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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동지만 있고 공당(公黨)은 없었다…민주당의 민낯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작성 2020.07.15 11:35 수정 2020.07.22 17: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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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당의 대표가 망자 앞의 예의를 말했다. 가까스로 용기를 낸 '산 자'에겐 비수가 됐다. 민주당은 지난 닷새 간 없었다. 오로지 동지(同志)를 떠나보낸 유족일 뿐이었다. 삶을 매듭지은 자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산 자가 겪는 단장(斷腸)의 고통은 외면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민주화운동을 함께 해 온 오랜 친구인 고인의 영면을 빈다"며 故 박원순 시장을 공개 추모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열외 없이 동참했다. 세상에 가벼운 죽음은 없다. 사회에 족적을 남긴 고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죽음 앞에 애도는 도리이고, 인지상정이다. 동지를 황망히 떠나보낸 그들의 슬픔이 남달랐다는 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이번 사안에서 추모만이 전부라고 여길 때 또 다른 비극, 더 큰 고통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민주당은 이를 알아야 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다. 10일 열린 민주당 비공개 회의에서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 그 누구도 서울특별시 기관장으로 치러질 장례가 던질 메시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외면했다.

당시 회의 참석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대표가 고인과의 인연을 말하며 '서울특별시장(葬)'을 이야기했고, 피해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한 논의는 일절 없었다고 한다. 피해를 당했다는 현장, 바로 그곳에 설치된 분향소를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피해자 고통에 대해 그 어떤 고민도 없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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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 공당 대표에게 던진 질문…유족으로 답한 민주당 대표

10일 민주당 공개 최고위는 추모로 시작해 추모로 끝났다. 다른 공개 발언은 없었다. 5분도 걸리지 않은 짧은 회의였다. 회의 직후 대변인도 성추행 의혹 규명이나 피해자에 대한 질문에 "자신이 답변할만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입을 닫았다. 다른 민주당 지도부 역시 침묵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야 민주당의 공식 입장이 만들어졌다. 공식 입장 전달 방식은 대표의 욕설 섞인 호통이었다. 빈소를 나온 이해찬 대표를 향해 한 기자가 "고인의 의혹에 대해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 대표는 답했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xx자식."

공당의 대표에게 던진 질문에 이해찬 대표는 유족으로서 답했다. 공당의 대표가 유족이 되면서, 이 대표 뒤에 도열해있던 국회 법사위원장인 윤호중 사무총장, 조정식 정책위 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도 더 이상 공인이 아니었다. 이 대표의 욕설은 기자를 향했지만, 그의 발언은 여당 의원, 지지자, 사회로 던진 여당의 입장이 됐다. '예의'가 아니라는 말은 '추모만을 하라'는 지시로 작동했다. 그렇게 여당 의원들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게 됐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든 이해찬 대표의 발언으로 여당 내에선 '피해자'라는 단어는 금칙어가 됐다. '진상규명 또는 피해자 언급'은 무례함이 됐다. 그 사이 2차 가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신상 털기, 폄훼, 거짓 정보, 조롱, 악의적 왜곡 등 그동안 성범죄를 폭로한 피해자들을 괴롭혔던 그 일이 고스란히 반복됐다.

민주당은 이런 결과를 의도치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정치인의 손짓, 말 한마디, 걸음걸이까지 정치행위이자, 메시지라는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다. 메시지 관리팀을 별도로 둘 만큼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는 게 의원들이다. 이런 결과를 예측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악의적이다.

같은 장소, 같은 질문에 다른 정당의 정치인은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분은 피해자 고소인입니다. 이 상황이 본인 책임 때문이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해 달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에게 이 짧은 말 한마디가 그토록 어려웠을까. 고인에 대한 추모와 피해자에 대한 위로, 양립되는 게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 "피해자 중심주의" 외치며 공개 반성했던 민주당…그들이 꺼내든 명예훼손

넉 달 전, 민주당 의원들이 공개 석상에서 자기반성을 했다. 'n번방'으로 대표되는 성범죄에 대한 일종의 자기 고백이자 다짐이었다.

"국회가 더 적극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피해자는 피해 사실조차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막중한 책임감으로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와 여당의 책무를 다하겠다." (백혜련 의원)

선거를 앞둔 여당의 급조된 반성으로 보이진 않았다. 20대 국회 막바지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며 결과물도 내놨다. 그러나 지난 닷새간 이런 노력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급기야 여당 의원 입에선 '사자명예훼손,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박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건 사자명예훼손"이라는 말이었다. 법리에 맞는 말이라고 여길테지만, 우리 사회에 고착된 성범죄 본질에 대한 몰이해였다. 성범죄에 있어 유독 위축되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아예 없었다.

