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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요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SBS 뉴스

작성 2020.07.09 11:03 수정 2020.07.10 15: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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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가볍게 회의를 하다가 최근 시끌시끌한 부동산 얘기가 나왔다. 삼천포로 빠진 건데 다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인지 저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여기는 수도권과 거리가 떨어진 곳이라 '집값 폭등, 대출 규제, 보유세 폭탄, 부동산 내로남불' 이런 민감한 이슈에 대해선 별로 언급이 없었고, 주로 정부가 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벌써 22번째 대책이 나왔는데 왜 집값을 못 잡을까요?"

"공급 없이 규제만 해대니까 그렇죠. 두더지 잡기 게임도 아니고 올라가면 망치로 칠 생각만 하니……"

"부동산에 이상과열현상이 나타나면 규제를 해야지. 그냥 놔두면 되나?"

"그런데 이번 부동산 대책은 뭔가 잘못되었나 봐요. 비판이 많은가 보던데. 민주당에서도 송구스럽다고 했대요."

"하아. 그런데 왜 그 똑똑한 사람들이 과거 실패한 정책을 또다시 반복할까요? 학습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과거 학습효과가 있어서 더 강하게 규제하는 거지."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왜 그 똑똑한 사람들이 실패한 정책을 또 반복할까요? 이해가 안 되네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여기는 주거에 들어가는 돈이 적어 살만한 거예요. 나 같이 수도권 사람들은 주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아주 미치겠어요.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올라가는 세금에, 집 없는 사람들은 올라가는 전세금과 월세 때문에 말이에요. 그놈의 애들 교육만 아니면 이곳이 살기에는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러자 현지 직원들은 내 말에 동의는 하면서도 수도권의 비싼 집값에 대한 부러움과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 소란스럽게 얘기했다. 시간이 지나 부동산에 대한 얘기는 수그러들었고 다시 회사 이슈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편하게 나누었다. 판매팀장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벌써 몇 번째 실패했는데 회사에서는 왜 또 그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거예요?"

"다시 해보자는 거지. 사실 우리들 모두 그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진력을 다 하지도 않았잖아. 현실성이 떨어져서 그냥 다들 하는 척만 했으니 말이야. 이번에는 전사적으로 제대로 해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번이라고 별수 있겠어요. 방향은 맞을지 모르는데 지금 시현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적인 프로젝트예요. 이해가 안 되네요. 스마트한 본사 사람들이 왜 반복적으로 헛다리를 짚는지 안타깝습니다."

"아닐 수도 있잖아. 일단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을 잘 하자고.

나는 이 '말 많은 프로젝트 재추진'에 대해서 회의 참석자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고 당부하면서 주제를 전환하려 했다. 이때 관리팀장이 지점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리점이 규정을 어겼을 때 징구하는 부담금 제도를 경감하거나 없애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반짝 효과가 있었는데 이제는 시들해졌습니다. 불만과 반발은 커졌고요."

"또 그 얘기예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일단 그냥 놔둡시다. 사실 내 생각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것마저 없애면 또다시 엉망진창이 될 거예요."

지점장, 이 건의를 딱 짤라 거절했다. 그는 과거 온갖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했던 장본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점장은 이제 이 제도의 효과가 거의 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하는데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계속 유지하려 했다. 나도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부담금을 경감하거나 폐지하자고 권유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벌써 몇 번째 실패했는데 회사에서는 왜 또 그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거예요?"
어쨌든 회의는 끝이 났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왜 정부는 실패했던 정책을 계속 고집하고, 왜 본사 기획팀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프로젝트를 반복해서 추진하려 하며, 왜 지점장은 이제는 명을 다한 부담금 제도를 폐지하지 않으려고 할까?

분명히 그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것이 오류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챘을 것도 같은데 왜 그것에 오히려 더 집착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그들이 자기 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한 일이 헛되었음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어서'이다.

인간을 연구한 책에 따르면, 사람은 과거의 자기가 한 일이 무의미 했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현재도 미래에도 계속 그것을 유지, 강화하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또 사람은 자존심 강한 자아가 지난날의 실수를 인정하려고 할 경우,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떻게 해서든 그 실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 결과로 위에서 봤듯이 정부 관계자, 본사 기획자, 지점장은 "그래, 과거의 내 실수(착오)로 그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어. 하지만 이 실수 때문에 문제점이 뭔지 확실히 깨달았지. 앞으로 그것만 보완하면 성공할 거야. 그 실수는 의미가 있는 거야. 그것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이니까"라고 확신하며 원래 정책을 또 밀어붙인다. 하지만 과연 이게 맞는 일일까?

이런 집착(확신)들이 모두 더해진다고 해서 과업이 성공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고집하는 자존심 강한 자아는 끝이 없는 변명을 지어내어 이 혼돈에 질서(정당성)를 부여하려고 하나 (이것이 설득력 있고 매력적일지라도) 망상은 결국 망상일 뿐이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 본사 기획자, 지점장만 이럴까? 나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명심해야겠다. 자존심이 상해도 어떨 때는 내가 한 일이 헛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의 피해가 적어진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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