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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우 이순재 전 매니저가 을질"?…"사과 기다린다"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20.07.03 09: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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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배우 이순재 전 매니저가 을질"?…"사과 기다린다"
"80대의 원로 연예인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두 달 동안 세 번 집안일 도와준 게 갑질이라고 여론전을 벌여? 하다 하다 세상이 뒤집혀서 이제 을질로 돌아가네."

'배우 이순재 씨 매니저 해고'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두 달 동안 세 번 집안일 도와준 게 갑질이냐?', '갑질이 아니라 매니저의 을질'이란 표현까지 나온다. 매니저를 비난하는 댓글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순재 씨에 대한 기사와 그 반응을 보면 이 매니저는 '겨우 두 달 일하면서 별것 아닌 일을 녹취까지 해가며 연예계를 대표하는 배우를 깎아내린 사람'이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다.

이런 반응들은 이순재 씨와 매니저 소속사가 밝힌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SBS가 지난달 29일 관련 기사를 보도한 직후 이순재 씨는 다른 언론에 입장을 밝혔다. 이 씨는 "매니저가 두 달 가량 근무하는 사이 아내가 세 번 정도 개인적인 일을 부탁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아내에게 주의를 줬다"며 "매니저에게도 그 부분에 대해 이미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소속사도 "SBS 보도는 편파, 왜곡됐다"며 "60년간 활동을 한 연예계 모범 배우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매니저는 집안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매니저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예인의 연예 활동과 관련한 업무가 매니저의 일이다. 근로계약서도 그렇게 쓴다. 이순재 씨 매니저 소속사는 해고된 매니저와는 안 썼지만 이전 매니저들과는 맺었다는 계약서를 보여줬다. 매니저의 업무는 이순재 씨의 연예 활동과 관련된 임무라고만 적혀 있었다. 가족들의 집안일까지 도와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연예계의 관행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소속사 대표도 매니저의 고충 토로에 "이전 매니저들을 통해 집안일이 과중한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며 "가족의 집안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면 그런 사람을 채용하면 된다"고 매니저를 달래기도 했다. 집안일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면 가사도우미를, 이동할 때 운전해 줄 사람이 필요하면 기사를 고용하면 된다. 매니저가 연예인 가족들의 집안일까지 맡는 게 관행이라면 그건 고쳐야 할, 잘못된 관행일 뿐이다.

매니저/이순재
● "해결되지 않았다…오히려 해고됐다"

겨우 두 달 일한 매니저가 녹취까지 해 이순재 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매니저는 "두 달 동안 참고 참다가 회사와 이순재 씨에게 어렵게 고충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고충은 단순했다. 집안일이 너무 과중하다는 것이었다. 매니저는 회사에 "이순재 선생님 활동과 관련된 일이면 밤을 새도 상관없다"며 "사모님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지만 점점 지나치고 있다"고 호소했다.

매니저는 이순재 씨 가족에 한 시간에 한 번씩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순재 씨 일정이 끝나도 가족 일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인에 선물을 배달하고 물건 반품도 매니저 몫이었다. 마트에서 4시간 동안 장을 보기도 했다. 매니저는 "집 안 정리를 못 했다고 바보, 멍청이란 말도 들었는데 자존감에 상처를 받았다"고도 했다. 두 달 동안 휴일은 주말을 포함해 단 5일뿐이었다. 가족 여행을 위해 역까지 바래다준 날도 일요일 아침이었다. 이순재 씨가 가는 여행 일정도 아니었다. 매니저는 "집에 손자도 있어 집안일을 해줄 사람이 있는데도 배달 온 택배 상자 푸는 일조차 시킨다"고 회사와 이순재 씨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는 "한 달 동안 기다려보자"고 했고, 이순재 씨는 "저녁 7시 이후에는 활용 안 하는 걸로 하겠다"며 집안일을 계속해달라고 말했다. 4대 보험도 안 들어주고 월급은 180만 원뿐이어서 집안일까지 맡는 건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돌아온 건 해고였다. 4대 보험 같은 법적 이야기를 꺼냈다는 게 이유였다. 매니저는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냐"고 따져봤지만 해고를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녹취가 없었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도, 언론에 제보도 할 수 없어 구제받을 길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뿌리 깊은 관행…진심 어린 사과가 우선

이순재 씨는 취재진에게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나는 평생 내 손으로 단 한 명도 해고 시켜본 적이 없다"며 "돈을 훔친 이전 매니저를 봐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 씨는 매니저의 채용과 해고 등에 법적 책임이 없다. 그는 "매니저가 그만둔다고 할 때 100만 원도 도의적으로 건넸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당 대우 등 매니저에 대한 잘못된 관행이 해소되길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SBS가 연예계 전반에 만연한 인식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따져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회사 대표 등은 "이전 매니저들은 배우 지망생이어서 이순재 선생님의 덕을 본 경우가 많다"고 말했는데 업계에 만연한 이런 인식이 잘못된 관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노동청 조사 결과에 따라 법률상 책임 내지 도의적 비난을 달게 받겠다"며 사과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여전히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소속사가 "설거지, 청소 같은 허드렛일은 시키지 않았다"며 "갑질이란 표현은 과장됐다"고 입장을 밝힌 데다 배우 지망생인 또 다른 전 매니저가 "노동 착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순재 선생님 매니저로 일하면서 값진 경험과 배움을 얻었다"고 SNS에 글을 올려 기사화되면서 해고당한 매니저를 비난하는 여론이 커졌기 때문이다.

매니저는 "선생님은 평소 존경하던 분이고 직접적으로 부당한 일을 지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만 인정하고 도의적 책임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한다. 현재 회사 대표는 이순재 씨와 노동 착취가 아니라고 주장한 전 매니저 등 3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자고 매니저에게 제안한 상태다. 아직까지는 회사 대표와 SNS에 글을 올린 전 매니저, 이들 두 명만 해고 매니저에게 사과를 건넸다. 매니저는 "일단은 이순재 선생님의 진심을 듣고 추후 일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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