그동안 명예훼손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수단이 됐다. 가해자는 이를 이용해 범죄를 덮으려 했다. 여당도 알고 있던 사실들이다.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진선미 의원은 같은당 의원 18명과 함께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면 내용이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어, 오히려 피해사실 고백을 위축시키고, 가해자가 이를 악용해 2차 가해를 할 수 있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에서 '성폭력 피해 주장'을 제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정애 의원도 의원 15명과 함께 "피해 당사자의 고발 행위를 두텁게 보호하자"며 비슷한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도 동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2월 26일 "용기 있게 피해 사실을 밝힌 피해자들이 2차 피해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이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이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모르지 않았다. 도리어 권력관계에 의한 성범죄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다. 우월적 지위의 가해자가 또 다시 방어권이라는 이름으로 2차 가해를 해왔고, 그 때문에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었다. 성범죄가 암수범죄가 된 이유였다.

특히 위력,위계에 의한 성범죄는 더욱 그랬다. 범죄 발생부터 실체 규명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는 철저히 약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의 지시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조치였다. 가해자의 방어권 못지않게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민주당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피해자 보호,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친 여당의 다짐은 원칙이 아니었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고무줄 잣대일 뿐이었다.

고 박원순 시장 영결식
● "사과를 받고 싶었다"…추모 속에 망각한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공동 위원장이었던 장례위원회는 13일 기자회견을 준비 중인 피해자 측을 향해 "유족들이 온전히 눈물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고인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시민단체가 지난 10일부터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시간과 사회가 이를 들어야하는 책임을 사라지게 하는 흐름에 반대한다"는 요구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철저히 외면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 측은 목소리를 냈다. "거대한 권력 앞에 힘없고 약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고 호소했다. "그 분을 향해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피해자를 향해 한 여당 의원은 "고인은 죽음으로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써내려갔다.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라는 기본조차 모르는 발언이었다. 지난 닷새간 여당은 고인의 선택이 '피해자의 회복의 기회, 용서의 기회'마저 박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기에 이런 발언은 놀랍지도 않았다.

● "피해자 중심주의" 지켰다는 민주당…'민주당 중심주의'만 있었다

그나마 김해영 최고위원이 13일 공개 석상에서 처음으로 당을 향해 '성찰'을 요구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해찬 대표는 15일 "피해 호소인이 겪은 고통에 깊은 위로 말씀을 드린다"는 뒤늦은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의 호칭을 써가며 "고인의 부재로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당사자의 고통을 정쟁과 여론몰이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아 달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민주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고하게 지켜왔다"

철저히 민주당 중심으로  쓴 '입장문'에 불과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한 반성은 없었고, 그가 겪은 고통은 민주당과 무관한 것으로 여겼다. 성추행을 둘러싼 의혹은 정쟁으로 치부했다. '죽음으로 진실은 알 수 없게 됐다'는 태도를 고수하며 모든 공을 서울시로 넘기며 민주당과는 거리를 뒀다.

각종 의혹이 불거질 때 수시로 만들었던 당 내 진상규명 TF 설치도, 모든 이슈를 수렴하며 조사할 수 있는 국회 상임위를 활용한다는 계획도 없다. '공소권 없음'은 형사사법 절차의 종결을 의미일 뿐, 진실 규명과 피해 회복 절차까지 종결됐다는 뜻이 아닌데도 말이다. 민주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했지만 정작 '피해자'는 없었고, '민주당 중심주의'만 있을 뿐이었다.

민주당 입장에선 진상조사가 두려울 수 있다. 민주당 당헌 96조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한 경우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고 돼 있다. '중대한 잘못'에 성범죄가 포함된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민주당이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추천 여부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고 회피하는 이유다.

"죽음으로 인해 진상조사가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은 '피해자'가 아닌 '민주당 중심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이 염려하는 건 피해자가 아닌 민주당 자신들일 뿐이다. 민주당에겐 진실을 밝혀낼 의지도,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다.

민주당은 강령과 당헌으로 '실질적 성 평등', '성범죄 예방과 근절',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추모를 하며 망각했다. 그런 민주당이 국회의사당 앞에 '님의 뜻을 기억하겠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한다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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