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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07] 특파원은 돌아오는 거야!!!(부메랑) 중국 현지 코로나19 취재기

[INSIGHT 07] 특파원은 돌아오는 거야!!!(부메랑) 중국 현지 코로나19 취재기

"중국인도 안 믿는 중국 정부" 생존의 조건을 생각하다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20.07.15 11:34 수정 2020.07.29 15: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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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처음 발현된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SBS 보도본부 정성엽 기자가 귀국했습니다. 녹록지 않았던 현지 취재 상황부터 현지에서 느낀 감염에 대한 불안감, 팬데믹 상황에서 생각해본 '새로운 생존'의 조건까지 정성엽 기자(현 SDF팀 선임 차장)가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Q. 베이징 특파원으로 보낸 기간은?

2017년 4월부터 약 3년 3개월간 근무를 했고요. 사드 배치 때부터 시작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번 중국을 방문했었고, 미중 무역 전쟁에 이어 홍콩 민주화 시위 그리고 마지막엔 코로나19까지… 생각해보면 참 일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긴 시간 동안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준 사건은 단연 마지막 6개월 동안의 코로나19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이제 서울에 도착한 지 5일 정도 됐는데요, 집 밖으로는 못 나가고 있습니다. 화상 연결 등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요, 이것도 예년의 특파원들이 귀임하는 모습과 비교해 보면 정말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귀임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코로나19 절정 때 중국 상황 취재는 어떻게?

중국의 취재 환경은 우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사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더라도 책임 있는 당국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는 게 쉽지 않습니다. 중국은 거의 모든 이슈를 공산당 선전부에서 일단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외교부라든지 관영매체들이 그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발표하거나 보도합니다. 특파원들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취재를 한다는 것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쉽지 않았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특히 현장 취재는 거의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베이징에 있으면서 중국 전역의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었고, 특히 방송기자들은 현장 취재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현장을 가야 하는 상황과 가면 결과적으로 비난을 받는 그런 상황이 계속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Q. 취재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우한시가 봉쇄에서 풀렸을 때 베이징서역에 갔습니다. 열차를 타고 온 우한 시민들 모습도 찍고 인터뷰도 해보겠다고 갔는데 대기하고 있는 동안 역내 공안에게 붙잡혔습니다. 촬영이 불가하다는 겁니다. 중국 매체들이 이미 촬영한 사실을 알고 왔다고 해도 저희는 취재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의를 좀 했더니 제 여권과 외교부에서 발행한 기자증을 뺏더군요. 공안 사무실로 붙들려가서 일장 훈계를 들었습니다. 중국의 고도 경제 성장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었는데, 막상 이런 국가적 재앙 사태를 겪어보니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였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우한시 봉쇄를 생각해보면, 서울보다 인구가 많은 1천100만 명이 사는 도시를 하루 아침에 봉쇄해버렸습니다. 우한시엔 감염병을 대처할 수 있는 병원이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인데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시민들의 출입을 막아버렸습니다. 14억을 살리기 위해서는 1천100만 명 정도는 희생해도 된다는 식의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SDF
Q. 감염에 대한 불안도 많이 느꼈나?

감염에 대한 불안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SBS 베이징지국만 해도 특파원들이 2명 있고, 현지 직원들이 3명이 있습니다. 모두 각자 출퇴근을 해서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같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서로 감염에 대한 불안을 갖고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또 저를 제외한 저희 가족 3명은 거의 집에만 있었습니다. 저만 외부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감염의 가능성이라고 하면 제가 가장 높은 거예요. 밖에서 사람들을 접촉하고 다닌 사람이 저녁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섞여 있으니까 저만 위험 인자인 셈이죠. 또 하나는 해외에선 저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의심 증세가 나왔거나 심지어 코로나19 확진 상황이 생겼더라도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이 없었어요. 보호막이 없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평상시에는 그런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선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걱정과 불안이 있었어요.

SDF SDF
Q.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한중 관계는?

한국에서 대구에 확진자가 많이 나왔을 때 중국 내에서는 예전에 사드 때와 비슷한 양상이 발생했어요. 한국 사람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있기도 했구요.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 쪽에 코로나 상황이 확산되고 한국과 중국이 진정세를 보이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양국은 굉장히 친한 걸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 변화에 따라 출렁이는 관계보단 서로 간에 다독이고 안정시키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양국간 교류 관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베이징에서 '겪어본 적 없는 세상'을 경험하면서 느낀 '생존의 조건'은?

중국에서 코로나19 를 겪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거버넌스의 신뢰'라는 것이 무엇인가? 였습니다. 국가의 통치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많은 구성원들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그것이 그 나라의 경쟁력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국 당국은 지금까지 9만 명 미만의 확진자가 통계로 잡히고 있다고 발표하는데, 심지어 중국인조차도 그 숫자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낮다는 거죠. 그것은 국민의 생존에 대해서도 영향을 주고 국가 전체의 경쟁력에도 큰 지표가 됩니다. 또 하나는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각 나라마다 사정에 맞는 코로나19 대응을 하다보니 인접국이나 다른 국가와 충돌하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충돌 양상이 굉장히 심화되는데 지금의 구조로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적 충돌을 치유하고 공조할 수 있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생겨야 하고, 미국과 중국 G2로 대변되는 양극화된 구조는 한계에 도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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