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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고소장 들고 가도 문전박대, 누굴 위한 검찰인가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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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0.07.08 11:05 수정 2020.07.09 15:4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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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에 걸쳐 이웃주민들로부터 여러 피해를 당한 할머니 한 분이 자기가 겪은 피해를 빼곡히 적은 고소장을 들고 가까운 검찰청에 갔더니 이건 이런 작은 지청에선 해결할 수 없다며 '대'검찰청에 가보라고 했단다. 그래서 새벽부터 보따리를 싸서 서울 올라가는 첫 버스를 타고 '대'검찰청에 갔더니, 여긴 수사를 직접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길 건너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에 가보라고 했단다.

그래서 길 건너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에 와서 고소장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를 만난 게 2005년, 필자가 민원담당 공익법무관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원실을 지키고 있던 때의 이야기이다. 할머니처럼 집 가까운 검찰청 민원실에서는 고소장을 접수해 주지 않는다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대검찰청을 오가며 헤매는 분들을 그동안 많이 만났다. 그런데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최근 한 운동선수가 감독과 선수들의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에 고통을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피해 선수가 이미 작년에 한 포털사이트에 폭행 고소를 문의하는 글을 게재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이 아닌 포털사이트에 폭행 고소를 문의해야 할 만큼 수사기관의 문턱은 여전히 시민들에게 높아도 너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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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선수 고소바야흐로 검찰개혁의 시대다. 현 정부는 검찰개혁을 국시(國是)로 삼아, 집권 중반부를 넘어선 현재 검찰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제한하는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를 설립하는 법안은 이미 국회를 통과하였고,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발족하여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적정성 확보'를 포함한 4개 개혁 기조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검찰개혁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까운 검찰청에 고소장을 들고 갔지만 민원실에서 문전박대당해야 했던 할머니,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검찰청 민원실의 문턱을 넘지 못하던 피해자들을 떠올리며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검찰개혁이 성공한다고 해서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들고 찾아가는 시민들이 검찰청 민원실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현 정부의 검찰개혁이 성공한다고 해도 시민들이 문전박대당하지 않고 손쉽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검찰청 민원실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한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는 검찰개혁의 의제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청 민원실에 찾아가면 우리의 억울한 사연들을 직접 경청하기 위해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고,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억울한 사연들을 잘 정리한 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정도 되어야 검찰 권력이 정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진짜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민원실의 모습이 우리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할 이유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바로 형사소송법이 그와 같은 모습으로 민원실이 작동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는 고소, 고발의 방식에 대해 아래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37조 (고소·고발의 방식)

① 고소 또는 고발은 서면 또는 구술로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에게 하여야 한다.

②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이 구술에 의한 고소 또는 고발을 받은 때에는 조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우리는 억울함을 안겨 준 사람을 처벌해달라는 요청을 할 때 고소장을 쓰는 수고로움을 들일 필요조차 없다. 그냥 가서 말로 하면 된다. 그러면 검사는 우리의 말을 경청하고 그 내용을 조서로 정리해 주어야 한다. 그건 검사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 사항'이다.

검찰 (사진=연합뉴스)
억울한 사연을 빼곡히 적어 가져 갔지만 민원실에서 문전박대당하고 검사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 지금 검찰청 민원실은 형사소송법 규정에 의거할 때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검찰청 민원실 어디에도 형사소송법 제237조는 적혀 있지 않으며 검찰 역시 우리가 민원실 문턱을 손쉽게 넘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법원이 판사의 막말에 대처할 수 있는 녹음·속기 신청 제도를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판사의 막말에 대처하는 품위 있는 방법' - 하단 링크 참고)

 

지난주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해 검사장들이 9시간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보고 싶은 모습은 검사장들이 머리를 맞댄 채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지금의 현실을 반성하고, 형사소송법 제237조가 제대로 구현되는 검찰청 민원실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바로 그런 모습일 것이다.

인잇 네임카드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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