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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ADD 유출 문책' 靑 청원, 막혔다…누가, 왜 막았나?

국방과학연구소 ADD의 사상 최대 기밀 유출 사건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책임자인 ADD 남세규 소장의 문책을 촉구하는 글이 지난달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랐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전문적, 구체적이고 정확해서 ADD 연구원이 직접 작성한 청원으로 추정됐습니다. ADD 뿐 아니라, ADD를 관리 감독하는 방위사업청, 국방부에서도 널리 읽혔고 며칠 만에 5천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바로 그 청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서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검색해도 해당 청원은 찾을 수 없습니다. ADD 청원이 회자됐을 때 SNS에서 돌았던 인터넷 주소로 들어가야 겨우 흔적이 보입니다.

청원은 "관리자에 의해 비공개된 청원입니다"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차단됐습니다. ADD 사건이 100만 건 이상 자료 유출(혐의자 23명 중 핵심 3명의 유출 건수가 100만 건을 넘는다) 뿐 아니라 정부가 개입한 UAE 불법 기술이전 혐의도 드러나고 있는데 청와대가 관련 청원을 비공개 처리했으니 좀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일입니다.

비공개 처리된 'ADD 유출 문책' 청와대 청원

누군가 청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와대에 비공개를 요청했고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였으니 청원은 닫혔을 겁니다. 청와대도 ADD 청원 비공개의 절차가 이와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청원 비공개를 요청했고 청와대는 어떤 연유로 비공개를 결정했을까요?

미궁입니다. 청원 비공개를 요청했음직한 데는 국방부, 방사청, ADD입니다. 하나같이 비공개를 요청한 적 없다는 입장입니다. 청와대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애초에 왜 ADD 기밀 유출 사건을 적극적으로 조사, 수사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인데 청와대 청원까지 그다지 투명하지 않게 차단되니 의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사라진 청와대 청원, 어떤 내용이었나

'잘못된 정책으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남세규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엄중문책' 요청합니다'가 청원의 제목입니다. 청원자는 기밀 유출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ADD의 디지털 저작권 관리시스템(DRM. Digital Rights Management)의 운용상 허점에서 찾았습니다. DRM은 주요 기관들이 사용하는 보안 프로그램입니다.

ADD 고위직 연구원들은 이 프로그램을 해제하고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 무방비로 자료 유출이 이뤄졌다고 청원은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68만 건 유출 혐의를 받고 있는 ADD 퇴직자 A 씨는 본부장 출신의 최고위직 연구원이었습니다. DRM을 풀고 연구소 등록 외장하드로 자료를 내려받았습니다. 나머지 혐의자 22명도 상당수가 최고 직급인 수석연구원입니다.

청원은 USB, 외장하드, 노트북의 경우 허가 없이는 연구소로 들일 수도 없고 내부 컴퓨터와 연결도 안 된다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발표된 ADD 감사 결과 연구소에서 미등록 컴퓨터와 USB, 외장하드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노트북, USB, 외장하드가 ADD에서 광범위하게 통제 없이 사용됐던 겁니다.

감사가 이뤄지기 전 청원이라 틀린 내용도 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청원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습니다. ADD의 특성상 내부자라고 하더라도 완벽한 정보를 취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청원이 가장 힘줘 요구한 바는 책임자 문책이었습니다. ADD 창립 50년 이래 최대의 사건인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정경두 국방장관, 왕정홍 방사청장, 남세규 ADD 소장은 미안하다, 송구하다는 말 뿐입니다. 모두 이번 정부의 일인데도 왕정홍 청장은 지난 정부 사건인 양 국회에 보고했습니다. 강은호 방사청 차장은 "방사청은 (언론 보도 1주일 전쯤인) 4월 중순까지 몰랐던 일"이라며 방사청의 '결백'을 강변했습니다.

청원은 ADD에 보안검색대 등 보안보완시스템이 설치될 때까지 석박사급 연구원들에게 차량 검색 등을 시키려던 남세규 ADD 소장을 규탄하며 그의 문책을 촉구했습니다. ADD의 상급기관 1, 2인자들도 책임 없다고 하는 판이니 최소한 ADD 소장이라도 문책하라는 건 합리적인 지적입니다.

● 국방부·방사청 "모르는 일"…청원이 불편한 자들은 누구?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의 국방 관련 비서관실에서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에 요청해 해당 청원이 비공개됐다", "청원에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일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방 관련 비서관실은 국방부나 방사청, ADD에서 비공개 요청을 받았을 터.

ADD 유출 사건의 책임자들…왼쪽부터 남세규 ADD 소장, 강은호 방사청 차장, 왕정홍 방사청장

하지만 3개 기관 모두 청원의 비공개를 요청한 적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방사청, ADD의 요청 없이 청와대의 국방 관련 비서관실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해 비공개를 추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안이 전문적 분야여서 국방부, 방사청, ADD와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한목소리로 '모르쇠'입니다.

청원에 더러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내부 고발 형식의 청원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거친 게 아니라면 100% 완벽한 팩트의 청원은 없습니다. 그런데 해당 청원이 제기됐을 때 ADD 고위 관계자도 "누가 안에서 제대로 알고 썼다", "여러 사람 속 아프게 생겼다"고 말했을 정도로 청원 내용은 대단히 정확한 편이었습니다.

청원 내용에 비밀이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비공개한 근거가 잘 짚이지 않습니다. ADD의 한 관계자는 "(ADD 연구원) 모두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청원 글이 막혔다", "연구원들을 정말 좌절하게 만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청와대 측은 ADD 청원 취소와 관련해 더 이상 답변을 안 하고 있습니다.

ADD 기밀 유출 23명 혐의자 중에는 국산 유도무기 비궁 기술을 UAE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UAE 기술 유출은 2018~2019년 청와대와 국방부가 주도한 한국-UAE 협력 과정 중에 이뤄졌다고 국방부 전 고위직들은 밝혔습니다. 청와대와 국방부도 자유롭지 못한 사건인데 지금까지 해명이나 핑계 한마디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 12월 말 사건을 감지한 뒤 관련 수사기관들은 지독히도 미적거렸습니다. 방사청은 지난 정부의 일, 몰랐던 일이라며 뒤로 물러섰고 ADD 소장은 임기를 알뜰살뜰 채우고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니 누구라도 좀 문책하라고 청원했지만 막혔습니다.

이번 ADD 사건과 청원이 어떤 이들에게는 몹시 불편하겠지요. 누가 왜 청원을 내렸는지와 수사기관들의 방기, 청와대와 국방부, 방사청의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이 밀접하게 연결됐을 거란 관측이 군과 방사청, ADD, 방산업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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