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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분통 터지는 회사생활, 무엇이 필요할까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조직을 운영하면서 뒷말이 없기를 바란다면 우선적으로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회사 차원의 공정성 확보란 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렵다. 우선 무엇이 공정한지, 즉 공정의 기준이 처한 입장마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출 목표 달성률이 높은 지사에 포상을 한다는 정책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아주 단순하게 달성률에 따라 1등을 선정해서 포상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1등을 한 곳이, 지난해 매출이 급감해서 올해 목표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거나 올해 실적 중 상당 부분 본사 덕을 봤다면? 지난해 실적이 좋아 올해 목표를 더 받은 지사라거나 올해 자구노력으로 판매를 많이 했지만 본사 유치 고객의 이탈로 매출이 확 빠진 지사라면? 이 정책을 매우 불공정하다고 여길 것이다. 이렇게 '공정성'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공정성 확보가 힘든 또 하나 이유는 정책결정자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정치적 상황, 인간적 관계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위의 정책을 수립하거나 결정하는 자가 최고 경영층으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혹은 그가 당장 1등하는 지사장과 개인적 유대관계가 깊은 사람이라면, 이런 불공정이 있음을 알아도 평가 기준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저것 다 고려하면 제대로 된 평가는 있을 수 없다, 지금 당장의 실적으로 하는 것이 제일 공정한 것이다"라며 상급자의 지시를 따르거나 사적 관계를 유지하려 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 고민 중이다. 본사가 나에게 어떤 특별한 권한을 주었는데 어떻게 공정하게 행사해야 할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관련 지점장들과 여러 차례 협의를 했으나 위에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과거 어느 회사의 지인에게 들은 분통터지는 사연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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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 터지는 회사생활, '공정함'을 잡아라.

그는 어느 물류 회사의 지점장이었다. 물류 회사는 수많은 화물을 처리해야 하는 곳이어서 물류장비가 있고 없음이 매우 중요하다. 장비가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없으면 사람의 손과 발로 밤새도록 일해야 한단다. 한마디로 정말 X고생. 그래서 그는 본사에 "여기에 장비를 투입해 달라, 그러면 생산성이 올라가서 오히려 회사에 득이 된다" 라고 수차례 건의를 했는데 결과는 항상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본사의 처리에 실망하면서도 그는 이해는 간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열악한 처지였던 지점이 여러 곳 있었고 회사가 몇 천만 원, 몇 억 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하려면 정말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그렇게 안 해 주던 장비를 '투입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문제는 자기 지점이 아니라 자기들보다 여건이 나은 다른 곳에다 말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몇 개를… 당시엔 엄청 화가 났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본사에 거세게 따져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 나중에 그 이유를 듣고 그 지점장, 맥이 풀렸다나.

"그 이유가 뭐였을까? 맞춰 봐."

"갑자기 그곳을 전략적으로 키워야 하는 곳으로 판단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아니면 지점장님보다 다른 지점장이 본사에 더 우는 소리를 해서?"

"아니야. 기가 막힌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어. 뭐냐? 당시 무슨 이슈가 있어서 나라의 아주 높은 분이 여러 물류회사를 방문해 속된 말로 '쇼'를 했어야 했나 봐. 실제로 뉴스에도 나왔지. 바로 그게 이유였어. 그 높은 분이 방문한다니까 회사는 알아서 노후 장비를 새 장비로 교체하고 추가 장비도 깔아 주더라고. 아마도 그 분이 방문하는 곳의 작업 환경이 너무 열악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였겠지. 그러니 내가 속상하지 않겠나? 난 애처롭게 몇번씩이나 자존심 죽여가며 장비 달라고 호소를 했는데 그건 모조리 거절당하고, 높은 분이 온다니까 바로 설치 되다니...정말 분통터지는 일이잖아."

"그렇네요. 하기야 사장이 방문한다고 해도 난리인데, 하물며… 어쨌든 정말 속상했겠어요."

그런데 이 일화가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권한의 공정한 집행과 관련해 뭔가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래, 그렇게는 일처리 하지 말자'라고 속으로 다짐했지만 지금 시점엔 무언가 결이 다른 의문이 불쑥 솟아났다. 그때와 달리 이제 나이 먹고 산전수전 다 겪어봐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당시 그 회사의 조치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회사가 자신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가 온다는데 '더 열악한 곳도 있어. 이왕 장비를 투입하려면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줘야 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는 현실을 너무 무시한 이상적인 사고의 결과이고 그것으로 인해 아마 그 회사는 그분 방문 이후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회사에서의 공정성이, 좀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면, 위의 사례에서 공정성은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을 생각해보면 그 회사는 너무 일차원적 조치에 머물렀다. 어쨌든 그 결정으로 자기네 회사 지점장과 거기서 일하는 분들에게 아니 어쩌면 전 조직원들에게 '회사에서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소외감(상실감)과 마치 새치기 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를 일으켰으니 말이다. (지금 시대에선 이런 일이 반복되면 회사는 장기적으로 더 큰 손실을 본다고 난 확신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회사는, 당시 상황에 맞게 현실적인 판단을 했으나 좀 더 세밀하게 평가한다면 2%가 부족했던 것 같다. 만약 그 회사가, 지인과 관련자에게 사정을 얘기해 양해를 구했거나, 장비를 몇 개 더 사서 눈에 보이는 형평성을 맞췄거나, 그조차도 사정이 안되었다면 방문 이후 장비를 재배치하겠다고 사전에 약속하거나, 이런 세심한 배려가 깃든 조치를 병행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지점장이 외부 사람인 나에게 굳이 회사 때문에 생긴 소외감이나 분통을 토로하지 않았을 거다.

이런 제길, 머리만 더 아파졌다. 하지만 뭔가 잡히는 것이 있다. 이제 부여 받은 권한을 어떻게 공정하게 집행할 지 최종 판단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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