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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귀한 대접받던 '유리알락하늘소'…'세계 100대 유해 외래생물'에 지정된 까닭은?

[취재파일] 귀한 대접받던 '유리알락하늘소'…'세계 100대 유해 외래생물'에 지정된 까닭은?
부산 사상구의 삼락생태공원은 낙동강 둔치 좌우측으로 펼쳐진 광활한 강변공원입니다. 면적이 472만 2,000㎡에 이르고 운동시설과 잔디광장, 자연학습장 등이 잘 갖춰져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강변에 조성되다 보니 냇가를 좋아하는 자생 '버드나무' 군락지가 잘 형성돼 있습니다. 20m 정도까지 자라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삼락생태공원의 버드나무는 한때 귀한 대접받던 '하늘소'의 공격으로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버드나무는 물을 많이 머금어 목질이 매우 단단합니다. 쪼개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단단한 나뭇가지에 알을 낳고 번식하는 곤충, 아니 해충이 있습니다. 바로 '유리알락하늘소'입니다. 유리알락하늘소는 등과 더듬이에 하얀 반점이 있고 딱지날개 표면이 매끄러워 '유리'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강원도 산간지역 등 중북부지방의 울창한 활엽수림에 분포했고, 개체수가 많지 않아 수목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개체수가 급증해 부산, 울산, 전주 등 남부지역과 인천, 부천, 서울 등 수도권에서도 수목 피해가 확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조경수로 심은 마로니에가 이 하늘소 공격을 받고 고사한 것도 최근 일입니다.

유리알락하늘소 암컷은 살아있는 버드나무와 고로쇠나무, 마로니에 줄기에 상처를 낸 뒤 그 자리에 쌀알만한 크기의 알을 낳습니다. 유충은 나무껍질 아래의 매끈매끈한 수피 내부를 파먹으며 점점 자라 나무 중심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나무는 속이 썩어 가고 생장에 방해를 받아 결국 말라 죽게 됩니다. 유충은 나무속에서 번데기가 돼 안전하게 겨울을 나고, 성충이 돼 작고 동그란 구멍을 내고 나무 밖으로 나와 다시 짝짓기를 합니다. 하늘소 종류 중에 이렇게 어린나무 할 것 없이 무차별 가해하는 종은 드뭅니다. 나무를 뚫고 속을 파먹으면 구멍이 생기는데, 이곳으로 다른 곤충, 해충이 침입해 2차 가해가 시작됩니다. 나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겁니다.

부산 삼락생태공원에서 피해 현장을 안내했던 낙동강 관리본부의 김현우 박사는 유리알락하늘소의 대량 발생 시기를 대략 2015년도라고 확인했습니다. 특히 2018년는 개체수가 아주 많아서, 한 버드나무에 10마리씩 보일 정도였고, 올해는 봄이 길어지면서 발생이 조금 늦어지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개체수가 급증하면 하늘소를 잡아먹는 딱따구리도 증가해 나무에 구멍을 뚫기 때문에 버드나무는 더 빨리 죽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에서 유입된 도시 숲 파괴 유리알락하늘소

예전부터 국내에 서식했지만,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던 '유리알락하늘소'가 이렇게 수도권 이남으로 급속히 번식한 이유는 뭘까요? 최근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서울대 곤충계통분류학 연구실의 이승현 박사 연구팀이 6년에 걸쳐 전국의 유리알락하늘소의 유전자를 분석한 겁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애초 동북부 지역, 그러니까 강원도 산간지역에 서식하고 있던 개체군과 최근 수도권과 남부지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개체군은 유전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입증된 겁니다.

쉽게 말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개체군은 외부에서 유입됐다는 뜻입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서울대 곤충계통분류학 이승환 교수는 "유전적으로 중국 서부지역, 중국 북부지역의 개체군과 유사하다"며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인천과 부산, 울산 등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목재에 숨어 항구를 통해 중국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유리알락하늘소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세계 100대 유해 외래생물'로 지정할 정도로 북미와 유럽, 중국 등지에서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자생하던 개체군과 외부 유입 개체군이 만나서 일종의 교잡종, 하이브리드 개체군이 나오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승환 교수는 "어떤 생물체가 외래 집단과 자생 집단이 만나 교잡종이 되었을 때 더 많은 식물에 더 많은 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렇게 외래 '유리알락하늘소'가 문제 되고 있지만 환경부와 산림청 등 관계당국의 인식은 안일하기만 합니다. '예전부터 자생하던 하늘소이고 그동안 고로쇠나무 등 자생 수목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유리알락하늘소

유리알락하늘소의 개체가 급증하고 있지만, 방제 수단은 마땅치 않습니다. 나무 속에 들어가 월동을 하다 보니 방제 약품을 살포하기 어렵고, 성충 또한 웬만한 약품으로는 잘 죽지 않습니다. 최근 천적을 이용한 방제 수단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유리알락하늘소의 천적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그냥 방치할 경우 무소불위의 외래 침입자로 개체수가 더 늘어나, 다른 나무로까지 피해가 확산할 수 있습니다. 뉴스가 방영되자 환경부와 국립산림과학원, 검역검사본부 등 관련 정부 기관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 유입된 외래 해충이 얼마나 토종 수목에 해를 끼치고 있는지 실태 파악에 들어간 겁니다.

이승환 교수는 "유리알락하늘소의 확산 속도가 빨라서 우선 확산을 지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고, 자생 개체군과 교잡종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외래 해충에 대한 검역검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 해충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문단속하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변종 개체군의 국내 유입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악동 유리알락하늘소가 중국 유입 개체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정부와 학계의 공동연구는 물론, 외래 해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이 절실합니다.

참고로 SBS 8시 뉴스의 소재가 됐던 서울대 곤충계통분류학 연구팀의 이번 유리알락하늘소 관련 논문은 세계적 권위의 해충학 저널인 'Journal of Pest Science' 6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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