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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나는 '관종'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인-잇] 나는 '관종'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강원국|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책 <나는 말하듯이 쓴다> 저자.

SBS 뉴스

작성 2020.07.12 10:57 수정 2020.07.26 16: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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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즐거운 '관종'의 삶
: 말과 글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라

글은 눈치로 쓸 수 있다. 쓰라고 한 사람의 눈치를 보면 된다. 독자 눈치를 보면 되는 것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잘 듣고 잘 읽으려 한다는 것이다.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그런다. 둘째, 비위를 맞춰주겠다는 것이다. 눈치 보는 것이 수동적인 행위라면 여기서부터는 적극적인 노력이다. 눈치 빠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다. 잘 읽고 잘 들어서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에 맞춰주겠다는 것이다. 셋째, 그렇게 맞춰주려는 것은 칭찬받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눈치 본다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해보자.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눈치 빠른 사람은 글을 못 쓰려고 해도 못 쓸 수 없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강원국
#1 내 '관종' 일대기

눈치 빠른 것에서 더 나아가 '관종'이 되면 더 잘 쓴다. 눈치가 아무리 빨라도 주체는 아니다. 자신이 중심에 서 있지 않다. 하지만 관종은 다르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무대의 중심에 선다. 물론 관종 너머의 세상도 있다. 관심에서 초연한 수준 말이다. 나는 그 경지를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 잘 쓰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관종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처음부터 관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정반대였다.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전혀 반기지 않았다. 눈길 끄는 것을 싫어했다. 눈총을 받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한마디로 눈치를 심하게 봤다. 눈치 본다는 뜻은 무엇인가. 내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읽기, 듣기에 능하다. 남의 생각을 잘 읽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누군가 한마디 하면 그렇게 말하는 배경, 맥락, 취지, 의도, 목적을 잘 파악한다. 하지만 말하기, 쓰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말은 실어증에 가까웠다. 회장이나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것은 쓰기 영역이 아니다. 읽기, 듣기 영역이다. 잘 읽고 잘 들으면 잘 쓸 수 있다. 읽기와 듣기는 받아들이는 것이고, 말하기와 쓰기는 내놓는 것이다. 나는 잘 받아들이기만 했다.

나는 남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이다. 나는 요구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옷이든 음식이든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으면 늘 사양했다. 그런 내게 사람들은 양보를 잘하고 배려심이 있다고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남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입안에 혀처럼 굴어야 남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의 평가에 기대어 살았다. 칭찬을 갈구하고 혼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적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살았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말을 잘 듣고 시키는 일을 잘해야 한다. 그러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여기에 길들고 맛 들이면 시키지 않은 일도 찾아서 한다. 말하지 않은 것도 의중을 헤아려 갖다 바친다. 그러면 윗사람이 '말이 통하는 친구'라고 칭찬해준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양심을 잃어간다. 양심은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다. 내 평가를 남에게 위탁하고 살면 양심은 필요 없다. 지금까지 모신 분들이 나쁜 일을 시켰거나, 내가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아마 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칭찬받기 위해서, 혼나지 않으려고 말이다.

이렇게 나는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았다. "누가 그렇게 말하더라", "어느 책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라고 전하며 살았다. 나만의 관점, 시각, 해석이 없었다. 반박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늘 묻어가고 따라갔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요?", "그건 맞지 않습니다" 같은 말에서 느껴지는 정의감? 언감생심이다. 기회주의자에 가까웠다. 우리 편 눈치를 보느라 다른 편에 빌붙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남의 힘으로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내 생각을 말하고 쓰면서 산다. 읽기, 듣기는 목적이 아니고 내 말과 글을 위한 수단이다. 남의 눈치도 안 본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역량에 부치는 일은 못 하겠다고 한다.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제의 글보다 오늘의 글이 낫다. 내일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로 오늘도 쓴다.

#2 그러니까 나답게 살아라

그렇다. 나는 관종이다. 관종과 눈치꾼은 한 끗 차이다. 내가 중심이고 주체이면 관종이고, 누군가의 대상이고 객체이면 눈치꾼이다. 말하고 쓰는 사람은 주체이고, 읽고 듣는 이는 대상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쓴다. 내 말과 글이 나인데, 말하고 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알겠는가.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더는 투명 인간처럼 살고 싶지 않다. 말 잘 듣고 남의 비위 맞추며 살기 싫다. 내 말과 글을 더 많은 사람이 듣고 읽기를 원한다. 그들 또한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누구나 말하고 쓸 때 가장 자기답다.

언젠가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 강의하러 갔다. 점심을 먹으러 근처 국숫집에 들렀다. 식탁이 세 개뿐인 작은 식당이었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주인에게 곱빼기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를 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국수를 갖다 주며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시죠?" 한다. 밑반찬을 계속 챙겨줘서 국수를 마시듯 흘려 넣었다. 식당을 나와 영수증을 봤는데, 4,000원만 계산했다. 곱빼기 값이 아니라 보통 값을 받은 것이다. 이분의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사다 드리고 싶었으나 강의 시간이 다 되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처음 받아보는 '연예인 디시(discount)'에 찐하게 감동했다.

 

아, 관종의 삶은 즐겁다.


* 편집자 주 : 강원국 작가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 시리즈는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말하기, 글쓰기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격주 금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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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법',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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