진 것에서 자신의 위상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만나자는 사람이 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대법원 판결로 그의 정치적 위상이 강화될 것이고 그를 만나자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그는 대권으로 정주행하는 것일까.

김혜경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재명이 시장으로 훌륭하고, 지사로 탁월한 거 맞다. 그런데 아직은 그에게 이 나라를 한 번 맡겨보자, 충분히 그런 그릇이 된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다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김혜경은 이재명이 이 나라의 국정을 맡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외였다.

"왜냐면 지금 경기 도지사로 충분하고, 지금도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고요."

청와대에 간 일이 두어 번 있었는데 그때 대통령이 진 짐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는 것이다. 김혜경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대통령 내외분과 헤어져 청와대를 나오는데 마음이 너무 짠한 거예요. 그 무거운 짐을 생각하니 너무 안됐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진심으로 그거 안 했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 대선 때는 멋모르고 대통령 하겠다고 다녔는데 최근 2~3년 이런 과정 다 겪다 보니 진짜 안 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많은 거 같아요. 저는 그래요. 그 힘든 일 남편 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김 여사님도 힘드셨죠? 라고 물었더니 "그렇죠"라고 답했다. 그 목소리가 먹먹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기운을 차린 듯 활기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근데 하면 누구보다 잘할 거 같긴 해요. 사심이 없고 실력 있고 조직 장악력 겁나게 있고…"

그러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내 남편은 여기까지 했으면 좋겠어요… 아휴 힘드네요."

김혜경의 말은 지금이라도 타협이란 걸 할 수만 있다면 타협하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다. 대법원 판결을 만약 협상을 통해 결정하고 조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것일 텐데 그만큼 이 부부가 처해있는 상황이 힘들다는 호소처럼 들렸다. 자신들의 생사를 가를 대법원 판결을 24시간 앞둔 시점이라 그런 마음이 더 절실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이 자기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타협할 수 있을 때 타협할 수 있는 것이던가.

[그, 사람] 견고한 현실주의자 이재명

이재명의 싸움은 피가 튀고 뼈가 바스러지고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함석에 베여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프레스에 눌려 손목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격렬했다. 어느 때는 선과 악이나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백병전이라 도대체 피아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싸움이 끝나긴 한 건지 아니면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건지 알 수 없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은 이재명에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겠다는 김혜경의 희망과는 달리 이 풍운의 승부사는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을 것이다. 여의도가 아니라 계곡으로 바다로 산으로 그의 실력을 보여주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다만 이재명은 뭔가 새로운 모습으로 싸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법과 반골 기질만으로 싸웠다면 이제는 거기에 선의와 절제도 더 하고 싶은 것 아닐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필자와의 약속을 '악착같이' 지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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