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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퇴사, 나는 너에게 어떤 동료였을까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SBS 뉴스

작성 2020.07.16 11:1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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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두 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하나는 우리 사업부의 임원이 다른 계열사로 전근을 갈 것이라는 소문, 또 하나는 임원이 되기 위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던 한 직장 선배가 이미 사직을 했다는 뉴스다. 사실 전근과 사직은 회사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이어서 내가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직은 미공개된 이번 전출과 사직 발령은 이면의 뭔가가 있는지 의외로 여기저기서 수근댔다. 나 역시 궁금해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안테나를 높게 올렸고, 어렵사리 '팩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떠도는 인사 소문,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잠시 뒤 전화가 울렸다. C 지점장이다. 그는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내 도움을 구한다.

"담당 임원이 이 문서 승인을 안 해주네요. 사정을 여러 번 얘기하고 양해를 구했는데 씨알도 안 먹힙니다. 시간도 이젠 얼마 없습니다. 어떻게 하죠?"

"그분이 결재 안 해주는 이유가 있긴 있죠.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데…좀 너무 하시는 것 같기는 하네요."

"하아, 현장에 있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본사로 가신 뒤 완전 바뀌었어요. 너무 힘듭니다."

"그러네요. 더 높은 곳에서 더 센 압력을 받아서 그렇겠지요."

"에이,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너무 몸 사리시는 것 같아요. 이건 뭐……"

"좀 기다려 봅시다. 그 자리에만 계속 계시겠어요?"

"어, 그 말씀은? 지금 돌고 있는 소문이 사실이군요. 아이, 잘됐다.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네요."


전화를 끊은 뒤에도 "아이, 잘됐다"하며 쾌재를 부르는 지점장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기야 그분 본사로 올라간 뒤 거의 모든 현장 문서에 설명 요망, 보류 심지어 방금 그 지점장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상황을 설명해도 부결마저 가차 없이 해댔으니 원성이 자자하긴 했다. 너무 빡빡하게 한 것은 맞지만 어찌됐든 그분이 자신의 전출 소식을 두고 현장 사람들 입에서 "아이, 잘됐다"라는 환호성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기분일까? 억울해 할까? 잘 모르겠으나 좋은 기분은 아닐 것 같다. 씁쓸함을 느끼며 다시 일을 하는데 뒤이어 친한 동기가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그 선배 그만 뒀다고 하네. 왜 그런지 알아?"

"대충…"

"뭐야? 정말로 돈 문제와 관련이 있는 거야?"

"그런 것 같아. 인사팀에 누가 제보했는지 증거까지 접수됐다네. 그걸 그 선배에게 내보였더니 사직하겠다고 했나 봐."

"아이고, 좀 그렇네. 생각지도 못한 일이야.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고 무단히 애를 쓰셨는데."

"그러게. 늘그막에 안되긴 안됐어. 본인 과실이지만 직장생활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에 덜미를 잡힌 거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잠시 그 선배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 선배, 능력 있고 사람도 좋아 좀 아까운 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끝이 안 좋으면 다 안 좋은 거다. 예전의 누구처럼 한동안 회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됐다. 참 불명예스러운 퇴장이다.

계열사로 전출 가는 담당 임원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 직장 선배의 황망한 퇴사. 이런 사건에 대해 누군가와 연속해서 얘기하다 보니 불현듯 "내 직장생활의 끝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나도 "아이, 잘됐다. 빨리 가 버려라" 혹은 "불명예스러운 퇴장이네"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내가 퇴사를 한다면, 사람들은 기뻐할까 슬퍼할까.
『나는 죽음을 기다리며 여기 암흑 속에 누워 있답니다. 올바르게 살아라. 죽을 때는, 죽을…… / 아이, 무서워라, 무서워라.』

이 독백은 예전에 읽었던 소설 <암흑의 핵심>에서 글로벌 회사의 잘 나가는 해외지사장인 주인공 '커츠'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한 말이다(커츠는 원래 건전한 신념과 소신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 상태가 변해 마지막엔 탐욕으로 가득 찬 인물이 되었다). 이 참회의 말을 통해 나는 죽어가는 커츠의 모습을 그려봤다. 그의 상아빛 얼굴에는 무자비한 권세를 탐한 뒤 찾아오는 음침한 오만, 겁먹은 공포, 그리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돌았을 것이다.

또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욕망, 유혹, 굴종으로 점철된 자신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돌아 보려고 불쌍한 눈빛을 잠시 반짝였을 거다. 그리고는 두려움에 떨며 힘없는 입술을 움직이며 겨우 숨결에 부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어떤 이미지를 향해 속삭이듯 '아이. 무서워라, 무서워라'라고 했겠지. 자신의 삶을 세 마디로 요약한 그는 곧바로 후회스러운 생을 마감했을 테고.

회사 생활에서의 전출과 퇴사는 지금 몸담고 있는 곳에서의 '마지막'이니만큼 어쩌면 이것들은 '죽음'에 비유할 수 있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내가 언제가 회사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전출이나 퇴사) 나 스스로 직장에서 내가 해왔던 행위를 알 테니 나 역시 커츠처럼 '아이, 무서워라, 무서워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면 안 된다, 막아야 한다!

직장 혹은 부서에서 퇴장 후 위에서 말한 담당임원, 직장 선배와 같은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일단 커츠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에 자신의 삶을 요약한 듯한 말, '아이. 무서워라, 무서워라'를 항상 기억해야겠다. 그리하면 회사에서 상사, 동료 및 후배들을 대할 때, 어떤 프로젝트를 주관할 때, 여러 곳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판단을 할 때, 끝이 무서워서라도 나는 좀 더 솔직하고 친절하게, 좀 더 원만하게, 좀 더 공정하게 처리하려고 지금보다 더욱 많은 노력을 할거다.

덕이 쌓이면 외롭지 않듯이 바로 이런 노력이 차곡차곡 모이고 모이면, 내가 떠난 후에 발생할 험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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