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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이충걸 17년의 편지

[북적북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이충걸 17년의 편지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20.07.12 07:29 수정 2020.07.14 09: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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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250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이충걸 17년의 편지

"나는 불가피하게 수백 번 첨삭하는 작가의 삶은 모르지만, 가지에 앉은 새처럼 관찰력이 풍부한 편집장의 글을 쓰고 싶었다……… 진짜 세상으로부터 한 발 떨어진 인지부조화의 고아원에서 지냈다. 동시에 늘 의기소침하면서 날뛰는 호기심이 무기라고 떠벌리는 과학자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깊이 없고 응석 많은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차라리 정직하다고 여겼다."

이번 주 북적북적의 선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은 지난 2001년 창간호부터 17년 동안 남성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GQ'를 이끌었던 이충걸 편집장의 '에디터 서문'을 모은 에세이집입니다.

저는 이 '남성잡지'를 서점에 서서, 또는 헤어샵 같은 데서 눈에 띌 때마다 종종 훔쳐봤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GQ' 제작진에 사과드립니다.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한 번도 사보지는 못했습니다. '남성잡지 좀 내가 사면 어때?' 생각했지만, 그걸 들고 계산대까지 갈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남자들끼리 본다고 만드는구나. 흥!' 같은 어쭙잖은 자존심, 소외감 같은 것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훔쳐봐야' 볼 수 있는 책이었으니, 사회로 나오고 바빠질수록 점점 자주 접하지는 못하게 됐죠. 그래서 얼마 전에 우연히 이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얼른 집어 들었습니다. 'GQ'를 공짜로만 읽어온 그동안의 빚을 아주 조금 갚은 것 같은 느낌도 약간은 있네요.

"월요일 오전 열한 시였다. 이번 주에 처음 거짓말을 한 시간.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주말에 뭘 했느냐고 누가 물었고, 나는 토요일엔 벼르던 흑인문학전집을 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도 지적으로 하는 내가 스스로도 대견했다. 주말에 내가 한 건, 집 밖으로 한 뼘도 나가지 않고 잠을 자다가, 눈을 뜨고 누워 있다가, 책을 펼칠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잔 게 다였다. 그런데도 워커힐에서 오고무 춤을 본 것처럼 공갈을 쳤다.
누구라도 오늘 말한 사실에 최소한 3분의 1쯤 거짓이 있을 것이다. 숨쉬기만큼 당연한 일이다. 들뜨게 하는 동시에 주저앉히는 과장의 문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책을 밟고 전혀 다른 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어 中)

"......폴 스미스 쇼도 기존 매뉴얼의 변종 답습만 같았다. 우아하게 고안된 토털룩도, 고상하고 견고한 구두도 시뜻해만 보였다. 곧 모델들이 퇴장하고 다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연인보다 더한 갈망으로 디자이너가 나타나길 고대하는데, 갑자기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가 들렸다. 그리고 순진한 동네 패거리처럼 겅중겅중 춤추는 모델들 사이에서 폴 스미스가 농가월령가 몸짓으로 런웨이를 돌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울고 싶어 졌다.
이틀 전 마이클 잭슨의 부고가 뉴스 네트워크를 탔다. 다음날, 그는 여전히 죽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날보다 더 죽어 있는 것 같았다. TV는 죽도록 [스릴러] 영상을 반복했다. 부적절해 보이긴 했다. 거기서 그는 시체니까. 하지만 폴 스미스는 마이클이 죽음으로 취한 영속성을 패션의 덧없는 순간성 위에 덧입혔다. 문명과 함께 시작한 오브제였으나 어느 틈에 한 계절에 네 번 변하는 속도 유행의 중개인이 된 옷에 다른 의미의 영원성을 대입한 것이다. 입과 몸의 언어로 결합된 음악도 불러들이면서."
(오스카 와일드 中)

"하지만 앞에 앉은 사람이 "난 와인, 잘 몰라서…." 두루 눈치 보며 메뉴 아래 싼 가격대로 눈길도 못 주는 걸 보면 뭔가 확 치민다. 와인 리스트는 지도 같아서 때로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표정 자체로 거들먹거리는 레스토랑 주인, 비싼 것만 한 다발인 와인 리스트, 이상한 경멸을 풍기며 내려다보는 소믈리에, 겨우겨우 싼 와인을 찾으면 진작에 떨어졌다고 냉큼 뱉는 웨이터, 죄지은 것도 없이 쩔쩔매는 손님 족속들, 웃기긴 서로 막상막하다.
밖에서 와인을 잘 다루는 게 교양 있어 뵈는 풍습 때문에 와인에 대해 모를 여유조차 가질 수 없다니."
(내가 좋아하는 와인 中)

