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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벤츠의 나라, 미국 테슬라 편에 서다

김지석│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자동차 판매가 61%나 감소하자 바이에른 주지사 등 일부 정치인들이 자동차 판매 활성화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단 기업을 살리고 봐야 한다는 고전적인 논리를 대면서 말이다. 독일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비슷한 정책을 시행해 신차 구매를 촉진한 바 있다.

하지만 2020년의 기후 위기는 과거 2008년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기후는 생존의 문제가 됐고 항공이나 기차, 선박, 자동차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교통수단에 대한 섣부른 지원책은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독일에서도 디젤과 휘발유를 태우며 굴러가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자신들의 미래가 기후위기 해결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식한 학생들이 '기후위기를 제대로 이해했는가?'라고 적힌 팻말을 든채 시위의 중심에 섰다.

그 결과 정치권은, 별 문제 없이 통과될 줄 알았던 자동차 구매 보조금 지원책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을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이참에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새로운 산업 육성에 나설 것인가?

독일 의회는 구매 보조금에 '내연기관 자동차 구매 지원금'을 포함할 것인가를 두고 장장 21시간에 걸친 막판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총 1,300억 유로(우리 돈 18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서 내연기관 자동차 구매 지원금은 완전히 폐지하고 대신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대폭 올리기로 결정했다. 놀라운 사실은 독일 자동차 제조사가 생산한 전기차는, 그 수준이 아직 한참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한 해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브랜드는 미국의 테슬라였고, 두 번째는 프랑스 르노였다. BMW와 벤츠는 각각 3위와 11위에 머물렀다.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은 게티이미지 코리아)
메르켈 총리는 진통 끝에 결정된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며 "예전과 같은 식의 부양책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부양책은) 미래를 감안한 정책 패키지가 되어야 했고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부분을 강화했다"라고 힘줘 말했다.

자동차 산업은 독일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고용효과는 물론 수출량도 많다. 국가 이미지를 좌우하는 산업이기도 해서 한국과 유럽, 중국과 미국의 고급차 시장은 독일차들이 말 그대로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한가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기후변화 문제이다.

대표적인 예로 '디젤 게이트'를 들 수 있다. 디젤 엔진의 배출가스를 조작한 이 사건은 독일 제조사의 신용을 떨어뜨렸고,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뿐만 아니라 독일 제조사는 기후 위기 대응에 역행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대형, 고성능 차량의 판매에 몰두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독일에서 판매된 차량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57g/km(휘발유차 연비 기준: 15km/ℓ)로 유럽연합 규제치인 95g/km(휘발유차 연비 기준: 24km/ℓ)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마디로 독일 자동차 산업은 유럽의 기후 위기 대응 레이스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기후 위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이다. 기후 위기는 사람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 대부분을 멸종으로 몰아가는 극히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이다. 정치, 경제, 사회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 대멸종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세계경제포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국제기구들이 웬만한 환경단체보다 더 강력하게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분위기에선 어떤 정부도 감히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늘리는 데에 세금을 쓰기 쉽지 않다. 독일이 BMW와 벤츠가 아닌 테슬라에 더 유리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부양책은 미래를 감안한 정책 패키지가 되어야 한다"
결국 대안은 전기차로 수렴한다. 그것도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굴러가는 전기차 말이다. 전기차 한 대는 보통 1만 5천km 주행 기준으로 2,500 kWh (킬로와트시)의 전기를 소모하며 전기차 500만 대를 보급해도 전기 사용량은 125억kWh 에 불과하다. '불과하다'라고? 125억kWh는 단위를 바꾸면 12.5테라와트시(TWh)인데 독일은 이미 풍력으로만 100TW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량은 14.5TWh 정도로 전기차 600만 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OECD 꼴찌인 대한민국임에도 이미 태양광만으로 전기차 600만 대를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연기관 자동차를 팔아 성장한 자동차협회와 한국자동차공학회 등 이익단체들은 전기차로의 전환에 '(내연기관차를 너무 매몰차게 퇴출하지 않는) 균형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필자의 앞선 글에서 지적했듯 올해부터 해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파르게 줄여야 최악의 기후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과학적 분석이 이미 나와있다. 속도 조절을 하며 전환하기에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독일 정치권은 이러한 이익단체에 끌려가지 않고 단호하게 등을 돌렸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현시점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단호함이야말로 독일 자동차 산업이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염려한다면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도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사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단체와 주장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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