이충걸 편집장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외로운 글들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GQ' 한국판이 처음 나오기 전까지 국내에서 남성 잡지라고 하면 지금보다 더 큰 선입견이 있었을 겁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남성들끼리도 문화와 예술과 소비에 대해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월간지로 펴내서 얘기하는 잡지라는 게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비로소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죠. 'GQ', '에스콰이어' 같은 잡지들이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GQ'는 언제나 비닐에 싸여 있지 않았어요. 누구나 서점에 서서 그냥 볼 수 있도록요. 여성잡지들은 인기 있고 비싸고 멋진 사진과 기사가 많이 들어있는 잡지일수록 비닐에 싸여 나와서, 구입을 해야지만 속을 볼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GQ'는 그야말로 '양질의 콘텐츠'로 가득한 잡지였지만, 그런 대표 여성지들보다는 판촉이, 그냥 열어보는 사람들이 필요한 잡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른바 세련되고 문화적인 남성들이 많이 보고 있겠지만, 사실 모든 남성들이 자신을 위한 책이라고 받아들이는 스타일의 잡지는 아니죠. 어쩌면 일종의 질시를 언제나 등에 조금씩 업을 수밖에 없는 간행물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런 잡지를 한국에서 처음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 '편집장의 말'은 늘 뜨겁고 빼곡했습니다. 에디터의 서문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글들임과 동시에, 오해받기 쉬운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나가는 외로운 일을 떠맡은 사람의 상당히 적나라한 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될 만큼 농밀하게 꼭꼭 채워 쓰는 문장들, 신랄하지만 수줍은 문장들이었습니다. 그 문장들이 제 20대에 기묘할 만큼 위로가 됐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 같은 마음으로 이충걸 편집장의 글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분명히 지금 괴롭고, 어딘가 폭발할 것 같으면서도 늘 불완전 연소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 모든 게 실은 그저, 우스꽝스런 모양으로 꼬인 파티 풍선처럼 바람이 든 내 자의식 과잉일 뿐인 것 아닐까, 어지러울 때. 이충걸 편집장의 일기가 신랄하고도 수줍은 친구가 돼 줬습니다. 여기 그런 사람, 너 혼자가 아니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우리가 특별해서 그런 거야. 때때로, '에디터의 말'에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정도의 자기혐오나 반성까지도 공유하면서, 그의 독자들을 다독이는 글들이었습니다. 'GQ'를 한 번도 사보지 않은 진짜 속마음을, 이 에세이집에 모인 그때 그 글들을 모아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런 글들이 나 같은 여성 독자는 염두에 두지 않은 '남성잡지'의 서문이었다는 데서 오는, 친구를 뺏긴 듯 분한 마음이 커서, 매대에 서서 훔쳐보는 걸로 반항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그 할머니의 우물 같은 전언을 숙독하면서 내 자신, 불변의 여섯 개 인종 카테고리에 속한 통계적 부적응자가 아니라 대양을 헤엄치는 생명체임을 재확인한다." (루이스 부르주아 中)

"나는 타깃을 종이 자르듯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서른이 되어서도 그 나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사람은 싫었다. 농담으로 시간이나 죽이던 이들을 가판대로 끌어들여 나 개인의 운을 점치고 싶지 않았다. 씻지도 않은 사람을 목욕까지 시켜 주긴 싫었다. 독자는 옷깃을 끌어당겨 차분하게 비밀을 나누고 서로 감정적 파문을 맛보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 떠들썩한 라이프스타일은 싫었다. 그냥 문화의 여명에 나의 동경을 보여주고, 횃불을 든 사람을 앞질러 사물을 비춰주고, 지금 유용하다고 믿는 것들이 정말 가치 있는지 말해주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낮의 햇살로부터 멀어진 진실을 불러오고, 그리고 독자를 웃게 하고 싶었다. 놀라운 소설을 교환하듯 도시에서 지속되는 멤버십을 갖고 싶었다. 마테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전통적인 매너를 지켜 은빛 튜브로 따르고 싶은 마음. 염소처럼 순진한 마음. 결국 포용력 있으면서 복잡한 성격이야말로 쉽지 않은 세월 속에서 내가 독자에게 구했던 것이었다. 이제서야 얘기지만."
(독자란 무엇인가 中)

"그런데 일흔 살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작자가 있어? 사실 단어를 지배하는 건 나지, 단어가 나를 지배하는 게 아니거든. 좋은 뉴스는, 이 시대가 어디에 와 있는지 내가 알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 내 나이에 맞는 분수 따윈 알고 싶지 않아.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종용할 수 없어. 나는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 따를 누군가가 없으니까. 멋진 노인은 다 세상을 떠났거든. 무엇보다 노인을 볼 땐 다들 그 안의 사람은 못 보는 것 같아.
…….내 말이 낭비한 청춘을 만회하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것처럼 들려? 이 나이쯤 되면 파텍 필립 정도는 가질 만하지 않아? 그러나 저 밖 어디서도 노인을 고려해서 뭘 만들진 않지. 디오르도 동대문도."
(일흔 살이 된 나에게 中)

패션문화잡지와 방송뉴스는 종류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봐주시고 들어주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가 닿기 위한 말과 글과 '그림'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는 직업을 갖게 되고 나서 다시 몰아 읽는 '편집장의 글'은 좀 더 남다르게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편집장은 언제나 삶과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미열을 앓듯 반복하는 스스로를 활짝 열어 먼저 보여줌으로써, 언제까지나 삶과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는,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운 많은 어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걸 문득 좀더 깊이 느낍니다. 멋진 편집장과 멋진 독자들은 함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죠. 저도 제 일에 대해서 이상은 높게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부끄럽지만 용기 내서 다시 한 번 해봅니다.
'GQ'는 대중이 아니라 한 분 한 분을 향해서 만들었다는 이충걸 작가님의 한 마디가 굉장히 깊게 남습니다. '북적북적'을 읽을 때의 제 마음도,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ㅎㅎㅎ
들어주시고, 같이 읽어주셔서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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